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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광란.

이승준 |2007.03.16 21:45
조회 29 |추천 0


  6. 12

 

  햇빛 쨍쨍한 뜨거운 유월, 맑은 날이었다. 이 날도 항상 여느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쾅쾅-

  철문 밖에서 들려오는 거친 육두문자들, 몸이 저절로 움츠려진다. 언젠가부터 혼자 살기 시작한 열평 남짓한 아파트지만, 어느샌가 부터 매일 시끄러운 불청객이 철문을 두들기곤 한다. 전화기는 빼놓은지 오래다. 아니 어차피 전화세도 내지않았으니 저절로 끊어졌겠지만…

 

  쾅쾅쾅-

  이 소리는 밤 늦게까지 끊어질 줄 모른다. 또 그들이 가고 나면 윗집, 아랫집. 같은 아파트 라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 문 밑에 작은 봉투를 집어넣는다. 읽어보면 언제나 같은 내용. 먼저 간단한 약식 인사와 함께 조용히 좀 해달라는 부탁,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자꾸 시끄럽게 군다면 고소하겠다는 협박까지 첨부한 편지.
  빌어먹을, 시끄럽게 군 것은 내가 아니라 저 덩치들인데…. 저 겁쟁이들은 커다란 덩치들 보다는 내가 만만하니까 나한테 따지는 것이다. 나는 아무런 짓도 한 것이 없다. 그저 부모님이 남겨준 빚을 고스란히 떠넘겨 받았을 뿐. 아니 그것보다 저들은 내 사정따위는 상관 않겠지….

 

  나는 몸을 뉘이고 있었다. 하지만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환기라는 것 자체를 생각치 않아, 한층 심화되가는 뜨거운 열기도 한 몫했지만…. 그것보다는 지금이라도 밝은 빛의 뒤. 그 뒤에 숨어 있는 어둠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아마 이대로 끌려 들어간다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겠지.

  문을 열기로 결심했다. 몽롱해진 내 정신 속에서, 어둠보다는… 그것이 더 나은 방법인 것 같았다. 


  6.17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남은 것은 손목의 삭흔削痕과 오랜 방황을 마치고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아버지. 내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풀려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어린 나이에다가 아는 것도 없는 나를 때리진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입을 놀리게 둘 수도 없었던지, 자그마한 방안에 손목을 묶은 채 가둬둔 것만 빼면… 차라리 집보단 나았다고 할까?

  사채업자라 불리는 사회의 하이에나들은 아무 죄 없는 가족을 물어뜯었다. 그들에게 빈틈을 보인 아버지가 잘못이었다면 잘못이었을까. 아버지는 그들에게 내 앞에서 그들에게 무릎꿇고 말그대로 죽도록 빌고 또 빌었다. 왠지 억울했다. 분했다. 슬펐다. 짜증났다. 우울했다. 죽여버리고 싶다. 죽어버리고 싶다.

 

  "내 앞에서 저딴 새끼들한테 무릎 꿇지마!!"

 

  나도 모르게 소리질렀다. 그 뒤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열 다섯의 나이에 내 앞에 무릎 꿇은 아버지를 보았다.


  6.1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명동 거리를 걸었다. 오렌지빛 긴 머리를 이리저리 흐트려 놓은 채로, 얇은 나시에 오른 어깨쪽부터 팔꿈치까지는 문신을 새겨넣고, 왼쪽 눈썹 끄트머리와 입술 오른쪽 끄트머리 위에 피어싱을 박은채로.
  입을 삐죽 내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연인의 팔짱을 낀채로, 맛있는 것을 먹으러, 영화를 보러, 혹은 길다니는 반반한 여자들을 꼬셔보려고…  아마 저 멍청이들은 어제 안좋은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천연덕스럽게 웃어제낄 것이다.

  머저리들…. 웃지 말란 말이야….

 

  부아앙-

  CBR 400의 배기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 뒤를 이어 쇼바를 바짝 올린 VF가 뒤를 따르고… 한창 걷다보니 명동을 벗어난지 오래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달리고 싶어….

  대략적 불량끼…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


  6.7

 

  부아앙-

  시속 6에서 단숨에 시속 3까지 떨어뜨리고, 가볍게 걸리는 듯한 느낌으로 엔진 브레이크. 좌우의 스텝을 연속으로 지면에 부딫히면, 아스팔트와 철이 닿아 불꽃처럼 폭죽이 터진다. 리듬을 잘 타면 뒤에 앉은 녀석의 머리가 시계추처럼 흔들려서 재밌어.

 

  "목아파!"

 

  뒤에 앉은 녀석이 소리 질렀다. 살짝 미소지었다. 이 순간이 최고다. 이 폭음만 있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최강이다.

 

  "잘 달리는데?"
 
  옆을 바싹 다가붙은 바이크 한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띠에 이름을 내걸어도, 의욕이 없는 평범한 바이크. 아무리봐도 "재미로 달린다."라는 느낌이야. 꼭 저런 녀석이 경찰한테 쫓기면 바로 체포 돼.  

 

  "무시하냐?"

 

  부아앙-

  스로틀을 더 세게 당겨 그녀석을 앞으로 지나쳐 앞을 가로 막았다.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본 뒤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가슴이 시원했다. 내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좋았다.

  세상따윈 상관없어. 나는 축제를 즐기고 있을 뿐야─.

 

  6.13

 

  고개를 삐딱하게 돌리고, 바이크에 몸을 기대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그는 웃었다.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지?

 

  "진짜 불량배는 더 큰 외로움을 품은 눈을 하고 있지. 난 알수있다. 넌 보통 애야. 나도 니 나이땐…"

 

  겨우 교통 순경주제에 설교를 한다….  
  벌써 하교 시간인가? 많은 수의 중딩들이 바로 옆 인도를 걸어가며 웃고 지나간다. 내 모습이 웃긴가보다. 조그만 녀석들이… 항상 내 앞에선 군기가 잡혀있던 어린 후배들이 생각났다.
  젠장… 평범한 녀석들이 보는데 쪽팔리게…

  그는 설교를 하듯 나를 놓아주려고 하지않았다. 나는 그에게 버럭 화를 내고는 얼른 바이크에 올라탔다. 딱지를 떼든, 벌금을 물든 맘대로 하라고.

 

  부아앙-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뒤로하고 스로틀을 평소보다 강하게 당겼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세상 사람들이 냉담한 눈으로 우릴 쳐다보는 것쯤은 알아. 하지만 세상이 최고로 즐거우면 우리도 폭주족 같은건 안해!


  6.1

 

  또 유월이 돌아왔다. 일을 시작했다. 모순이었다. 내가 그토록 더러운 놈들이라고 욕하던 그들을 따라하려 하다니.
  아는 선배의 밑에서 하는 일. 바로 사채업이었다. 아니 사채업자 밑에서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쓰레기 심부름꾼이라고 해야 옳을지도 몰랐다.

  갑작스레 선배가 한 말이 떠오른다.

  인간 같지도 않으면서 버젓이 인간처럼 살고 있는, 주제 파악 못하고 허영심만 가득차 있는 쓰레기들에게 종지부를 찍는 것이, 우리 사채업자들의 일이다. 그 쓰레기들을 인간으로 생각지 마라. 동정따윈 돈이 안되거든─!

  피식 웃었다.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인데. 아주 옳은 말인데─!

  …
  왠지 가슴이 아려왔다.
 
 
  6.8

 

  방송국에서 우릴 찾아왔다. 요즘 뜨고 있다는 미녀 게스트와 삼류 MC가 우리를 향해 왔다. 그리고 그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여러 대의 빽차. 방송을 빌미로 우릴 잡아 처넣으려는 속셈인가?
  하지만 대가리에 총맞은 후배 녀석들은 재밌어보인다며, 방송에 출연하고 시덥잖은 하이바를 받아왔다. 월드컵기념이라나?… 미친거지?

 

  저들이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우리를 이해한다고, 사춘기때는 자신도 그랬다고. 하지만 아무리 어려도 그들의 가식적인 표정에 속지 않을거다. 적어도 우린 바보는 아니니까.

  빠른 속도로 그들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를 찾아온 저 둘을 받아버리고, 빽차들을 뚫어버리고 싶었다.  

  그런 유치한 태도로 우릴 이해한다고 뻔뻔하게 말하지마. 늬들은 보통 뻥쟁이야─!
 

  6.14

 

  이 날의 폭음은 평소와 달리 왠지 애처롭게 들렸다. 일주일만에 죽어버리는 매미처럼. 미친듯이 운다.

  이제 선배의 일은 도와주지 못하게 됐다. 그는 몇일 전에 이미 빵으로 들어갔거든.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 혼자 살고 있는 나는 선배의 일을 도와주며 기름 값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돈을 충당했었으니까….
 갑작스레 낮에 일이 떠올랐다.
  
  아무리 취업난이지만, 겨우 홀서빙이 면접심사라니… 지나가던 똥개가 웃겠군….

  아무튼 웃긴것은, 무슨 이유에선지 그 후미진 고깃집에서 일한다는 사람이 나 말고도 두명이나 더 있다는 것이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찾아갔다. 그곳의 주인이라는 사람은 대머리 늙은이였다. 평소같았으면 비웃어줬겠지만 별수없었다. 그 순간만큼이라도 참아야지.

  왼쪽부터 차례대로 물었다. 특기가 무어냐고. 옆의 두놈은 시덥잖은 답을 내놨다. 주인에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똥강아지처럼.
  마지막으로 내 차례.

 

  "폭준데요─?"

 

  대머리 주인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서는, 마구 육두문자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양아치가 어쨌느니, 처음봤을때부터 미친놈 같았느니. …죽여버릴까?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고 대머리 늙은이야! 네가 특기가 뭐냐고 물으니까 솔직하게 대답한 것 뿐이잖냐고!"

 

  대머리의 멱살을 잡고 소리를 쳤다. 옆에 있던 두 녀석은 날 말리려 했지만, 그 전에 내팽개쳐 버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버렸다. 하지만… 겨우 이 늙은이를 때려서 빵에 가기는 싫었다. 그래서 나와버렸다.

 

  파란 하늘을 보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젠장할 세상아─!

  폭주족이란 건, 달리지 않으면 그저 한가한 놈들이다.
  그래서 폭주한다. 이왕 하는 거라면 전속으로 달린다. 어딘가의 누군가가 정해준 길은 재미없다. 극악과 폭력으로 영웅인척 하는 것도 재미없다. 진짜 폭주족은 여리고 허무하다.


  7.1

 

  여름은 갔다. 나의 유월은 지나갔다. 나도 지나간다. 드디어 탈출이다. 이 세상에서….

 

  콰앙-

 

  * * *

 

  "그 애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와서 우는 사람도…. 그 아이를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다네. 그 녀석 부모는 아들에게 빚만 떠넘겨주고 세상을 떴고… 최악의 장례식이었어."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 담배를 한모금 깊이 들이쉬더니 말을 이었다.

  "인간의 가치는 그 주변사람으로 알 수 있다네. 죽었을때. 내 손자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었어…. 그러나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손자지만… 그래도 살아있었다면…."

  만약 살아만있었다면….
 

 

         - 타카하시 츠토무의 폭음열도를 읽고 나서 쓴 단편.

 

 

  ps.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자, 가장 나와 닮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단편. 쓰고난 소감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정말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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