생보상장의 마지막 카드가 '사회공헌기금'?
'생보사 상장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벌써 18년이나 끌어오면서 역대 정권이 뜨거운 감자로 생각해온 해묵은 과제다. 지난 1월 우여곡절 끝에 생보사 상장자문委가 만든 상장안이 정부의 승인을 받기 위한 '마지막 관문' 인 증권선물거래소로 넘어갔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라는 말마따나 18년 4대 정권을 끌어온 난제가 어찌 쾌도난마식으로 결딴나기를 바랄 것인가? 이번에야말로 가장 해결책에 근접한 듯 보였지만 한편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 시민단체의 반발이 그 하나지만 그거야 늘 있던 일이라 치더라도, 일부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관련입법추진 움직임이 더 큰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생보사 상장이 이처럼 역대정권의 난제로 이러진 이유는 생보사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상호회사 성격을 지닌 주식회사'라는 기구한 모습이며, 이로 인해 상장시 어떤 방식이 적합한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생보사 상장으로 생기는 상장차익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으로 귀착되며, 생보업계의 입장은 상법상 엄연히 주식회사니 만큼 여느 기업들이 그렇듯이 지분에 따라 배분되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반면, 생보사의 성격상 자본금은 극히 작고 자산의 대부분이 계약자가 낸 보험료로 이뤄진, 일종의 상호회사의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상장시 차익을 주주와 계약자가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18년간의 절충점을 찾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었던 것은 이러한 첨예한 양측의 대립각이 우리사회의 '이념논쟁'만큼이나 난해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돈의 액수라기보다는 어떤 식으로 댓가를 지불하느냐 하는 것이다. 생보사 입장에서는 법적으로는 엄연히 주식회사를 상호회사로 보는 것에 동의할 수 없으며 상법에 따라 상장을 하면 되는 것이다. 반면, 반대편에서는 계약자 몫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나눠주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18년간의 논란 끝에 생보업계의 입장이 어느 정도 반영됐기 때문에, 결국 상장자문위의 상장안이 증권선물 거래소에까지 가게 된 것이라는 것을 생보업계나, 제3자나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증선위를 거쳐 정부의 승인만 받으면 될 것으로 믿었는데, 갑자기 상황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지난 5일 열린 공청회의 주요 의견이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의원입법안의 골자는 '계약자 몫'에 맞춰짐으로써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려진 셈이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논쟁이 이념논쟁의 성격을 띤다고 했던 것처럼 계약자 몫에 해당하는 액수를 정하자는 게 아니라 그 성격으로 다시 논점이 옮겨졌다는 것이다.
지난 18년간의 논란 속에서 이 문제가 완전히 평행선을 그었던 것은 아니다. 생보사들은 주식회사의 상장차익이 주주 몫이라고 주장해왔지만 반대쪽 논리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공헌기금출연'이라는 카드를 던져놓은 상태다. 그 동안 생보사들이 자산재평가로 쌓아 놓은 돈(약 1600억)은 사회에 환원할 것이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면 이익의 일부를 추가로 기금으로 내겠다는 입장이다. 생보사들이 사회공헌기금이라는 명분으로 양보하겠다는 뜻은 '주식회사 상장'이라는 기본 골격은 유지해야겠다는 것이다. 생보사로서는 차익을 독식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계약자 몫이라는 방식으로 차익이 분배될 경우 지배구조 등 복잡한 문제가 생기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며, 성격상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에 기부하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생보사들의 입장이 어느 정도 수렴되어 지난해 말 상장위에서 개략적인 방침이 결정된 것으로 생각했던 생보업계의 예측이 예상보다 훨씬 빗나가 버린 꼴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생보업계에서는 사회공헌기금을 얼마를 어떻게 출연하겠다는 것을 좀 더 빨리 구체화시켰으면, 이런 상황에 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일종의 자성론이 대두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너무 일찍 사회공헌기금문제를 꺼내면 마치 생보사들이 논리적으로 하자가 있으니까 '돈으로 때우려는 것 아니냐'는 여론의 부메랑을 의식했는데, 상황이 꼬일 대로 꼬이자 더 이상 이 문제를 지체해서는 안되겠다는 입장이 대두된 것이다. 생명보험협회에서 보험사 대표들이 모여 이 같은 공익기금 출연 방안을 논의했고, 앞으로 20년 동안 최대 1조원(총적립 규모 5000억~1조원)의 기금을 순차적으로 출연하겠다는 의견을 모았다. 생보업계가 쥐고 있던 사실상의 '마지막 카드'인 이 안이 확정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문제는 이 같은 업계의 입장에 대해 이번에도 역시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생보사 자산의 상당 부분이 계약자 몫이기 때문에 공익기금을 출연할 게 아니라 계약자에게 상장 차익을 배분해야 한다는 논거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 제출된 두 개의 입법안도 기본 골격은 이와 같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18년을 끌어온 생보사 상장 문제를 현 정권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크다는 점이 가장 신빙성을 얻고 있다. 게다가 또 다시 생보상장이 기약없이 무산시키기에는 [상호회사같은 주식회사 논리]가 더 이상 새로운 로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도 낙관론을 펼치게 한다.
상호회사 개념을 적용하여 계약자 몫의 상장차익을 계약자에게 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지만 상장에 기여한 계약자가 현재의 계약자가 아니라 만기, 실효, 해약 등으로 현재는 명부에 남아있지 않은 계약자이므로 그 몫을 당사자에게 지급할 방법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생보업계가 '사회공헌기금 출연안'이라는 현실적 대안을 수용하고자 하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니, 출연한 사회공헌기금의 합리적인 관리방안이 제시되어 사회적 공감대를 얻고, 정부가 이를 최종 승인할 경우 생보사 상장이 구체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