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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들과 평화롭게 공유하는 법

녹색연합 |2007.03.23 15:52
조회 23 |추천 0

쥐의 출현에 대한 아내의 첫 반응은 쥐와 함께 살 수는 없다는 거였다. 쥐와 야생동물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설명도 아내의 공포를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사 와서 겨울이라 먹을거리가 부족할 것이라며, 눈치에도 아랑곳 않고 새들과 야생동물들을 위해 식량을 헌신해 나누던,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특집] 공유

                              한 지붕 두 가족
                     - 생쥐들과 평화롭게 공유하는 법

                                                        글/사진·안진구

꺄악~ 쥐가 나타났다!
요 며칠 사이 난데없는 비명소리로 집안이 요란했다. “꺄악~” “옴마야!” “히엑!” 종류와 높낮이도 가지가지다. 그동안 우아한 여성으로 자처하던 아내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참아보려 하지만 터져 나오는 본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흙벽돌과 통나무로 겉을 단장하고 구들방이 갖춰진 시골마을 집으로 이사를 왔다. 별장으로 만든 집이라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좁은 살림집에 지나지 않는다. 1960년대 상량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오랜 시골집을 새로 손질한 터라 깔끔한 겉모습 속에 옛집의 속살이 그대로다.
이사 온 지 한 달쯤 지나 그림 같은 집에 대한 감상이 번잡한 일상에 묻힐 즈음. 이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해 주려는 듯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쥐들! ‘저 푸른 초원위의 그림 같은 집’에 대한 마지막 남은 감상마저 사라지는 순간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는 쥐의 출현에 신경을 곤두세워 반응한다.
한번은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막 산책을 나온 듯한 조그만 녀석이 마룻바닥 틈새로 고개를 살짝 내밀고 두리번거리다 하필 아내와 눈이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그 다음은 모두가 상상할 수 있는 그림. 무언가 대책이 있지 않고서는 가정의 평화를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쥐와 함께 살 수는 없다?
쥐의 출현에 대한 아내의 첫 반응은 쥐와 함께 살 수는 없다는 거였다. 쥐와 야생동물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설명도 아내의 공포를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사 와서 겨울이라 먹을거리가 부족할 것이라며, 눈치에도 아랑곳 않고 새들과 야생동물들을 위해 식량을 헌신해 나누던,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야생동물과 쥐에 대한 서로 다른 두가지 태도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에도 꿈쩍 않는다. 공포 앞에서 이성과 감상은 함께 설 수 없나 보다. 칼 융이 말한 그림자에 대한 공포의 원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쥐에 대한 아내의 공포심이 조금 잦아들자, 이제는 쥐를 봉쇄하기 위한 대책 마련으로 분주하다. 먼저 쥐들이 자주 출몰하는 마루바닥 사이의 구멍들과 싱크대 뒷면의 틈새를 스카치테이프로 메우고, 쥐들이 좋아하는 음식(주로 잡곡류)은 유리병으로 밀봉하고, 쥐들이 주로 이동하는 길의 배설물과 흔적을 치우다보니 부엌이 깨끗이 정리되었다. 그동안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콧방귀로 일관해 온 집안 정리정돈이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쥐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일차 예방 조치와 더불어 아내는 부지런히 주변 사람들로부터 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녔다. 주로 좋지 않은 내용만 이야기하며, 쥐에 대하여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강요했다. 유행성 출혈열을 옮긴다느니, 병균의 온상이라느니, 쥐를 쫓아낼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고 할 기세였다. 그런 이야기들에 심드렁하게 반응을 보이자 ‘쥐들이 우리 가족의 얼굴 위를 지나다니게 할 수는 없다’며 과장과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차사고로 죽을 확률보다 쥐가 옮기는 전염병으로 죽을 확률이 훨씬 낮을 것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에 마음이 흔들리는 기색이었지만, 쥐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했다.



쥐에 대한 이해의 시간
시골에서 쥐와 한방에서 지내다시피하며 자라 쥐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는 나는 아내와 쥐의 평화협정을 위한 중재자를 자처했다. 먼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내의 약점을 이용한다.
“당신의 쥐에 대해 무턱대고 싫어하는 반응과 대응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 “우리가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먼저 쥐에 대해 좀 알아야 하지 않겠나?”
하여 쥐들과 정전협정이 이루어졌다. 우선 도서관에서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쥐에 관한 책들을 빌려다 함께 살펴보았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쥐는 아이들 손바닥만한 쥐로 흔히 생쥐로 불리는데 새끼를 자주 많이 낳는다는 좋지 않은 소식과, 선입견과는 달리 목욕을 자주하며, 인간들이 먹는 곡식류를 좋아한다는 좋은 소식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자식 사랑이 끔찍하다는 대목에서 아내는 생쥐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은 누그러뜨리는 모습이었다. 아이는 쥐에 대한 엄마의 생각에는 아랑곳 없이 생쥐들의 생태에 대해서만 마냥 즐거워했다. ‘서울 쥐와 시골 쥐’를 읽으면서는 시골 쥐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생쥐에 대한 친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쥐와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적극 찾아 보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놀라운 진전이다. 도시에서 살아 온 사람으로 시골생활의 여유로운 풍경 뒤에 놓여 있는 생활의 현실을 하나씩 받아들이겠다는 부드러운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제 주사위는 생쥐들에게로 넘어갔다. 쥐들이 부엌까지 무리해서 드나드는 이유는 녀석들이 좋아하는 먹을거리가 널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우선 부엌을 정리하여 부엌을 드나들 이유가 없게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아내는 녀석들이 주로 드나드는 아궁이 입구에 먹을 것을 갖다 놓아 아궁이를 경계로 비무장지대(DMZ)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며칠이 지나자 생쥐는 더 이상 부엌을 드나들지 않았으며, 아궁이에 갖다놓은 음식만 가져가는 것이었다. 예상한 결과이지만 생쥐들과 마음이 통한 것 같아 신기하기만 했다.
지금은 더 이상 아내의 괴성을 들을 기회가 없다. 아침이면 전날 놓아둔 음식을 살피러 아궁이로 달려가는 아내와 아이. 아내는 이제 부엌일 하다 천정에서 생쥐가 지나가는 소리라도 들리면, ‘바쁘시나봐요, 생쥐씨’하며 여유를 부리기까지 한다. 생쥐 가족을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인정하며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자며 ‘평화네’라고 생쥐들의 가족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아마도 우리보다 훨씬 전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평화롭게 살아왔을 ‘평화네’ 식구들에게 끼쳤을 불편에 대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 평화네와 앞으로도 한 지붕 두 가족으로 함께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아이 말대로 ‘애기’를 너무 많이 낳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평화네에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누님네에서 뼈대 있는 집안의 강아지를 가져다 놓는다는 것이다. 아이와 아내의 관심은 ‘평화네’에서 순식간에 강아지로 옮겨갔다. 게다가 강아지의 임시거처가 평화네의 출입구인 아궁이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어렵게 평화네와 이룬 평화가 강아지의 등장으로 어찌될런지….



안진구 님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2년 전 소농공동체를 꿈꾸며 원주로 이사해 살고 있다. 지금은 원주한살림에서 일하고 있는데 ‘자연’에 기대어 개인의 ‘자립’과 지역의 ‘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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