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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좀 더 꼼꼼히 챙겼으면.

양창모 |2007.03.13 13:18
조회 11 |추천 0


 

 모든 사람들의 원초적인 본능 중 하나는 ‘소통’일 것이다. 누구나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본질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 소통의 최우선 전제라는 사실쯤은 누구나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일방적인 소통이란 ‘동그란 네모’와도 같은 형용모순인 것이다. 그런데 맙소사, <타인의 삶>은 도청을 하는 한 남자와 도청당하는 두 남녀가 ‘소통’하는 이야기다. 어떻게 이런 기적같은 일이 가능할까. <타인의 삶>이 진정한 감동을 주려면, 이 기적을 단순히 ‘기적’으로 포장하면 안될 터이다. 감시와 도청이라는, 소통의 불가능성이 확연한 상황에서 소통으로 이뤄지는 과정을 꼼꼼하게 챙기면서 다루어야 할 터이다. <타인의 삶>은 과연 그랬던가.

 

 동독의 비밀경찰 소속의, 주인공 ‘위즐러’의 변화는 어디에서 발생한 것일까. 물론 여러 가지, 추론 가능한 맥락들이 보이긴 했다. 위즐러는 투철한 신념의 소유자다. 그것은 곧 그가 ‘나름대로’ 순수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의 집은 장식과 호화가구가 전혀 없이 굉장히 검박하며, “계급철폐”를 해야 한다며 경찰학교 학생들과 같은 자리에서 앉는 모습 등은 청교도적인 굳건함마저 연상시킨다. 그런 위즐러가 도청하는 두 남녀,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는 ‘불순한’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연극이라는 자신의 꿈을 이곳, 동독에서 펼쳐보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 순수한 열정의 사람들이다. 이 지점에서 위즐러가 변화했을까?

 

 두 번째 추론. 동독이념의 투철한 수호자였던 위즐러는 당시 부패한 여러 동독 경찰과 고위층들의 모습을 보고 혼란에 빠진다. 그의 지위를 이용해 크리스타와 같이 자려는 문화부 장관, 박쥐같이 처신하는 비밀경찰 중령 등. 자신이 충성하는 이념의 수호자들이 변질되는 과정속에서 위즐러가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드라이만이 (도청 초기에) 서독으로의 탈출을 꿈도 꾸지 않으며 크리스타가 정부로부터 ‘찍힌’ 드라이만의 은사와 가까이 해서 좋을게 없다고 드라이만에게 충고하는 소리를. 이념적으로 소박한 그들이 타락한 정권에 짓눌려 괴로워하는 과정들은 위즐러는 다 들은 것이다. 이것이 위즐러가 변화한 이유였을까?

 

 나는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위즐러가 도청하고, 감시하고, 고문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과 드라이만·크라스타는 무엇이 달랐을까? 그전에 감시한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처음부터 ‘불순’했으며, 서독으로 빠져나갈 계획이 처음부터 있었던가. 위즐러가 서독탈출을 도와준 한 사내를 심문하는 첫 장면을 기억해보자. 그는 물론 서독탈출을 도와줬으며, 처음에 위즐러에게 거짓증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허나 그 사내의 소박한 표정과 심문이 진행되면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피곤함, 가족 얘기를 꺼내자 터트리는 울음 등에서 그 사내 또한 드라이만·크리스타와 다를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감독의 생각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난 계속 생각해봐도, ‘당췌 왜’ 위즐러가 이 드라이만·크리스타를 도청했을때만 감화를 받고 소통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머리를 쥐어짜낸 마지막 추론은 그들이 ‘예술’을 한다는 것. 소나타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을 들으며 위즐러가 흘리는 눈물. 드라이만의 브레히트를 몰래 읽는 위즐러의 눈길. 글쎄, 예술로 인해 그렇게 투철한 사명가가 변화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인데. 그래서 난 이 영화가 가장 중요한 ‘소통’이란 과정을 단순히 기적으로 포장하고 말았다, 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 이렇게 쓰고 나니깐 <타인의 삶>이 정말 안 좋은 영화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아니다. 앞서 얘기한 부분을 ‘눈감아준다면’ 충분히 감동받으며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무거운 주제에 코믹적인 요소를 섞어서 충분히 재미있게 만들어냈다. 특히 위즐러 역의 울리치 뮈헤의 절제된 연기는 정말 뛰어났다. 연기의 최고는 “저 사람 연기 오방 잘한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것보다 진짜 ‘그 사람인것 양’ 돼버리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울리치 뮈헤가 딱 그랬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는 이것이다. <타인의 삶>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살짝 눈 감아줄’ 사소한 범위가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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