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 ‘우설’을 권하면 처음엔 모두 고갯짓을 한다. 어떻게 징그럽게 소 혓바닥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맛있으니 한번 먹어보라’고 권유하면, 그중 몇몇은 시도를 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한다. 그런 사람은 곧 우설 마니아가 된다. 패션이나 스타일도 그런 것이다. 처음엔 어렵지만 막상 시도했을 때 그 결과물이 훌륭했다고 몸소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내 것이 되고, 스타일리시해질 수 있다.
지금은 압구정동에서 ‘야키니쿠’ 집을 경영하고 있지만 한때 일본에서 패션 공부를 했다. 대학에서는 ‘기계’를 전공했다.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꾸미는 일, 패션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땐 한국에서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입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부모님께는 인테리어를 공부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도쿄의 문화복장학원에 3년 동안 다녔다. 그게 26세 때였다. ‘좀 특이하다’고 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남자도 세상에는 하나쯤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나는 좀더 적극적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자신의 스타일을 찾기 어렵다. 무슨 말인가 하면, 스타일은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타고난 감각의 소유자가 아닌 다음에야 끊임없이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 디자인, 색상을 찾아 모험을 떠나야 한다. 나는 한때 치마를 입고 다녔다. 발목까지 오는 롱스커트였다.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과정 중 하나였다. 그때는 ‘튀는’ 스타일을 좋아했다. 화려하고 특이한 것. 지금 같아서는 ‘어떻게 입었을까?’ 싶은 옷들이 많았다. 어쩌면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금의 내 스타일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에 있을 때니까 가능하지 않았나?’라고 묻는다면,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가? 난 옷 한 벌을 사기 위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옷을 입어볼 용의가 있다. 제아무리 근사하고 훌륭해 보이는 옷이라도 내 몸과 맞지 않으면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옷감 덩어리에 불과하다. 사람의 몸은 제각각이다. 배가 나오기도, 팔다리가 짧을 수도, 머리가 클 수도, 피부가 가무잡잡할 수도 있다. 옆 사람이 입었을 때 멋지다고 해서 나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찾아가는 과정’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기는 어렵다. 많이 입어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다년간의 시도와 노력 끝에 얻게 된 몇 가지 노하우 가운데 하나가 있다. 나는 바지를 살 때 실제 허리치수보다 한 치수 큰 걸 산다. 이렇게 하면 모양이 예쁘게 떨어진다. 흔히들 ‘핏이 예쁘다’고 하는데, 옷의 모양이나 입었을 때 나타나는 실루엣을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한 치수 큰 바지를 입으면 허리 부분에 살짝 주름이 잡히면서 상대적으로 허리는 들어가 보이는 실루엣이 만들어진다. 배에서 불끈 조여서 아저씨처럼 입는 것이 아니라, 슬쩍 밑으로 처진 듯 유연하고 부드럽게…. 개인적으로는 ‘디젤’과 ‘폴 스미스’를 좋아한다. 특이하고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은근한 멋을 내주는 아이템들이 많다. 액세서리 브랜드로는 ‘비스코(Bisco)’를 즐긴다. 호주의 서핑 브랜드로 알고 있는데, 정말 마음에 든다. 쉽게 찾을 수 없는 디자인이 많다. 옷값에 관해서는 ‘대중이 가격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비싼 돈 주고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그 옷값은 비쌀 수밖에 없다. 비싸고 고급스러워도 소비자가 찾지 않으면 결국 망하는 것 아닌가. 옷값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엄연히 존재한다.
유행과 트렌드는 3년 주기로 순환하는 것 같다. 결국 세상에 나온 옷들은 비슷비슷하다는 얘기다. 그러니 좀더 큰 것에 눈을 돌려보자. 소재나 텍스타일 디자인 같은 것. 그러면 옷 입기가 훨씬 재미있어진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몸에 꼭 끼는 옷과 결별할 것
사람들은 종종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단순함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고민도 많이 하고 복잡한 생각에도 빠져봐야 하고, 갈등도 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고 있지?’ 하는 단계가 온다. 그때야 비로소 평온함이 찾아오는 것이다. 단순한 인생은 그런 과정을 거쳐야 가능해진다. 인생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옷 입기야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믿음 중의 하나는, 어떤 사람이 그 직업에 20년 이상 종사하면 한눈에도 ‘아, 이 사람은 뭘 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분위기를 풍겨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프로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날 보고 ‘혹시 동사무소에서 근무하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건 정말 곤란한 일이다. 교단에서 30년 동안 가르쳤다면 선생님처럼 보여야 하고, 오랫동안 글을 써온 사람이라면 글쟁이로서의 분위기가 풍겨야 한다. 직업은 자신의 삶이다. 프로에겐 특히 더 그렇다. 더 잘하려고, 더 나아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몰두하다 보면 직업의 분위기가 몸에 자연스럽게 배게 되는 게 당연지사다. 누군가 나에게 “혹시 음악 하십니까? 아니면 그림 그리세요?” 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비교적 내 일을 잘 꾸려왔다고 말할 수 있겠지.
나는 35년 동안 오보에를 불어왔다. 17세, 그때 오보에 소리에 매료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오보에를 빼놓고 내 삶을 얘기하기란 불가능하다. 운명처럼, 오보에와 인생을 함께했다. 하지만 직업인으로서 오보이스트에 대한 얘기를 하자면, 오보에는 소리는 아름답지만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는 결코 만만한 악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주자들 가운데 평균 수명이 가장 짧은 이들도 오보이스트다. 그러나, 언제 들어도 역시 오보에 소리는 아름답다.
클래식 연주자와 검은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연주복은 항상 검은색이기 때문이다. 검은색은 깔끔하다. 그리고 화려하다. 검은색이 화려한 색깔이라고 하면 다들 의아해하겠지만, 이건 입으면서 깨닫게 된 것인데, 검은색만큼 인물을 돋보이게 만드는 색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동양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검은색 머리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나 디자이너들 역시 검은색을 선호한다. 거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연주 때 검은색을 늘 입어야 하므로, 평소에는 즐기지 않는다. 이것 역시 직업에서 오는 특성일 것이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그때는 대학에도 교복이 있었지만-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유를 즐기기에는 그 경험이 많이 부족했던 탓인데, 그래서인지 대학 4년 내내 내 차림은 청바지에 운동화였다. 그땐 옷을 사면, 두 벌에 한 벌꼴로 옷장 안에 처박혔다. 보기엔 괜찮은 것 같아 사지만, 막상 입어보면 안 어울리기 일쑤였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나만의 노하우가 하나 둘 생겨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지금 나는 수십 개의 넥타이를 갖고 있지만 정작 매는 넥타이는 대여섯 개에 지나지 않는다. 사장되는 넥타이를 줄이기 위해, 순서를 바꾸었다. 양복을 결정하고 난 후 그 양복에 어울리는 넥타이를 집중적으로 고르는 것이다. 가끔 넥타이를 선물로 받을 때 곤혹스러운 것은, 그 넥타이와 어울리는 양복이 없을 때다. 그러니 넥타이 선물은, 그 사람이 어떤 양복을 갖고 있고 어떤 넥타이를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한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낫다.
셔츠에 대한 얘기라면, 난 여름에도 긴 팔 셔츠를 입는다. 긴 팔 셔츠는 굉장히 경제적인 아이템이다. 더울 때는 걷어 입으면 되고 봄, 가을에도 요긴하게 입을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덤으로 따라오는 건, 긴소매 셔츠가 반소매 셔츠에 비해 한결 멋스러워 보인다는 점이다.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격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휴고 보스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면서 한 가지 피하게 되는 옷이 있는데 그건 바로 몸에 꼭 끼는 아이템들이다. 중년이 되면 체형이 변한다. 적당히 배도 나오고 허리고 굵어진다. 그런 체형을 커버할 수 있는 여유 있고 넉넉한 옷이 필요해지는 시기가 남자에겐 반드시 찾아온다. 가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에게 어울릴 법한 재기발랄한 옷을 입고 있을 때가 있다. 옷이라는 것이 꼭 세대 구분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건 좀 아니지 싶다. 썩 잘 어울리게 입었다고는 해도, 결코 멋스럽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편견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옷은 분명 그 나이와 어울리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수염에 대하여. 내가 처음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을 때 아버님은 “오케스트라에서 안 쫓겨나냐?”라고 물으셨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이다. 수염 기르는 남자가 흔치 않던 세상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수염을 기르게 된 건, 독일에서 유학하면서부터다. 며칠 동안 기숙사 안에서만 생활하다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면도를 깜박한 채 외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주는 것이 아닌가. 내가 봐도 나쁘지 않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수염을 기르고 있다. 스타일이란 것은 종종, 그렇게 우연히 찾아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너무 스타일리시하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교양프로그램 PD일을 하다 보면 길거리에서 일반인들을 인터뷰할 일이 자주 생긴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얘기를 나눠야 하니,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상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판단의 기초는, 미안하게도 그 사람의 옷차림이다. 옷차림은 그, 혹은 그녀가 어떤 분위기의 사람인가, 어떤 직업군에 속해 있는가, 나이는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들의 기초적인 판단 근거가 되어준다. 화려하진 않아도 깔끔하게 차려입었으면 일단은 오케이다. 기본적으로 호감이 가는 외모의 소유자가 시청자들에게도 호감을 준다. 예쁜 여성이 나오면 시청률은 올라간다. 간혹 수영복 차림의 여성이 텔레비전에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분당(分當) 시청률은 수직곡선을 그리며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그러니, 거리 인물 인터뷰가 쉬울 리가 없다.
PD가 양복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면 십중팔구 이런 얘기를 듣는다. “오늘 상갓집에라도 가는 모양이지?” 혹은 “선 보는 날이에요?” 방송국에서 수트 차림과 PD는 어울리지 않는 궁합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야 하니, 구두 신고 타이 매고 양복저고리 입고서야 원활하게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PD들은 직업 특성상 캐주얼한 옷차림을 선호하는 것이다. 처음 방송국에 입사했을 때 라운드 면 티셔츠를 자주 입고 다녔다. 어느 날 부장님이 그 모습을 보더니 “김 PD는 FD 같아 보이네”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제야 캐주얼한 옷차림에도 등급이 있고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라운드 면 티셔츠는 촬영이 있거나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는 피하는 것이 좋다.
교양제작국에서 일하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된다. 이럴 때 PD에게는 5∼10분 안에 그 사람이 어떤 유형인지를 파악해내는 능력이 요구된다.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질문의 유형도 바뀌어야 하고, 접근법도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만 들이대도 원하는 컷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시간씩 찍어도 건질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본 인상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관공서나 기업체, 기관의 책임자에게 인터뷰를 따야 할 일이 있을 때 종종 이 책임자들은 부하 직원에게 인터뷰를 떠넘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실무자와 책임자는 확연히 구분된다. 역시 미안하게도, 실무자들에게서는 샐러리맨의 전형적인 코드들이 읽혀진다. 같은 양복이라고 해도 어딘지 모르게 허술해 보이는데, 아마도 항상 같은 옷을 입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잘 다려진 셔츠, 몸에 알맞게 붙은 양복, 다림질이 한 번이라도 더 간 듯한 차림새라면 그는 책임자일 가능성이 높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데,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사회생활에 옷차림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차림새만으로 사람을 파악하다가 큰코다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너무 잘 차려입었거나 굉장히 스타일리시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도무지 어떤 유형의 사람들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가장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부류다.
입장을 바꿔놓고 보니, 나 역시 타인에게 어떤 느낌으로 비칠지 고민해야 한다. 그들에게 PD로서 신뢰감을 심어주지 못하면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검찰이나 시청, 경찰서 등을 찾거나 혹은 교수나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구할 때는 ‘예의를 갖춘 옷차림’이 필수적이다. 캐주얼한 스타일과 정장 스타일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100퍼센트 다르다. 편한 차림으로 공식적인 인터뷰를 하려 하면 ‘당신이 PD 맞냐?’는 식으로 쳐다본다. 그래서는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다. 포멀한 양복까지는 아니어도 깃이 달린 셔츠에 재킷 정도는 입어줘야 한다. 나 역시 뭔가 공식적인 분위기를 풍김으로써 그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취할 수 있는 스타일에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요즘 한창 유행이라고 하는 플라워 프린트 셔츠 같은 것은 언감생심, 입어볼 수도 없다. 옷장을 열면 비슷비슷한 옷들이 즐비하다. 오죽하면 검은색 폴로 티셔츠만 다섯 장일까. 어쩌면 나 역시 엄격한 ‘자기 검열’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 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여러 차례 고사했다. 내 자신이 이런 곳에 등장할 만큼 스타일리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심과 노력,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기자의 감언이설에 속아넘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이렇게 나오게 되었지만.
사실, 고백하건대 옷에 대한 관심만큼은 누구보다도 많다. 취미 삼아 쇼핑을 즐기기도 한다. 백화점이나 패션 숍 돌아다니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편이고, 집사람과 쇼핑하는 것도 즐기곤 한다. 어떤 땐 아내가 나보다 먼저 지칠 정도다. 웬만한 패션 브랜드의 이름은 물론, 그 시즌의 트렌드며 유행하는 아이템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매번 비슷비슷한 옷을 사게 되지만 가끔은 평소에 입지 못하더라도 휴일에 입을 요량으로 과감히 모험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옷들은 옷걸이에 걸려만 있다. 만약 이런 얘기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로선 그나마 다행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