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신호에 걸렸습니다.
그녀를 만나러 홍대 앞으로 가는 길인데,
아무래도 오늘은 왠지 분위기가 안 좋을 것 같군요.
전 운전을 하면서 금세 닥칠 일의 운수를 점치곤 합니다.
신호에 걸려 서 있는 횟수가 많으면 짜증나는 일이 생기고,
한 번도 신호에 걸리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면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둔요.
일종의 징크스라고 할 수 있겠죠.
그녀를 만나던 날도
신호에 한 번도 안 걸리고 회사를 갔어요.
물론 주차장에서 자그마한 접촉사고가 있었지만,
그건 운수 좋은 일이었으니까,
제 징크스가 통하는 게 아닐까요?
그녀의 차가 제 차로 다가와서는 살짝 부딪혔습니다.
그녀는 내려서 몇 번이나 머리 숙여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급하게 명함을 꺼내 건네더군요.
새 차를 뽑은 지 일주일 밖에 안됐었기 때문에
무진장 화가 났는데..근데 화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명함을 건네는 손을 보니 딱, 제 이상형이었거든요.
길쭉길쭉하면서 마디가 굵지 않고,
손톱도 잘 정리되어 있고...
제 손이 우락부락 거칠고 못생겨서
여자를 볼 때 제일 먼저 손을 보게 되더라구요.
세상의 남녀는 참 다양한 인연으로 만나는 것 같아요.
아무튼 오늘이 그녀를 여섯번째 만나는 날입니다.
벼룩시장을 하고 있는 놀이터 앞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근데 누가 다가와 길을 묻습니다.
성진 미술학원이 어디냐고...
모른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참인데,
그녀가 도착을 했습니다.
그녀도 한때 그 미술학원에 다녔었다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미술엔 도무지 소질도 없었는데,
꽃만 그리는 어느 멋진 오빠가 다녀서
자기도 다녔었대요.
근데 전 지금 그 오빠한테 질투 같은 게
전혀 나지 않습니다.
단지 제 머릿속엔 오늘은 꼭 그녀의 손을 잡아야겠다는
굳은 의지뿐입니다.
오늘 오면서 계속 신호에 걸렸는데,
그녀의 손을 잡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제 징크스를 깰 수 있을까요?
지금 제 머리엔 앙큼한 생각뿐입니다.
소질 없는 그림을 그리던 그 손 좀 보자고 하면서...
잡아 볼까요?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사랑에 있어 스킨쉽은 비타민 같은 거라고,
눈치 보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그녀의 손을 잡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