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풀물

송한경 |2007.03.16 20:07
조회 18 |추천 0
 

 

  철민씨가 암에 걸린 것은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취업준비를 하느라 도서관에서 밤을 세우며 공부하던 그 즈음이었다. 평소에도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았던 탓에 '내 체질이 원래 그러려니'하고 넘긴 것이 그만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거기에다 계속되는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식사등이 겹쳐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이 왔을 때 비로소 병원을 찾았고 검사결과를 알려주는 의사의 표정만으로도 얼마나 병이 심각한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의사의 질타가 먼 꿈나라에서 들려오는 음성인 듯 가물거리고 천지간에 모든 것이 암흑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잠깐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병원을 나서는 철민씨에게 가장 먼저 닥친 감정은 분노였다. 결코 길지 않은 생을 살면서 남에게 이렇다할 폐 한번 끼친 적이 없이 살았건만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처음에는 그저 실감이 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후 계속되는 통증으로 그나마 울분을 토해낼 정신조차 없이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진단을 받았다.

  

  위암 - 그것도 이미 근처의 장기까지 암세포가 진행된 말기에 가까운 암이었다. 당장 입원하여 치료를 시작한 철민씨에게 암 이상으로 고통스럽게 다가 온 것은 치료비였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 근근히 생활하시는 부모님에게도 철민씨의 그 엄청난 치료비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거금이었고 그것을 잘 아는 철민씨의 입장에서도 부모님에게 큰 부담을 드릴 수 없는 처지였다. 자연히 기본적인 치료만 이루어졌고 어느 날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은 글자그대로 사형선고로 다가왔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지만 철민씨는 담담히 짐을 싸서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짐을 싸고 그래도 수구초심이라 고향이 죽기에는 타향보다 나으리라 생각한 철민씨는 그날로 지친 몸을 고향으로 향하는 버스에 실었다.

  

  철민씨의 낙향은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졌고 고향에서도 그의 병을 아는 사람은 최측근 친척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느덧 해가 바뀌고 봄이 왔다 철민씨에게는 그야말로 의미있게 다가오는 봄이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차치하고라도 그동안 정말 잊고 살았던 고향의 모든 것이 전혀 새롭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심히 지나치던 풀 한 포기조차도 무심히 볼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그들이 자신보다 더 오래 이 세상에서 태양을 바라보는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고통은 날로 심해졌고 철민씨의 생활은 자연히 집안에서 지내는 것으로 점철되었다

  

  어느 이른 아침 그날따라 일찍 찾아온 통증을 달래기 위해 고향집 뒤편에 있는 작은 호숫가 방죽으로 이른 행보를 하였다. 못 둑에는 인적이 없었고 어느 부지런한 농부가 풀어놓은 어미 소와 송아지 한 마리가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한동안 물끄러미 풀을 뜯는 모습을 지켜보던 철민씨에게 문득 한가한 호기심이 일었다. 도대체 소란 놈들은 무얼 저리 하루 종일 방죽을 들락거리며 우물거리는지? 가만히 소에게 다가가서 그놈들이 먹는 것을 유심히 보던 철민씨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소가 먹을 수 있는 것이면 사람도 먹을 수 있고 그게 독이 아닌 이상 음이든 양이든 어떤 약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유심히 소가뜯는 풀을 기억했다가 그 풀들을 따로 모아 보았다.  주로 방죽에 흐느러지게 나있는 숱한 풀들 중 소가 먹는 것은 몇 가지로 압축되었고 철민씨는 그것을 모두 기억하여 낫으로 베어 한가한 마당한가운데서 말렸다.

  

  몇일이 지나자 방죽으로 이제는 염소 떼가 나타나 풀을 뜯기 시작했다 그런데 염소가 먹는 것은 소가 먹는 것과 또 달랐다 이제는 염소가 먹는 풀들을 따로 베어 마당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간간히 방죽을 찾아오는 각종 동물들이 먹는 풀을 일일이 기억하여 베어 말렸고 풀이 적당히 마른 후 철민씨는 그것을 작두로 잘게 썰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섞었다.  그리고 약탕관에 적당량을 넣고 손수 마당에서 달였다. 처음으로 그 풀물 한모금 을 넘기는 순간 목구멍에서 당장 거부반응이 왔다.  쓰고 떫고 시고 모든 세상의 맛이 이 국물 속에 어우러져 있는 듯한 맛이었다. 철민씨는 어차피 기댈 언덕이 없는 소였다.

  

  그것을 먹기 시작한 철민씨는 하루하루가 더욱 고통스러웠다. 암 자체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 풀물을 먹기 시작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구토를 해야 했고 입안은 모두 헐어 백태가 끼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세상에 대한 분함과 오기를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삭히고 있었다.  약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절규였다.  왜 하필? 하면서 풀물을 들이키며 세상을 원망하고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새벽 이른 잠이 깬 철민씨의 몸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몸의 통증은 인간이 참아내기에는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 이제는 한계가 왔음을 느낀 철민씨는 이제 자신이 평소 생각했던 마지막 일을 실행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고 집 뒤 못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이제는 고통을 그만 그치고 싶었다. 아니 무서웠다. 숨이 넘어가는 한 순간만 참으면 그 지독한 고통은 덜 수 있을 것이라는 최후의 결단을 내린것이다. 방죽에 앉아 세상에서 마지막 보는 해를 보며 잠깐 졸기 시작했고 잠이 깬 후 철민씨는 갑자기 자신의 몸에 이상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몸에서 어떤 징후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매우 신선하고 선별적이어서 전혀 의학에 대한 상식이 없는 철민씨로써도 그것이 삶을 담보하는 매우 귀중한 변화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 죽는 것은 언제라도 할 수 있다. 한 번만 더 시도해 보자 어차피 이 고통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한 철민씨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와 풀물 한 그릇을 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역하던 그 것이 그날따라 먹기가 수월했고 먹으면 바로 시작되던 구토의 증상과 위장의 고통도 많이 줄어들었다. 철민씨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계속 그 풀물을 복용하였고 하루가 다르게 철민씨의 몸은 원기를 회복하였다

  

  낙향한지 1년이 지나고 이미 철민씨에게 약속된 죽음의 날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였다. 철민씨는 과감하게 병원을 다시 찾았다 깜짝 놀라는 의사에게 검사를 의뢰하였고 그 결과는 말로만 듣던 기적 바로 그것이었다.  몸 전체로 전이의 단계를 밟던 암세포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오히려 암세포가 죽은 주위로 새로운 세포가 자란다는 진단이 나왔다


  철민씨는 이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 기적이 그 풀물 때문인지 아니면 자연 발생적인것인지 아니면 하늘의 도움인지는 단정 짓고 싶지 않았고 또 짓고 싶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철민씨의 하늘이 다시 열렸다는 것이고 이것을 철처히 느끼고 누리면 되는 것이었다 지금 철민씨는 옛날의 철민씨가 아니다 취직을 못해 안절부절 하지도 않고 남들보다 가진 게 없다고 푸념하지도 않는다 그저 세상은 아름답고 그저 고맙기만 할 뿐인것이다

오늘도 철민씨의 고향집 그 못 둑에서는 어미 소와 송아지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을 것이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