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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꼭 봐야할 미술작품 20선

장재영 |2007.03.28 15:34
조회 423 |추천 3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미술품* 


영국 가디언신문은 예술 블로그 사이트(blogs.guardian.co.uk)개설 기념으로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걸작 미술품 50개'을  뽑는 
인터넷 설문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독자들의 선택을 돕기 위해 
가디언 미술 담당 기자인 조너선 존스는 자신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봐야할 걸작 20개'을 소개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미술작품을 고른다면 당신은 어떤 작품을 선택 하겠는가?"       1.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년)    - 에스파냐 내란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피카소의 대표작.
 
작가  피카소
종류  벽화
크기  349×775cm
제작연도  1937년
소장  에스파냐의 소피아왕비 미술센터
 

   
크기는 349×775cm이며, 에스파냐의 소피아왕비 미술센터에 소장되어 있다. 게르니카는 에스파냐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로, 1937년 에스파냐내란 중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에 의하여 폐허가 되었다. 마침 그 해에 열리기로 예정된 파리만국박람회의 에스파냐관(館) 벽화제작을 의뢰받고 있던 피카소는 이 조국의 비보에 접하자, 한 달 반 만에 대벽화를 완성, ‘게르니카’라고 이름붙였다.   이 작품은 파리만국박람회를 비롯하여 구미 여러 나라에서 순회전을 가졌다. 그러나 에스파냐가 프랑코 체제가 되자, 공화파 지지자였던 피카소는 그림반입을 거부하고, 1939년 에스파냐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회복 후 반드시 프라도에 전시할 것 등의 조건으로 이 작품을 뉴욕 근대미술관에 무기한 대여형식으로 빌려주었다. 프랑코의 독재가 계속되는 한 조국과 화해할 수 없다고 한 피카소의 신념으로 인해 1981년에야 에스파냐에 반환되어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되었다가, 일부 정치인과 예술가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보관상의 문제로 1992년 소피아왕비 미술센터로 옮겼다.   비극성과 상징성에 찬 복잡한 구성 가운데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상처입은 말, 버티고 선 소는 피카소가 즐겨 다루는 투우의 테마를 연상케 하며, 흰색·검정색·황토색으로 압축한 단색화에 가까운 배색이 처절한 비극성을 높이고 있다. 극적인 구도와 흑백의 교묘하고 치밀한 대비효과에 의해 죽음의 테마를 응결시켜 20세기의 기념비적 회화로 평가된다.  
    2.잭슨 플록의 '넘버 31'(1950년) No.31 [Number.31]   미국의 전위미술가 폴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1912~1956)의 액션 페인팅 작품.
 
작가  잭슨 폴록
종류  캔버스에 유채와 에나멜
크기  269.5×530.8㎝
제작연도  1950년
소장  미국 뉴욕 MOMA  
  폴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은 1940년대 후반 바닥에 펼친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고, 흘리고, 쏟아붓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여 서양회화사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미술가로, 붓으로 이미지를 다듬기 위해 물감을 흘리는 방법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점차 막대기나 붓으로, 또는 물감통에서 직접 물감을 뿌리고 흘리는 기법을 전면적으로 구사하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장르를 개척하였다.   《One:Number 31》(1950)은 이 시기의 폴록의 대표작으로, 무질서하게 뿌려지고 겹쳐지는 물감에서 그 점착현상이 주는 힘, 속도와 방향, 그리고 이것에 대한 물리적 현상을 느끼게 한다. 또 동시에 캔버스에 물감과 에나멜이 흩뿌려진 것에서 무한한 공간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커다란 캔버스를 언뜻 보면, 베이지색 바탕에 검은 색과 흰색의 선들이 가득 차 있고, 배경은 선들이 뒤엉킨 사이사이로 언뜻언뜻 보일 뿐 작품의 가장자리 부분에서만 간신히 볼 수 있다. 그것은 중심부의 주위를 맴도는 어떤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다. 이렇게 배경에 의해 형성된 틀에는 선과 물감방울들이 군데군데 퍼져 있고 특히 캔버스의 아랫부분은 물감 얼룩이 많이 번져 있다. 여기에 표현된 모든 선들은 전체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제각기 독립된 존재이기도 하다. 흰색과 검은색이 주는 단조로움도 깊이와 양감을 느끼게 한다.   폴록의 모든 작품이 그렇듯이 이 작품도 새로운 추상회화의 길을 열었다든가, 캔버스의 한계를 넘어 과정을 중시하는 퍼포먼스의 길을 제시하였다는 등 다양하게 평가되고 있다.          3.미켈란젤로의 '모세상'(1545년)   - 로마의 바티칸미술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세 조각상.   작가  미켈란젤로
종류  대리석상
높이  235cm
제작연도  1515년
소장  로마의 바티칸미술관  

                                                  미켈란젤로 특유의 정중동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 미켈란젤로의 최대의 업적 중의 하나이다. 밑에서 쳐다보도록 예상해서 만들어진 위엄에 넘치는 이 작품은 살피듯 하면서 명상에 잠겨 있는 그 포즈가 사려 깊은 통찰력과 격한 분노의 양면을 가진 인간임을 보여준다. 1515년 대리석 높이 235cm 성베드로성당.
    4.렘브란트의 '호머의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1654년)   작가  렘브란트
종류  캔버스에 유채
크기  136*131cm
제작연도  1654년
소장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5.산족의 암벽화''(연대미상) 작가  미상
종류  암벽화
크기  136*131cm
제작연도  미상
소장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남아공국립미술관    
      6.티티안의 '다나에'   - 황금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다나에에게 다가오고 있다   작가  티티안
종류  Oil on canvas
크기  117 x 69 cm
제작연도  1553년
소장  이탈리아 나폴리 카포디몬테국립미술관  
  아크리시오스는 그의 딸인 다니에가 낳은 아들(외손자)에 의해 죽는다는 신탁(神託)을 받는다. 그 후 아크리시오스는 딸을 지하에 있는 청동 방안에 가두어 놓고 어떤 남자도 접근할 수 없도록 하였으나, 하늘에서 이를 지켜 본 제우스가 황금 빗물로 변신하여 그녀의 두 무릎 사이로 스며들어가 교접(交接)하여 페르세우스가 태어났다.   왕은 다나에와 페르세우스 모자를 상자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는데, 이들은 세리포스섬에 표착, 이 섬의 왕 폴리데크테스의 동생인 디크티스에게 구조되어 페르세우스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뒤에 경기회(競技會)에서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圓盤)에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아크리시오스 왕이 맞아 왕은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많은 화가의 그림 소재로 다루어졌으며, R.슈트라우스의 가극 《다나에의 사랑》도 있다.         7.카라바치오의 '성녀 루치아의 매장'(1608년)   작가  카라바치오
종류  Oil on canvas
크기  408 x 300 cm
제작연도  1608년
소장  이탈리아 시칠리아 시라쿠자의 플라초 벨로모 미술관             8.라스메니나스 [The Maids of Honor]    D.벨라스케스의 집단 실물 초상화로 마르가리타 공주와 주변 인물을 그린 사실주의 기법의 대표 작품.
 
원어명  Las Meninas(에)
작가  벨라스케스
종류  캔버스에 유화
크기  3.18x2.76m
제작연도  1656
소장  에스파냐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1651년 에스파냐의 왕 펠리페 4세는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아와 재혼하였는데 벨라스케스는 궁정화가로서 펠리페 4세의 젊은 왕비와 그 자녀들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배경은 죽은 왕자 발타사 카로스의 침실이었던 마드리드 알카자르 궁전이다. 그림의 중앙에는 마르가리타 공주가 있다. 그녀 옆에는 하녀가 쟁반에 마실 것을 들고 무릎을 꿇고 있는데 공주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밖을 바라본다. 왼쪽에는 그림을 그리는 벨라스케스 자신의 모습이 있고 오른쪽에는 두 난쟁이와 조용히 엎드린 커다란 개가 있다. 뒤쪽의 거울에는 그녀의 부모인 펠리페 4세와 마리아가 비친다. 또 벽 밑의 창문에는 귀족인 듯한 한 남자의 모습도 보인다.   이 작품은 자연스럽지만 M.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우울하고, 바로크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각 인물의 성격과 이미지, 따로 떨어진 공간을 한데 그려놓고도 전혀 분리되지 않은 느낌을 준다. 그림 속의 공간은 창과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해 나누어져 있고 또 얼굴이 크고 비굴해보이는 난쟁이들, 위엄을 갖추고 있으나 어린 공주, 궁정화가로서 자부심을 보이는 화가 등 각각의 인물 묘사도 사실적이고 뛰어나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실내를 비추는 모습이나 거울을 이용한 수법 등은 P.루벤스의 영향을 받았다. 벨라스케스의 후기 작품으로 사실주의적인 화풍이 두드러지며 펠리페 4세의 개인 사무실에 걸려 왕의 사랑을 받았다.   벨라스케스는 사실주의 기법을 구사한 에스파냐의 초상화가이다. 궁정화가로서 종교성과 신비함을 배제하고 철저한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인물화를 그렸다.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배경을 주의깊게 관찰하여 자연스럽지만 날카롭게 표현하였다.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 가운데 하나라고도 할 수 있지만 왕가의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은 처음에는 《왕가 El Cuadro de la Familia》라는 제목이 붙여졌으나 뒤에 《라스메니나스》로 바꾸었다.         9.마크로스코의 '로스코 예배당의 유화들'
 
작가  마크로스코
종류  유화
제작연도  1966
소장  미국 텍사스 휴스턴 로스코 예배당 안 벽화)  
    10.한스 흘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
홀바인은 썩어 들어가는 앙상하고 싸늘한 주검을 통해 16세기 당시부패한 가톨릭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작가  한스 흘바인
종류   Oil on wood
크기  30,5 x 200 cm
제작연도  1522
소장  스위스 바젤 미술관    
 
닫힌 공간. 세상과 절연된 곳. 한 잎도 남김없이 다 떨어지고 시든 앙상한 나무가지처럼 버려진 육체가 답답한 공간에서 홀로 외롭게 썩어 가고 있다. 파랗게 변색된 얼굴과 손발, 그리고 극심한 고통으로 뒤틀린 몸뚱아리... 눈 앞에 보이는 냉엄한 죽음의 모습을 보고, '과연 그 찬란한 육체의 부활은 가능할까. 혹시 그 약속 또한 저 처참한 죽음과 함께 매장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 생각한다.   시신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는 인간 형상이라는 점에서 가장 쓸쓸한 이미지다. 돌을 깎아 만든 인간 형상 앞에서는 경배도 드리는데, 청동으로 주물을 떠 만든 인간 형상 앞에서는 아름답다고 연신 탄성을 울리는데, 주검 앞에서는 그 누구도 그런 따뜻한 감정을 쏟아내지 않는다. 오직 이별과 연민만이 있을 뿐이다.   홀바인이 이렇게 남루하고 비참한 그리스도를 그린 데는 바로 화려한 보물과 예술, 기름진 음식에 취해 있는 교회지도자들에 대한 경고의 의도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진정으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현실과 진정한 믿음의 그 단절의 깊은 골을 죽은 예수를 통해 조망해 보고, 무엇보다 예수의 영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리라.   홀바인은 이 그림을 통해 묻고 있다. 야누스의 얼굴처럼 분명 함께 존재했지만 부활의 영광에 가려져 간과되었던 것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그 답 또한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부활의 영광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통스런 죽음의 처참함이 있었기 때문임을... 머리로만 수긍하던 그 사실을 가슴으로 느낄 것을 요구했다. 어리석은 세인의 눈으로 보았던 그림을 다시 한번 응시하며 부활의 영광에만 들떠 기뻐하던 경솔함을 놓고, 예수의 비참한 죽음을 겸허한 가슴으로 먼저 본다.         11.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BC 1333~1332년)   어린나이로 숨진 소년왕으로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 왕(재위 BC 1361∼BC 1352) 투탕카멘왕의 유물이다.
 
작가  미상
종류   황금
높이  54 cm
제작연도  BC 1333~1332년
소장  이집 트 카이로 이집트박물관  
    정확하게는 투트 앙크 아멘이라 한다. 제10대 왕 이크나톤(아멘헤테프 4세)의 아우 또는 조카라고도 하는데, 출생에 관해서는 확실하지가 않다. 제11대 세멘크카라는 만년에 이크나톤과 공동통치를 펼쳤으나 재위 3년 만에 죽었기 때문에 9세에 즉위하였다. 왕비는 이크나톤과 네페르티티의 제3왕녀인 안케센아멘이다.   왕은 처음에는 아텐 신앙을 나타내는 투트 앙크 아텐으로 칭하였으나, 즉위 4년째 아멘 신앙을 나타내는 투트 앙크 아멘으로 개칭하고 수도를 아마르나에서 테베로 옮겼다. 연소한 투탕카멘이 당시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중신 아이와 노장 할렘헤브(모두 후에 국왕)의 보좌에 힘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18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왕의 죽음에 대한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으며, 업적에 관한 기록도 남겨지지 않아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왕묘가 테베의 서쪽 교외인 '왕가의 계곡'에 조영된 탓으로 이 묘가 발굴되면서부터 유명해졌다.         12.얀 반 에이크의 '롤린 대주교와 성모'(1435년경)  
작가  얀 반 에이크
종류  Wood
크기  66 x 62 cm
제작연도  1435년
소장  파리 루브르박물관                                                                     13.파르테논 석상 엘긴 마블(BC 444년경)   종류  대리석
제작연도  BC 444년경
소장  영국 대영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두빈겔러리에는 엘긴마블이라 불리는 그리스 파르테논신전의 조각이 보관되어있다. 영국의 엘긴경(卿) T.브루스가 터키주재 영국공사로 있을 때, 1801∼1903년에 걸쳐서 그리스에서 매입하여 영국에 운반한 그리스 조각품.. 조각의 대부분이 머리부분이 없지만 조각품으로서 완벽한 인체의 표현과 신이지만 인간 그대로 표현한 사실적 조각품이다.           14.알리 마티스의 '댄스II'(1910년)   - 정신성을 높여주는 선(線)과 리듬   작가  알리 마티스
종류   캔버스 유채화
크기  260×391㎝
제작연도  1910년
소장  뉴욕현대미술관    
그의 이라는 작품과 함께 러시아의 무역상인 시츄키의 의뢰에 의하여 그려졌다.
모스크바에 있는 저택의 계단을 장식하기 위하여 그려진 것으로서, 활기 있는 리듬과 생명감이 넘치는 대작이다.
극도로 단순화된 푸른 하늘과 언덕의 초록으로 색면 대비를 이룬 배경 속에 다섯 명의 춤추는 댄서들이 손을 마주 잡은 형태는, 생명적인 무한을 갈망하는 암시적 무의로서 화면에는 유동하는 활기로 차 있다.
그것들은 마치 아라베스크 무늬로 화면 전체를 꿰뚫는 어떤 생명적 통일의 리듬을 시각화하고 있다.
색채는 단지 세 가지로, 격렬함과 풍부함을 가지고 있어, 마티스 자신이 '나의 파랑과 빨강과 녹색의 조화는 충분히 스펙트르와 등가(等價)의 것을 만들어 낸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15.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동방박사의 경배'(1481년경)
동방박사를 화제(畵題)로 해서 그린 성화.
 
 
작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종류   프레스코
크기  200 x 185 cm
제작연도  1481년
소장  스크로베니 성당  
  마기의 예배라고도 한다. 《마태오의 복음서》에 동방의 페르시아·메디아·아시리아에서 박사 세 사람이 별에 인도되어 베들레헴에 찾아와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황금·유향·몰약을 바쳤다고 적혀 있다. '성모의 7가지 기쁨'의 하나로서 그리스도교 미술의 주요 화제로 중세기 이후에 즐겨 다루어졌다. H.구스의 《보르티나리의 제단화》(1473∼1475), 보티첼리의 《산타마리아 노베라의 제단화》(1475년경),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마기의 예배》(1481년 이후, 미완)가 있으며, 모두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6.마사치오의 '아담과 이브의 낙원 추방'(1427년경)
 
작가  마사치오
제작연도  1427년
소장  이탈리아 피렌체 브란카치성당 마사치오의 대표작인 '에덴 동산에서 생겨나는 아담과 이브' 를 그린 작품이다.    

이것은 마사치오에게 먼저 이런 좁고 긴 형태의 공간(벽)이 주어졌기에 그 안에서 마사치오가 상상력을 발휘해 작품을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먼저 마사치오는 이 긴 공간이 비좁아 보이지 않게 하기위해  '낙원의 문'이 거의 캔버스 끝에 닿도록 표현하여 그림 왼쪽을 마치 캔버스의 선이 문과 일치되도록  열린 공간으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오른쪽 공간을 위해서 아담과 이브의 그림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길게 지는 모습 - 즉 오른쪽 캔버스 너머에 어떤 '광원'이 있다는 가정을  그림에 나타내는 것을 택했다.  그럼으로 이 그림에서 양 쪽 공간은 캔버스 밖에 무엇인가 있다고 믿게 함으로 모두 열리게 되었고, 이 비좁은 공간을 최대한 비좁지 않게 만들어 냈다.
천사는 세로로 길게 그들을 자아내고 있고, 아담과 에바가 막 문에서 마지막 발자국을 떼고 있다. 에바의 표정에서 그들의 절망을 강하게 느낄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오히려 아담은 손으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 보이지 않게 함으로 더 큰 상상을 유발하는 ' 표현을 택하였다.  우리는 이브의 표정에서 아담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17.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1660~61년경)
담백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그려진 도시윤곽의 명징한 고요를 품고있다   작가  베르메르
종류   캔버스 위에 유채
크기  118.9×99cm
제작연도  1660년
소장  헤이그 국립미술관  
      18.폴 세잔느의 '생트 빅투아르 산'(1904~06년)
프랑스의 후기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작품.
 
작가  폴 세잔
종류  캔버스에 유채
크기  73×91㎝
제작연도  1904∼1906년
소장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작품의 크기는 세로 73㎝, 가로 91㎝이다. 프랑스의 후기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의 1904∼1906년 작품으로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생트 빅투아르산(山)은 세잔의 고향인 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산으로, 세잔은 1890년에서 1906년 사이 생트 빅투아르산을 주제로 18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1901년부터 프로방스 지방의 로브 아틀리에에 자리를 잡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산의 모습에 빠져들었다.   멀리 평온하면서도 웅장한 생트 빅투아르산이 광활한 하늘 위로 우뚝 솟아 있고, 그 앞의 들판에는 소나무와 마른 풀들이 우거져 있다. 들판의 필치는 수직선과 수평선이 뒤얽혀 있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 그림에서 세잔은 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산의 가장 조화로운 모습을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산에 대해 빠짐없이 섬세하게 관찰한 뒤 산과 들판, 그외 자연의 모습을 삼각형, 사각형, 사다리꼴 등 딱딱한 모양으로 나타내었다.   세잔은 정확하고 일정한 터치로 따뜻한 색조를 나란히 놓아 전망을 가깝게 하고, 또 차가운 색조로 전망을 멀게 하였다. 그는 색채와 붓질만으로 입체감과 형태를 충분히 표현하였으며, 선으로 그린 데생의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다. 산은 색채와 빛의 대립관계 속에서 하늘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제까지 세잔이 탐구한 입체감과 색채감, 기하학적인 아름다움 등이 모두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작품이다.         19.라파엘의 '아테네 학당'(1510~1511년)
1509∼1510년 산치오 라파엘로(Sanzio Raffaello:1483∼1520)가 그린 그림.
 
원어명  Scuola di Atene
작가  산치오 라파엘로
종류  프레스코 벽화
크기  579.5×823.5cm
제작연도  1509∼1510년
소장  로마 바티칸의 스텐차 델라 세나투라
   

 
프레스코 벽화로, 크기는 579.5×823.5cm이다. 바티칸 미술관 스텐차 델라 세나투라(stanza della Segnatura)에 소장되었다. 베드로 성당과 비슷한 학당에 54명의 인물이 표현되어 있으며 대부분 철학자·천문학자·수학자들이다. 옆구리에 '티마이오스(Timaeus)'라 쓰인 책을 끼고 있는 플라톤(Platon: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습)은 이데아에 대해 설명하듯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윤리학(Eticha)'이라는 책을 허벅지에 받치고 지상을 가리키며 현실세계를 논변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앞의 계단 한복판에 보라색의 망토를 깔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사람은 명예와 부귀를 천시했던 견유학파 디오게네스(Diogenes)이다.  왼쪽 화면의 앞에서, 약간 대머리에 쭈그려 앉아 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피타고라스(Pythagoras)가 있다. 그의 주위에는 엠페도클레스(Empedocles)·에피카르모·아르키타스(Archytas of Tarentum) 등 피타고라스의 제자들이 있다.   오른쪽에는 사색의 즐거움에 깊이 잠겨 있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미켈란젤로의 모습)가 대리석 탁자에 기댄 채 한 손으로 얼굴을 괴고 종이 위에 글자를 적는다. 뒤에는 앞머리가 벗겨지고 들창코인 소크라테스(Socrates)가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무엇인가 설파하고 있다.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군인 같은 인물은 소크라테스에게 감명받았던 알키비아데스(Alcibiades)이다.   오른쪽에 아래에는 허리를 굽혀 컴퍼스를 돌리고 있는 유클리드(Euclid)가 있으며 맨 앞의 소년은 허리를 숙여 스승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도면을 본다. 유클리드 뒤에 등을 보이고 지구를 두 손으로 들고 서 있는 조로아스터(Zarathushtra), 별이 반짝이는 천구를 한 손으로 받쳐든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eos)가 있다. 그 오른쪽에는 화가인 소도마(Il Sodoma)와 검은 모자를 쓴 라파엘로가 있다. 건물 밖으로는 광활한 하늘이 보이며 둥근 천장, 아폴로와 아테네의 상들을 안치한 벽감 등은 웅장한 분위기와 우아함을 지녔다.   바티칸 궁의 장식화뿐 아니라 라파엘로의 그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라파엘로의 치밀한 계산 아래 그려진 상상화이지만 규모나 웅장한 느낌, 조화감 등은 초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무대 같은 투시도의 공간 속에, 인물들은 놀라운 조화를 이루었고 서로 시각적인 연결을 이루었다.   1점 소실점에 의한 원근법을 따르고 있어, 등장 인물이 많아도 산만하지 않고 집중된 느낌을 준다. 고전 건축의 균형감각과 질서, 선명성, 부분과 전체의 조화가 뛰어난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이다.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라파엘로는 많은 스케치를 준비하고 시행착오를 거쳤다. 암브로지아나 미술관에 보관된 최종 밑그림을 보면 그가 피렌체파의 전통을 충실히 따랐음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심리 묘사와 미켈란젤로의 육체 표현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20.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1509~15년경)
독일 르네상스기의 대표적인 화가 M.그뤼네발트의 제단화.
 
작가  M.그뤼네발트
종류  제단화
크기  너비 3m
제작연도  1511∼1515년
소장  운털린덴미술관 
 

 


 


 
 현재 프랑스 알자스주(州) 콜마르의 운털린덴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511∼1515년 이젠하임의 안토니우스파(派) 수도원 중앙 제단화로서 그려졌으며, 니콜라우스 폰 하게나우가 조각한 고딕식 목각제단에 끼워져 있다.   가동식(可動式)의 다익(多翼) 제단화로서 2중 여닫이로 되어 있다. 닫혔을 때의 크기는 너비 3m, 중앙에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좌우에 성안토니우스와 성세바이젠하임스티아누스가 그려져 있다. 열린 상태에서는 중앙이 성모자와 천사, 좌우에 성고(聖告)와 부활, 그리고 익부(翼部)를 열면 성안토니우스의 유혹 등이 모두 9개 장면으로 그려져 있다. 철저한 사실주의와 후기고딕의 정열이 혼합된 뛰어난 수법의 제단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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