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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김선진 |2007.03.23 22:22
조회 76 |추천 2


 

헤드라이트 빛 속에서만 내리는 겨울비처럼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이도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들, 지독한 어둠인 줄 알았는데 실은 너무 눈부신 빛인 것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그게 어둠이 아니라 너무도 밝은 빛이어서 멀어버린 것은 오히려 내 눈이었다는 것도 모르고 나는 내가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으리라.

 

 

 

 

 

사람도 나무처럼 일 년에 한 번 씩 죽음 같은 긴 잠을 자다가 깨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깨어나 연둣빛 새 이파리와 분홍빛 꽃들을 피우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늙어.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리고 죽지... 서두르지 않아도 언젠가 우리 모두.. 죽어..."

 

 

 

 

 

"윤수야, 지금 너를 제일 괴롭히는게 뭐니? 제일 두려운게 뭐지?"

 

그가 고모를 올려다 보았다. 한참을 그랬다. 적의에 찬 눈길이었다.

 

"...아침이요."

 

 

 

 

 

"그거 아까 수갑 같은 거는 우리 만난다고 차고 오는건가?"

 

"아니야. 하루 종일 차고 있어."

 

"그럼... 잘 때도?"

 

"그래... 그래서 팔 한 번 뻗고 자보는게 소원인 사람들이야. 어떤 때는 잠결에 잘못 돌아누워서 팔이 부러지는 사람도 있어. 사형 판결을 받고 길게는 그렇게 이 년 삼 년을 지내다가 죽는거야."

 

"밥은 어떻게 먹구?"

 

"젓가락질 못하니까 그릇째 들고 먹거나, 여러 명이 같은 방에 있는 경우에는 다른 재소자들이 밥을 대충 비벼주면 숟가락만 들고 겨우 먹어... 게다가 저 아이 징벌방에 보름 있었다는데 징벌방 들어가면 사람 그림자 하나 구경 못해. 등 뒤로 수갑이 묶여서 밥 그릇에 입 대고 먹어. 소위 개밥이라고 하는거지... 거기 보름 있다 나왔으니까 저도 제 정신이 아니겠지...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그럴 땐 바지에다 해결하는 거야. 보름동안..."

 

 

 

 

 

"약속한 거니까, 죽더라도 한 달 지나서 약속 다 채우고... 그러고 죽을게."

 

"그래, 그렇게 한 달 씩, 한 달 씩 자꾸 지나고 나면 우리 모두 죽어. 고모도 죽고 너도 죽어..."

 

 

 

 

 

"근데요, 저기... 왜 어떤 사람들은 옥색 옷을 입고 어떤 사람들은 푸른색 옷을 입고 그래요? ...저 푸른색 옷은 추워보이는데."

 

"옥색 옷은 자기가 사서 입는거고, 푸른 옷은 국가가 지급하는거고... 그렇죠."

 

"추운데 왜 옷을 사서 입지 않나요? 저 옥색 옷이 비싼가보죠?"

 

긴 복도를 걸어가는동안 딱히 할 말도 없어서 내가 다시 물었다.

 

"이만 원이요."

 

"별로 비싸지도 않은데..."

 

문득, 이주임이라는 교도관이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 사천 명 있는데... 저희가 가끔 컴퓨터를 쳐보면 육개월동안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사람이 오백 명 쯤 돼요."

 

걸음을 멈추고 내가 이주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당연하죠. 생계형 범죄자들인데... 그런 경우 가족이 없다고 봐야죠. 아니면 외면하거나."

 

"오백 명... 영치금이 한 푼도 없다구요?"

 

"육개월동안 영치금이 천 원 미만인 사람도 또 그 쯤 돼요. 아니, 생각해보세요. 돈 많은 사람들이 왜 여기 들어오겠어요?"

 

 

 

 

 

인간이라고 해서 누구나 죽음 앞에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죽음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판사인 나 김세중은 당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지만, 인간인 나 김세중은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예전에 잠깐 천주교 집회에 나간 적이 있었어요. 동생 죽고 나서 세 번 짼가로 다시 빵에 들어왔을 때, 아마 한 오년 전의 일일 거예요. 그 때 영세 받는다고 교리 교육도 받았죠. 봉사하는 자매님들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좋았어요. 편지도 주고받고 성서도 선물받았죠. 초코파이도 가져다 주시고 명절 때는 맛있는 것도 해주시고... 어느 날 제 옆에 있는 한 늙은 사형수가 미사 끝나고 그 아주머니의 손을 덥썩 잡은 일이 있었는데... 교도관들이 말릴 새도 없이 그랬는데, 그 때 그 자매님의 표정을 보았지요. 음식은 해다 줄 수 있고, 심지어 돈도 얼마간은 줄 수 있고, 이렇게 겨울 날에도 교도소에 찾아와서 함께 미사를 드릴 수도 있지만, 손만은 잡지 않겠다는 단호한 거부 같은거... 말을 한게 아니라, 그건 그 사형수도 저도 그 주변의 모든 사람도 느낄 수 있는 그런 표정, 벌레를 보는 듯하고, 종자가 다른 더러운 짐승을 보는 듯한 그 표정... 그 날 제 옆 방에 있던 그 늙은 사형수가 밤에 난동을 피우며 짐승처럼 우는 소리를 저는 들었죠..."

 

그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그 자매라는 사람, 그리고는 돌아가서 자신은 불쌍한 인간들을 위해 자선을 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다니겠죠... 자기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도 생각했겠죠. 자신이 그 사형수에게 얼마나 죄를 지었는지 모르고, 그는 몸뚱이를 죽였지만 그 여자는 매일 죽고 있는 그 사형수의 영혼을 이번에는 짓이겨 놓은 거라는 것도 모르겠죠. 그 생각을 하니까 도저히 더 이상 미사에 나갈 수가 없었어요. 그 때 결심했죠. 동족이 아니면, 어차피 서로 만나지 말자고, 사랑하는 척하지 말자고... 그건 차라리 우리를 멸시하고 때리는 것보다 더 구역질나는 거라고... 전 돈 있는 사람들 그 때부터 믿지 않았어요. 어차피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테니까. 신이 있다 해도 그들을 보호해주는 신은 딴 세상에 살면서 우리 같은 인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까... 전 그 다음부터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만 보면 구역질이 났어요. 위선자들 같아서."

 

 

 

 

 

"왜 입으로는 부자놈들 죽인다면서, 부자놈들이라고 죽여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왜 죽어간 사람들까지 가난하냐구? 이게 무슨 걔들이 말하는 정의야? 지들처럼 가엾은 사람들 죽여놓고... 뭐 지들이 세상이 못하는 정의의 사도입네 뭐네, 그러는게 화가 나."

 

"우범지대라는거... 그게 가난한 동네를 말하는 거잖아. 부자 동네엔 경비들이 보초 서잖아."

 

"그 경비 서는 사람들도 이런데서 살거 아냐? 그래서 그 사람들이 부자들 경비 서주는 동안 이렇게 좁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밤 늦게 일하고 온 지네 마누라, 딸들이 당하는 거잖아..."

 

 

 

 

 

어릴 때 주일학교에서 들었던 성서의 말이 떠올랐다. 어린 나는 그걸 믿었던가. 너희가 믿음이 있다면 산도 움직일 거라는 그 말을. 하지만 신은 내가 그 작자의 손아귀에서 어린 제비처럼 울고 있을 때 목숨을 다해 드리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었다. 그 때 분명 내게는 믿음이라는게 있었다. 천국도 지옥도 천사도 악마도 다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악마만 빼고 다 내 곁에 없었다.

 

 

 

 

 

"참 그러는거 보면 하느님이 진짜 있는가 싶다니까요. 왜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은 아프고 당하고... 세상에 나쁜 놈들은 잘만 살던데... 그런거 생각하면 종교가 다 뭐에 말라빠진 개뼉다귀냐구요."

 

 

 

 

 

"그 착한 애를, 스물 셋에 과부되어서 이 날 이 때까지 자식 새끼들하구 내 입에 밥 들어가게 할려구 세 시간 이상 잠도 안 자본 애를, 손이 갈고리가 되도록, 몸 파는거 빼고 다 해본 그 애를 왜 그렇게 죽이셨냐고... 아니 죽여도 그렇지 꼭 그 놈 손에 그렇게 죽이셨어야 했느냐고 물어보려고 그래요... 그리고 정윤수, 내가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는 그 놈을 내 손으로 좀 찢어죽이고 싶어서, 우리 애가 당했던 것보다 더 아프게, 더 끔찍하게, 더 어이없이... 수녀님, 내 손으로 찢어죽여야, 내가 지옥에 간다해도, 그러고나면 지옥에 가도 내가 발 뻗고 잘 것 같아서 그래요. 그래도 되냐고 물어보고 싶어서 그래요. 하느님도 양심이 있으시면 성모님더러 대답해주라고 하시겠죠. 하느님도 양심이 있으시면..."

 

 

 

 

 

은수는 애국가가 끝나자 웃으면서 제게 말했습니다.

 

"형, 우리나라 좋은나라지. 나는 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왠지 우리가 훌륭한 사람이 된 거 같애..."

 

 

 

 

 

자살이 왜 살인인지, 교리 시간에 수녀님이 설명해 주셨다.

"우리 태어나야지, 하고 태어난 사람 손들어봐요"로 시작된 그 말, "우리가 남자로 할지 여자로 할지 자기가 결정한 사람 손들어봐요"로 이어진 그 말, "우리가 죽고 싶을 때 맘대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이어진 그 말들... 사춘기 무렵 나는 자살에 대해 열렬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을 생각해냈는데 나는 나를 죽일 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 위가 지금 음식물을 왜 소화시키지 못하는지 나는 모르고 왜 생리가 시작되는지 나는 몰랐다. 왜 설사가 나오고 배가 아픈지도 몰랐고 왜 심장이 뛰고 있는지, 생물 시간에 배우는 호르몬들이 왜 그 시기가 되면 나오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사라지는지 나는 아는게 없었다. 무엇보다 내 생명을 내가 만든게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대뇌보다 작은 영역을 지배하는 인간. 그 당시 내가 가지고 다니던 책받침에 써 있던 데카르트의 말대로 사고하는 것 외에 내가 나를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니까 그런 내가 나를 죽인다면 그게 살인이라는 결론은 그래, 나도 내렸었다. 그런데 나는 그 무렵 이 방에서 손목을 그었었다.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단 하나, 아는 것도 절망을 막아내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깨달음도 얻었는데 데카르트는 틀렸다는 것이었다. 생각조차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실은 이 모든 것들을 합친 것보다 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검사 생활 중에 어린아이들 강간하고, 노인들 죽이고, 그러고도 재판정에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런 놈들 보면, 그 놈들하고 같은 하늘 아래서 숨 쉬고 있는 것조차 치욕스러워! 사형이란 제도도 너무 점잖아! 가끔 그 인간들 보고 있으면 저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그런 생각이 들어. 나쁜 생각 같지만 정말 악마가 있는 거 같고 태어날 때부터 그런 놈들은 정해져 있는 거 같아. 그런 놈들은... 생명을 가질 권리가 없어. 짐승들이야."

 

"나도 그래. 나도 저들이 정말 짐승인가 사람인가 싶을 때가 많아. 룸살롱에서 다른 사람들 뻔히 있는 공간에서, 최소한 인간이 교미가 아니고서야 은밀한 공간이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돈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버젓하게 남들 앞에서 그 어린 여자아이들 짧은 스커트 사이로 손을 넣어서 주물탱이가 되도록 만지작거리다가, 돈을 뿌리는 인간들을 보면... 그 인간들 다음 날 아침이면 아직 지난 밤, 매춘부의 음부 냄새가 가시지도 않은 그 입으로 신성한 학문이 어쩌고, 이 사회의 불평등한 분배 구조가 어쩌고, 대학에서 그러고 있는 미친 놈들 보면 그래..."

 

 

 

 

 

사형수는 여섯 번 죽는다고 한다. 잡혔을 때, 일심 이심 삼심에서 사형 언도를 받을 때, 그리고 진짜 죽을 때, 나머지는 매일 아침마다...이다. 아침 기상종이 울리면 사형수들은 죽음을 준비한다. 만일 운동이 있고 배식이 있으면 그 날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아침 운동이 시작되기 전 복도에 발소리가 울리면 사형수들은 하얗게 질린다고 했다.

 

 

 

 

 

아는 것과 깨닫는 것에 차이가 있다면,

깨달음에는 아픔이 동반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온통 달콤한 연유를 엷게 풀어놓은 것처럼 뽀얀 봄빛이었지만 구치소 안은 여전히 춥고 어두웠다. 누군가 말한대로 이곳은 죽음이 서식하는 곳, 세상의 빛이 강하면 강할 수록 짙은 그림자에 휩싸인 곳인지도 몰랐다.

 

 

 

 

 

돌이 빵이 되고, 물고기가 사람이 되는건 '마술'이고

사람이 변하는게 '기적'이다.

 

 

 

 

 

"아주머니, 여기 신고받고 왔는데...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는데요?"

 

"뭐라구요? 그래서요?"

 

"내가 물어봤는데 얘들 친구들끼리 중학교 동창회 한다는데요? 그리고 맞은 놈 나와보라니까 아무도 없구, 맞은 놈 없으니까 때린 놈도 당연히 없을테구..."

 

분통이 터졌다. 대체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 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맞은 놈 나와보라구 했다구요? 때린 놈 나와보세요,도 하셨다구요? 이보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대한민국 경찰한테 바란 내가 잘못이라구요. 내가 신고한 시간 지금 벌써 삼십 분도 더 지났어요. 사람이 죽어도 두 셋은 죽어나갈 시간이었다구요!"

 

나는 쾅 소리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만일 저기서 맞고 있던 아이가 내 아들이거나 내 동생이거나 그랬다면 내가 저 경찰을 그냥 놔두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사형제 존치론자'가 되고,

사형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사형제 폐지론자'가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은,

우리가 언젠가 죽는다는 그 사실을 모두가 잊고 사는 일이다.

 

- 석가모니 -

 

 

 

 

 

"저 양반이 나보고 자기도 수녀가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게 소주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그래도 자기는 수녀복보다는 소주가 더 하느님하고 가깝다고 생각한다면서 나를 놀렸지요. 사람이 만든 것 중에 젤 평등한게 소주라나, 뭐라나, 하면서... 재벌도 육백 원짜리 소주를 마시고, 막노동꾼도 육백 원짜리 소주를 마신다고... 다른 나라 위스키나 포도주나 모두 다 계급이 있는데 소주만 계급이 없다고... 그래 소주 맛도 모르면서 어떻게 나이를 먹었느냐고 놀렸는데... 먹어보니까, 소주 맛이 좋네요."

 

 

 

 

 

"신문을 보니까 사람들이 단풍 구경을 간다고 하는 기사가 있었어요. 문득 단풍은 사실 나무로서는 일종의 죽음인데 사람들은 그걸 아름답다고 구경하러 가는구나 싶었어요... 저도 생각했죠. 이왕 죽을 김에, 단풍처럼 아름답게 죽자고, 사람들이 보고 참 아름답다, 감탄하게 하자고."

 

 

 

 

 

"유정이 누님, 나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살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 수갑 찬 손으로라도 아이들한테 편지쓰고, 나 수갑 찬 몸으로라도 여기서 있는 힘껏 사람들에게 내가 받았던 사랑 전하면서... 평생 그렇게 피해자들 위해 기도하고 속죄하면서... 여길 수도원처럼 생각하면서 살면... 나 그렇게라도 살아 있으면 혹시 안될까, 염치없지만, 정말 염치없지만 나 처음 그런 생각했어요..."

 

 

 

 

 

전화벨이 울렸다. 고모였다. 유정아, 하는데 수화기 저쪽에서 고모가 떨고 있는게 느껴졌다. 그 쪽에서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고모..."

 

"지금... 김 신부님한테 전화가 왔다. 내일 아침 일찍 구치소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고... 내일 윤수가..."

 

나는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걸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니 그보다 그냥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고 눈 앞의 공간들이 제 형태를 잃고 두부처럼 이지러지는 것 같았다.

 

"나 내일 새벽에 구치소로 간다... 유정아, 기도하거라. 기도해."

 

 

 

 

 

인간은 극에 이르면, 결국 한 가지 느낌만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무감각이다.

 

 

 

 

 

"교도소에 들어올 때 인간도 아니었던 사람들, 이렇게 천사가 되고 나면... 죽이네요... 수녀님, 우리 이제 이거 그만해요. 천사같이 되어서 저렇게들 가니까... 이젠 제가 못 살겠어요."

 

 

 

 

 

사랑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

용서 받아본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나는 평생 두 번의 간절한 기도를 바쳤었다. 두 번 다 살려달라고 했었다. 신은 적어도 그 두 번 중 한 번은 내 기도를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다. 윤수 손에 죽어간 그 여자도 기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당하고, 그렇게 죽고, 그런 다음 미사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것은 산 자들이 벌이는 자기 위로는 아닐까.

 

 

 

 

 

"제가 다른 종파 사람들처럼 너도 노래 하나 부를래, 성가 뭐 아니? 하니까, 저는 영세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성가는 몰라요. 대신 애국가를 부르고 싶어요, 하길래..."

 

나는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모니카 고모가 내 손을 꽉 잡았다.

 

"불렀어요. 애국가를..."

 

김 신부는 더 말할 수 없다는 듯 잠시 입을 다물고 울먹였다.

 

"그리고 교도관들이 그 애를 무릎꿇리자 윤수는..."

 

우리는 모두 김 신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발버둥치기 시작했어요. 그 마지막 눈빛은 공포로 질려 있었어요. 집행관들이 서둘러 그애의 얼굴에 용수를 씌우자, 윤수가 소리쳤어요. 신부님, 살려주세요, 무서워요. 애국가를 불렀는데도 무서워요... 나는 더 이상 그 애를 쳐다볼 수가..."

 

김 신부는 마치 제가 올가미에 걸린 것처럼 하얗게 질려 말했다.

 

 

 

 

 

오래도록 생각했던 것, 고모가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났다. 하지만 이제 한 가지는 안다. 그래도 산다는 것, 죽을 것 같지만. 죽을 것 같다, 이건 사는게 아니야, 라고 되뇌이는 것도 삶이라는 것을. 마치, 더워 죽겠고 배고파 죽겠다는 것이 삶이듯이, 죽고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삶이듯이, 그것도 산 자에게만 허용되는 것, 그러므로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죽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바꾸어서 말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양반 치매에 걸려서... 춥지 않은 날엔 하루 종일 집 앞에 앉아서 우두커니 누구를 기다리고 있더란다... 수녀님이 할머니 누구를 기다리세요 물으니까, 아들이요 하길래, 아들 이름이 뭐예요, 물으니까 운수, 하더란다..."

 

운수, 하고 따라하려는데 목이 메어왔다. 은수와 윤수의 중간 발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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