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인디다큐페스티발2007

이영주 |2007.04.05 01:49
조회 189 |추천 1

  영화 수업 (The Film Class, 2006)
감독 : 우리 로젠왁스 Uri Rosenwaks
이스라엘 / 53분 / DV / Color     몰랐다, 억울했지만 당연했다   인디다큐페스티발2007 첫 상영작.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에 위치한 베두인족 마을 라하트에서 영화만들기 수업을 받는 흑인 베두인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백인 베두인들이 초코케이크를 노예대가리라고 부르는 걸 듣고 "우리가 왜 노예야?" 하며 분개하는 그들이지만, 그들은 왜 자신들이 근본적으로 백인보다 못한 존재로 여겨지는지, 백인과 사랑에 빠져도 결혼하지 못하고 결국 자기 나라에서 추방까지 돼야 하는지, 그 역사를 알지 못했다. 자신들의 뿌리를 찾는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일상의 억울함이 있고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또한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살았다. 그들이 카메라를 들어 백인 시장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기 전까지는. 다소 평이한 전개의 다큐였지만, 흑인들 특유의 낙천적 기질이 인종차별이라는 도저히 인류역사에서 해결되지 못할 것 같은 단단한 모순마저 부수어버릴 듯한 에너지를 내뿜는 영화다. 그리고 또 하나. 작년 서울여성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법조계의 자매들을 보면서 처음 깨달은 거였는데, 영화를 보는 내 눈이 얼마나 백인 중심으로 길들여져 있는지, 흑인영화를 볼 때마다 새삼스레 놀라게 된다. 그들의 풍부한 표정을 읽으며 깜짝깜짝 놀라는 내가 참 싫었다.    


 

  수입아내 (My Imported Wife, 2004
감독 : 차이 청렁 Chung-Lung Tsai
대만 / 54분 / DV / Color     차이를 넘어선 소통은 가능할까?   결혼을 너무너무 하고 싶은 장애인 남자가 있다. 그러나 나이 마흔이 다 돼가는데도 신부감은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그는 가까운 캄보디아의 어린 소녀를 돈으로 수입해 신부로 맞아들인다.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경제적 능력과 빈곤, 이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들 부부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러닝타임 내내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는 이 부부를 지켜보며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어느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다. 둘 다 이해가 되기도 하고 둘 다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차이를 넘어선 소통과 공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의구심이 생긴다.

 

      팬지와 담쟁이 (Pansy & Ivy, 2001)
감독 : 계운경
50분 / DV / Color   난 그런 것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2001년 작품이니 꽤 오래된 다큐다. 장애인 자매들의 일상을 다룬 다큐라고 하길래 장애인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꼬셔서 함께 봤다. 그냥 보통 사람의 일상도 가만히 지켜보면 큭큭거리며 웃을 일이 있듯이, 장애여성들의 일상이라고 별 다를 건 없다. 30대 중반 결혼하고 싶은 여성이 한 남자를 마음에 두고 마음 속의 줄다리기를 하는 긴장감이나 주변 친구와 자매들이 너도나도 조언자가 되어 배 놓아라, 감 놓아라 훈수두는 시끌벅적한 풍경도 재미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저 자매는 정말 외모 가꾸는 데 무진장 신경쓴다"고 그랬고, 친구는 "내 주변 사람들도 연애하고 싶고 결혼하고 싶어서 난리"라고 말했다. 사실 비장애인 친구나 동료가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외모 가꾸는 데만 올인하고 연애와 결혼에 안달복달하는 모습을 보이면, 난 참 매정하게 대하는 편이다. 누구랑 엮일 생각 하기 전에 너 자신부터 가꿔라, 일갈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장애인에게는 똑같이 그럴 수가 없다. 비록 가까운 친구라고 해도 함부로 말을 내뱉기 저어되는 걸 어쩔 수 없다. 가끔은, 오히려 그렇게 비장애인과 다르게 대하는 게 장애인을 대상화시키는 행동이 아닐까 고민도 해보지만, 내가 타인에게 비춰지는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나 연애와 결혼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장애인이 그런 것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내게 외모 가꾸기와 연애, 결혼은 선택의 문제일 수 있지만 장애인들에게는 권리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이 사회의 소수자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친해질 기회가 많아지면서 사실 세상 살기는 더 어려워졌다. 아니,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고 하는 게 맞겠다. 무엇 하나 명쾌하게 결론 나는 것 없고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도, 이전의 무지에서 비롯한 명쾌한 나보다는 지금의 혼란스러운 내가 더 마음에 든다. 난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배우고자 할 뿐이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그리고 끝날 때 윤시내의 "열아홉 살이에요"가 흘러나왔다.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ㅋ  


 

  블랙 골드 (Black Gold, 2006)
감독 : 마크 프랜시스&닉 프랜시스 Marc Francis&Nick Francis
영국 / 78분 / DV / Color   시장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한창 한미FTA 최종협상을 진행 중인 와중에 본 에티오피아 커피농장 농민들의 이야기. FTA에 반대의견을 표하거나, 자본에 대한 규제 문제만 나오면 무식한 인간 취급을 하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시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자본가든 노동자든 부유한 사람이든 도시빈민이든 가릴 것 없이 깊숙이 파고든 것 같다. 전 인류의 기호식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커피를 가장 많이 재배하고 있는 나라, 게다가 세계 최상품의 원두가 나온다는 나라, 에티오피아는 세계 최빈국이다. 그들은 아무리 허리가 휘도록 커피를 재배하고 팔아도 가족들의 입에 풀칠하는 것도, 자식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들이 재배한 커피를 가장 많이 사가는 미국으로부터 원조로 들어온 식량으로 간신히 허기를 때울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그들이 생산한 원두의 가격을 정하는 것은 시장이다. 그런데 그 시장이란 게 참 이상한 것이 생산한 농민들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뉴욕에서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이들이 가격을 정하는 곳이란 거다. 원두시장만 보아도 "시장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것"이라는 논리는 아주 오래 전 애덤 스미스 때 끝난 이야기임에 틀림없는데, 그런 논리가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현실이 더욱 씁쓸해졌다.   이 영화...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참 쉽고 생생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하지만, 특히 다큐임에도 불구하고 장면마다 딱딱 들어맞는 음악을 선곡한 솜씨 또한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는 게 흠이다. -_-;;

 

 

인디다큐페스티발2007 폐막제

 

인디다큐페스티발2007이 5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어제 폐막했다.

프로그램을 보며 보고 싶은 영화, 보아야 할 영화를 여섯 편 골랐는데, 결국 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보지 못하고 총 5편을 보았다. FTA 최종협상 일정과 맞물린 데다가 지난 주말 즈음해서 왜 이리 술 약속은 많은지, 영화보는 일이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았다고나 할까.

아무튼 나름대로 보람있는 페스티발이었다.

 

  개막식은 시간이 맞지 않아 가보질 못해서 폐막식은 꼭 참석하고 싶었다. 영화제의 개폐막식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특히나 상업적이지 않은 영화제는 어떤지 궁금했다.

참 소박했던 폐막식. 유쾌한 영화제 동영상과 경과보고, 무대체질이 저~얼대 아닌 인종들로 보이는 주최측의 짤막하고 수줍은 인사, 그리고 FTA반대 투쟁 관련 동영상, 주최측과 꼭 닮은 듯 발랄하지만 어김없이 무대체질이 아닌 자원활동가들의 쭈뼛거리는 무대인사가 폐막식의 전부였다.

축하공연도 없고, 관객들을 사로잡을 만한 이벤트도 없었지만 진정이 묻어나는 소박한 의례. 영화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개폐막제니 부대행사니 딴 거 신경 안 쓰고 영화로 승부하는 그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쿠바, 천국의 가치 (Cuba, the Value of Utopia, 2006)
감독 : 쟈나라 구아쟈사민 Yanara Guayasamin
벨기에, 에콰도르 / 116분 / DV / Color
 

당신에게는 꿈이 있습니까?

 

인디다큐페스티발2007의 폐막작 . 베네수엘라 차베스를 비롯해 남아메리카 반미 좌파 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폐막작은 매진사례였다. 우리 일행은 일찌감치 폐막제부터 참여한 고로 자리다툼을 할 필요 없이 여유롭게 관람을 했지만, 뒤늦게 영화 시간에 맞춰 찾아 온 한 친구는 턱걸이로 구석진 자리를 겨우 구해 영화를 볼 수 있었다.(나중에 들으니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새치기로 들어온 거였고 안 그랬으면 허탕치고 인천으로 돌아갈 뻔 한 거였다.)

 

참 독특한 다큐였다. 오로지 등장인물들의 인터뷰만으로 이뤄진 다큐. 그래서일까, 일행 중 가장 어린 친구는 똑같이 평이한 톤으로 이어지는 인터뷰에 지루했다고 말했다. 중간 중간 인터뷰를 흥겨운 라틴음악으로 들려준 할아버지가 없었으면 아마도 잤을 거라고. ㅋ

하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영화였다. 어떻게 인터뷰만을 엮었는데도 1956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혁명부터 소비에트 연방과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재의 시기까지 이토록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다섯 사람 정도의 메인 인터비들의 목소리가 시간 순으로 교차되어 흘러가는 동안 역동적인 혁명의 마에스트로부터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현재까지의 역사가 흘러간다.

사실, 쿠바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일전에 세계 여성운동사 자료를 수집하다가 쿠바 자료를 찾는데 국회도서관까지 뒤져보았지만 찾지 못한 적도 있다. 이남 땅에서 쿠바연구가 얼마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쿠바는 북과 더불어 금단의 땅이다. 그나마 북에 대한 연구는 한민족이라는 이유로 친북이든 반북이든 연북이든 이래저래 진행되고 있지만, 쿠바는 너무 멀어서 그런가, 정말 자료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최근에서야 남아메리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쿠바에 대한 책도 몇 권 나온 것 같다.

아무튼, 쿠바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체 게바라 평전을 통해 주워들은 혁명사가 전부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쿠바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재작년 평양에 갔을 때 느꼈던 감정이 스크린 속 쿠바를 보는데 고스란히 살아났다. 물론 한 나라였다가 분단된 북과 쿠바가 같은 느낌일 수는 없겠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와 꿈은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피부색도 언어도 생소한 쿠바 사람들이 남같지 않았다. 예전부터 그런 마음이 있긴 했지만, 이 영화를 보고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번 쿠바에 가리라, 생각했다.

 

시인, 화가, 오페라가수, 군인... 인터비들의 직업은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혁명의 한복판에 있었고, 혁명을 통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실물적으로 확인한 세대들이었다. 1959년 공동의 선이라는 꿈을 꾸며 혁명에 참여했던 그들은, 혁명의 시대는 끝났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21세기 여전히 혁명을 꿈꾼다.

물론, 자연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미국의 경제봉쇄에 맞서 살아남기란 상상 이상의 고통이다. 혁명후세대들은 돈벌이가 안 되는 고국을 버리고 미국이나 스페인 등으로 떠난다. 부족한 물자 때문에 국민 모두가 발명가가 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들 스스로 자신을 생존자라고 부를 정도로 쿠바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쿠바를 지킨다는 것은 일상 자체가 전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비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혁명은 자신의 꿈을 이뤄주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꿈을 버리지 않았다고.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신자유주의보다는 불행하지 않다고. 진짜 불행한 것은 값비싼 청바지 때문에, 그럴듯해 보이는 자동차 때문에, 순간의 만족 때문에, 생의 행복을 그리는 "꿈"을 잃어버리는 거라고.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연구하고 노력한다. 사회주의 어머니 나라인 소비에트 연방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시대, 21세기형 사회주의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여전히 꿈을 꾼다. 그리고 스크린 밖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에게는 꿈이 있습니까?"

 

 

  영화제에 왔으니 기념촬영은 꼭 해야 한다고 우기는  성희언니 덕에 몇 컷 찍었다. 집에 쳐박혀 일하느라 2주만에 햇볕을 봤다는 주현씨, 내가 바쁜 척하느라 너무 오랜만에 만났더니 단발머리 소녀가 되어 나타난 성희언니(낼모레 쉰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이렇게 젊어보이는 컨셉트를 하다니... 칫...), 뒤늦게 헐레벌떡 뛰어온 현미. 즐거운 영화여행을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에 배가 너무 고파서 식당을 찾는데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만한 식당이 없어서 식당 앞에 차를 주차해 놓고 음식을 차 안으로 들여와 먹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겪는 특별한 만찬이었다. ^^;;

 

p.s.

80kg이 넘는 전동휠체어를 차에 싣고 인천서 서울까지 올라와, 다시 전동휠체어를 차에서 내려 턱 없는 길을 찾아 헤매며 극장 좌석까지 앉는 여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모두 근력 딸리는 여자들인 데다가 그 중 한 사람 역시 도보가 자유롭지 않은 장애인이었다.

낙원상가 관리인 아저씨, 인디다큐페스티발 자원활동가, 택시를 기다리던 젊은 청년 관객들, 그들의 친절한 도움에 감사드린다.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