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언니가 없는 동안 학습지를 죄다 풀어 놔 언니를 화나게 만들곤 했습니다. 엄마가 언니 옷만 사 온 날엔 난리가 났지요. 그 집엔 스카이콩콩도 두 개, 자전거도 두 대였습니다. 부모님 허리가 휘청했겠다고요? 맞습니다. 바로 제 얘기거든요. 둘째 딸로 이 땅에 태어나 스스로 피해자라 생각하며 정말 부단히 노력했던 욕심 많은 아이.
이런 둘째 딸의 특성을 심리학에서는 '출생 순서에 따른 성격'이라고 말합니다. 주류 심리학에서는 혈액형이나 별자리처럼 '통설'에 불과하다고 폄하하지요.[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
갤러리 큐레이터인 류희정(29)씨는 전형적인 둘째 딸이다. 애교 많고, 성취욕도 강하다. "어렸을 때 미술.무용.운동 안 해 본 게 없어요. 언니라는 경쟁 상대가 있어서 좀 더 잘하려고 노력했고, 또 결과도 좋았던 것 같아요." 첫째의 아성을 깨부수기 위해 똑부러지고, 욕심 많으며, 잡기에 능하다는 둘째 아이에 대한 속설과 딱 맞아떨어진다.
세 살, 여섯 살짜리 남자 형제를 둔 주부 우미경(37)씨는 둘째 아이가 집안 분위기를 밝게 해 주는 존재라고 말한다. "형은 개구쟁이에 고집이 센 반면, 둘째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알더군요. 엄마가 속상해하면 다가와 위로해 주고, 장난감도 스스로 정리하고 한마디로 예쁜 짓만 골라하는 녀석이에요."
하지만 어떤 둘째들은 마음 한쪽에 슬픔을 달고 산다. 시인 신현림(45)씨는 "나야말로 설움 많은 둘째 딸"이라고 말한다. 가부장적인 3녀1남 가정에서 자란 신씨는 "사과를 먹어도 제일 좋은 건 남동생이, 그 다음 건 언니와 막내가, 마지막에 제일 못생긴 걸 내가 먹었다. 둘째로 태어나 포기할 게 많았다"고 한다. 그녀의 존재가 빛을 발한 건 성인이 되고나서다. 독립군처럼 홀로 자기 영역을 구축해 나간 그녀는 지금은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야무진 둘째'로 대접받고 있다.
2002년 영국 BBC의 보도는 더 흥미롭다. 둘째는 부모가 맏이만큼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려는 본능 덕에 창조적 발전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일명 '아우 우성론'이다. 심리학자이자 영화평론가인 심영섭씨 또한 "마틴 루터 킹 등 역사의 반란자는 둘째가 많았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 경쟁심이 삶을 좀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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