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물으시면 서슴치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요" 라고 말하겠노라고 했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
그는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45구경 미제권총에서 발사된 4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그러나 김구 선생은 그 보다 50여 년전인
1896년 8월 죽음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김구 선생은 일본군인을 살해한 죄목으로 체포되어,
인천감옥에 수감된 후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었다.
김구 선생이 살해한 일본군인은
바로 국모였던 민비의 살해범으로 지목된 사람이었으나,
고종은 그 사실을 사형선고 이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 때 사용된 연락수단이
3일전 개통된 한성-제물포 간 행정전화였다.
전화의 개통이 없었더라면
김구 선생을 살리고자 하는 고종의 마음은
사형이 집행된 후에나 전달되었을 것이며,
중국대륙을 주름잡으며
불굴의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우리민족의 지도자,
민족의 분단을 막기위해
38선을 넘나들며 애썼던 우리민족의 지도자,
그의 탄생 역시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