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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금단의페트 - promise - Chapter 2-1

홍한석 |2007.04.11 02:06
조회 35 |추천 0

금단의 페트(The forbidden pet) -

[애니, 소설 보러 오세요^ - ^]

이 름 배진국

제 목 금단의페트 - promise -
 
 
 
 
 "깨어날 때가 되었는데.."
 네트는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눈앞에 누워 있는 실피안의 모습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인간과 격이 다른 티끌하나 없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실피안.
 지난 십 년 동안 네트가 공들여 만든 그 실피안은, 사실 이
 미 모두 완성 되어 있는 상태였다.
 육신과 정신의 밸런스도 빈틈없이 완벽했고, 시전한 마법도
 큰 무리 없이 활성화되 있는 정상적인 상태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골칫덩이 실피안은 수면 상태에 빠진
 체,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으며 그렇게 누워 있었다. 원인도
 알 수 없는 그런 현상에 아무리 경험 많은 실피안 제작자인
 네트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젠장, 이 잠꾸러기 녀석.. "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많은 만큼, 그 집착과 애정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만큼 이 실피안에 이유없는 수면 상태에 대
 한 실망도 컸다.
 수도 셀 수 없을 만큼의 마법 아이템과, 마법 주문을 사용해
 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실패, 실패, 실패라고.
 ".. 제길!!!"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네트는 침대
 한쪽에 걸터앉은 체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잡아 뜯으며
 자학했지만, 그렇게 행동해 봤자 스스로만 괴로울 뿐이란 것을
 깨닫고, 다시 침대에 누워 있는 실피안으로 착잡한 눈길을 돌
 렸다.
 
 따스한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고 있는 정원에서, 네트는
 아끼는 실피안, 카롤이 건네주는 차를 마시며 그렇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카롤은 그가 가장 최근에 만든 실피안으로, 성능도 여태까지
 만들었던 실피안 중에서도 손꼽히는 최강 급이었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그녀를 소유하고 싶다는 제의가 왔었지만, 네트는 카
 롤이 맘에 드는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그녀를 다른 곳에 넘길
 마음이 없었기에, 아직까지 저택에서 네트의 잔심부름을 하며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저급한 귀족들의 노리개 같은 실피안은, 네트가 제작하는 실
 피안과는 그 격이 달랐다. 일방적으로 명령을 수행하는 그런류
 의 것들과는 달리, 그가 제작하고 있는 것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방대한 마력과 전투
 력은, 평범한 인간이나 실피안과는 대적할 수 없을 정도의 무
 력이었다.
 여하튼 그런 네트의 실피안인 카롤은 벌써 10년째, 마음에
 드는 주인이 없다는 이유로 네트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
 고, 네트는 그런 카롤을 시도 때도 없이 구박하며 그렇게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 여전히 형편 없는 차 맛이군."
 벌써 몇 년째 똑같은 레퍼토리로 화를 내고 있는 네트를 바
 라보며, 카롤은 쓴웃음 지으며 그렇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차를 내온다 하더라도, 똑같이 불평할 것을 알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요새 네트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알고 있기에, 카롤
 의 행동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잠시 동안 그렇게
 눈치를 보며, 어떤 말을 할까 고민을 하던 카롤에게 네트가 먼
 저 입을 열고 말했다.
 "젠장,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거
 지."
 네트의 히스테리적인 말에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기 위해 카
 롤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순간 아무리 자신이 위로한다고 하
 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
 쳐 지나갔기 때문에, - 아니,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오
 히려 카롤 자신에게 화풀이할 가능성도 컸다. - 마음을 고쳐먹
 고 열렸던 입을 닫으며 침묵을 지키기로 한 카롤이었다.
 잠시 동안의 침묵 후에, 네트는 갑작스럽게 자리를 일어서
 고, 다시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카롤은 그런 주
 인의 뒷모습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자벨린을 떠난 지도 벌써 삼 일의 시간이 지났지만, 수도라
 불리는 곳은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 라인제 무역로.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 표지판을 보면서 그래도 안도의 한숨
 을 쉴 수 있었다. 그래도 가고 있는 방향마저 틀리지는 않았다
 는 증거가 되었으니 말이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를 원망하며,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음을 움직였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낡아 빠진 나침반 하나, 얼마 되지
 않는 말린 고기, 빵 조각들이 전부. 옷가지와 책들도 있었긴
 하지만, 그것들은 사실 여행에는 별 도움도 되지 않았다.
 책이나 옷가지 같은 것들은 무거워서 바닥에 내던져 버리고
 싶어왔지만, 그래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책이 있어야
 지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하고, 옷이라도 있어야지, 수도에서
 갈아입을 것이 있을 테니 말이다.
 먼지와 땀으로 구질구질해져 있는 몰골을 보니 한숨밖에 나
 오질 않는다. 목욕과, 따뜻한 수프가 있는 제대로 된 식사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삼
 일 동안 겪었던 괴로웠던 나날들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지도상에는 별로 떨어지지 않는 거리라고 나타나 있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이렇게 고생 고생하면서 며칠 동안을 꼬박
 걸었는데 수도라고는 그림자도 나타나지를 않으니.
 '이러다가 길바닥에서 객사하는 거 아닌가.'이런 생각이 들
 자, 조금은 우습기도 했다. 이런 어린 나이에서 길바닥에서 객
 사라니, 절대 폼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그렇게 죽는다
 하더라도, 슬퍼해 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아니, 제프리 녀석
 이라면 비웃느라 정신없을 테고.
 
 그래도 다행히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이런 여행자를 위한
 오두막 같은 곳을 발견한 것은 운이 좋은 일이다. 노숙하는 것
 보다는,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하더라도 최소한 바람은 피할 수
 있는 이런 오두막 쪽이 백 배는 낫기 때문이다.
 창문도 없고, 대충대충 통나무 같은 것으로 엮어 만든 것이,
 급조된 티가 팍팍 나는 그런 오두막. 그래도 다행스럽게, 나무
 나 짚더미 같은 것들이 한쪽 구석에 쌓여 있었기 때문에 불은
 피울 수 있었다.
 담요를 몸에 두르고, 딱딱한 말린 고기 한 조각을 베어 물며
 천천히 씹는다. 비록 맛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굶지 않
 는다는 것을 감지덕지 여겨야 할 것이다.
 이제 식량도 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최소한 아껴서 먹는다
 하더라도 삼 일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야옹' 하는 소리와 함께 배낭에서 노엘 녀석이 밥 달라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모자란 식량을 이런 녀석한테까
 지 주어야만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뭐 어쩔 수 없다.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주인 된 도리로 책임
 을 지는 수밖에. - 아니, 비상식량이라고 생각하면 불쾌했던
 기분도 조금은 흐뭇해지는 것이 사실이었으니.
 말린 고기 한 조각을 주자, 야금야금 잘도 씹어 먹는다. 저
 런 모습이 확실히 귀엽다고 느껴지기는 한 것 같다. 그래서 저
 애물단지를 기르고,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겠지.
 대충, 나도 노엘 녀석도 배는 채운 것 같으니, 이제 슬슬 잘
 차례인 것 같다.
 내일도 아마 하루 종일 걸어야 할 것이다. 지금 미리 푹 쉬
 어놓지 않으면, 피로가 쌓여서 내일 얼마 걷지도 못하고, 쓰러
 질지도 모른다.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어떤 함성 소리라고 할까? 그런
 웅성거리는 소리가 오두막 근처로 들려왔다.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봤지만, 특별하게 이상하게 다른 점은
 느낄 수 없었다. - 노엘 녀석이 옆에서 시퍼렇게 눈을 뜨고 날
 째려보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
 자리를 일어서고 천천히 문 쪽으로 다가가자, 조금씩 문밖에
 서 사람들의 고함 소리 같은 것들이 새어 나오는 것이 그제야
 느껴져 왔다.
 긴장감이 들기는 했지만 내가 잘못한 것은 조금도 없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행동하기로 마음먹고 상황을 살피기 위해 천
 천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와 함께 횃불을 든 몇몇 남자들이 오
 두막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당혹스러워지
 기 시작했지만, 침착하게 숨을 고르게 한 후, 천천히 앞에 있
 는 사람들 쪽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 .."
 그다지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호감은 가지고 있
 지 않다.
 나도 그렇고 저쪽도 그런 듯하다. 나는 그 사람들을 보며 그
 렇게 생각했다.
 먼저 말을 걸어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 약간은 뚱뚱한
 한 사내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순간적으로 거
 부감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갔지만 내색하지 않고 사내의 얼굴
 을 바라보았다.
 "음, 소란을 피워서 미안하게 되었네. 이 오두막에서 머물
 고 있는 것 같은데?"
 사무적이고 감정이 담겨져 있지 않은 그런 말투. 살짝 이마
 가 찌푸려져 왔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 긍정을
 표했다.
 "사실은 말이네, 이 근방에서 노예를 하나 잃어버려서, 찾
 고 있었던 중이었다네."
 '그래서요?'하고 대충 대답하자, 뚱보 녀석은 곤란하다는 듯
 이, 누렇게 된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을 이
 었다.
 "하여튼…. 열세네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지. 푸른색 머
 리니 구별하기도 쉬울 꺼야. 사례는 두둑하게 해줄 테니, 보게
 되면 꼭 잡아 놓아두길 바라네."
 대충 고개를 끄덕거려 주고는, 다시 오두막을 향해서 걸음을
 향했다.
 오두막에 다시 돌아온 나는, 조금전의 상황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잠을 자기 위해 모포가 널브러져 있는 곳으로 걸음
 을 움직였지만.
 ".. .."
 내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는 '누군가'때문에 그럴 수는 없게
 된 듯하다.
 도대체 눈치도 못 챘는데 언제 들어온 것일까? 참으로 용하
 기도 하다.
 마치 굼벵이처럼 잔뜩 웅크린 체,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
 이 조금 안타깝기도 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천천히 모
 포를 손에 잡고 끌어 내렸다.
 "아.. 흑흑.. "
 모포를 벗긴 것을 눈치 챈 것인지, 흐느끼면서 더 심하게 떠
 는 모습이 동정심 같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푸른색 머리니 구별하기도 쉬울 꺼야.'머리 속에 방금 전
 뚱보 녀석의 말이 머리 속에서 떠오른다. 이 눈앞의 소녀도 푸
 른색머리였기 때문에.
 모닥불에 비쳐 약간은 붉은빛이 도는 푸른색.. 확실히 흔한
 머리 색은 아니다.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이 소녀가 밖에 있는 녀석들이 찾는
 바로 그 '노예'일 가능성이 크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에 갑작스레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이봐, 문 좀 열어봐!"
 나를 별로 신용하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기어이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하려 들다니.. 아니면, 잊어버리고 하지 못한 말
 이라도 있는 건가? 문 두들기는 소리와, 사람들의 고함 소리를
 듣자, 푸른 머리의 소녀는 흠칫하고 놀라며, 얼굴에 울음을 쏟
 아내며 더욱더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해야 되는 것일까.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의 소
 녀와 뚱뚱하고 불유쾌하게 생겨먹은 재수없는 녀석,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쳇, 비교하기도 민망하군.
 ".. 이봐, 이런 곳에서 붙잡히고 싶지는 않지?"
 내 말을 듣고 슬쩍 얼굴을 올리고 나를 바라보는 소녀, 눈물
 로 뒤범벅이 되었어도 굉장히 귀여운 얼굴이다. 아마 커서는
 더 아름다워지겠지. 그래서 저 밖에 있는 녀석들이 기를 써서
 찾는 것일 테고.
 그런 모습에 나는 어금니를 깨물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런 녀석들한테 붙잡혀 가는 것을, 뻔히
 바라만 보고 있을 정도로 난 멍청하고 질 나쁜 녀석은 아니다.
 ".. .."
 나를 아직은 믿지는 못하는지 당혹스러워 했지만, 고개를 끄
 덕이며 소녀는 긍정을 표했다. '젠장, 결정은 이미 내려진 거
 군.' 살짝 중얼거리며 난 정신을 집중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 것이다. 그중에서
 제일 합리적이고, 빠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
 며 나는 오늘 아침에 메모라이즈한 주문을 떠올렸다. 두 번째
 단계의 한 주문을 외워둔 것을 깨닫고, 난 가급적 빠르게 행동
 하기로 마음먹으며 주문을 캐스트하기 시작했다.
 익숙지 않은 주문이라 힘들긴 했지만, 이를 악물며 정신을
 집중한 덕분인지 아슬아슬하게 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투명화(invisibility)."
 소녀가 갑작스런 빛에 몸을 웅크리며 저항하는 바람에 조금
 애를 먹긴 하였지만, 어쨌든 대충이나마 성공한 것 같다. 소녀
 의 모습이 천천히 내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마법이 깨질 수도 있으
 니."
 속삭이듯 소녀가 있었던 자리에 말을 건내고 문을 열기 위
 해 나도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조금 끈 것이 의심스러운 건
 지, 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고함 소리는 점점 커지기 있었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자, 전에 보았던 뚱뚱한 사내
 와 몇몇 남자들이 갑자기 안쪽으로 들어와 오두막을 수색하려
 고 했다. 나는 그냥 부스스한 모습으로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은 체, 그 들이 하는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 …"
 보이는 것이라고는 내 배낭과, 고양이 노엘, 그리고 모닥불
 이 전부인 조그만 오두막을 보자, 수색할 마음도 들지 않는 모
 양이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네."
 뚱뚱한 사내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당혹스러워 하더니, 땅바
 닥에 은화하나를 던져 놓고 다른 사내들과 함께 오두막 밖으
 로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사라지
 자, 바닥에 떨어진 은화를 주워 들고 소녀가 있을 거라 생각되
 는 곳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나와도 좋을 꺼 같아."
 역시 급조된 것이어서, 소녀가 조금 움직이자 투명화 마법은
 깨져 버렸다.
 원래대로라면, 조금 움직여도 마법은 깨지지 않는 것일 텐
 데.. 아직 나의 실력이 미숙하다는 증거다.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표정은 아직도 두려움에 가득 차 있
 었다. 아마 빌어먹을 인간들에게, 심한 취급을 받은 모양이다.
 그래서 인간 불신증 비슷한 것에 걸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런 아이에게 달리 뭐라 해줄 말은 없었다. 위로한다고 하
 더라도 내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아픔은 알지 못할 테니.
 조용히 배낭에서 물통과, 마른 고깃덩어리를 꺼내고 소녀에
 게 던져 주었다. 달리 어떻게 해줄 도리가 없으니, 먹을 것이
 라도 던져 주는 것이었다. 아마 여기까지 쫓겨오느라 많이 지
 치고 배고팠을 테니 말이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내 눈치 보다가 재빠르게 말린 고깃덩어
 리를 주어들고는, 악착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 그러다가 체할 수도 있으니 꼭꼭 씹어 먹으라고."
 입 안 가득 음식을 집어넣고,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
 는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워 입가에 웃음이 어리기 시작했
 다. 소녀는 새삼스럽게 부끄러운 모양인지, 천천히 음식을 씹
 으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막 눈을 뜨자마자, 무엇인가 몸 위쪽에 무게감 같은 것이 느
 껴왔기 때문에, 난 조금은 당혹스러워졌다.
 ".. .."
 새근새근하고 내 몸 위에 팔을 올려놓고, 잘도 자는 푸른색
 머리의 소녀.
 팔을 치울까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타이밍 좋게 소녀도 눈
 을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순식간에 정적, 그리고.. 붉어지기 시작하는 소녀의 얼굴. 새
 삼스럽게 나도 조금은 의식이 되기 시작한다.
 소녀가 팔을 치우고 자리에 일어서자, 나도 모포를 끌어안고
 자리에 일어났다.
 ".. 이름이 뭐지?"
 문득 이름이 궁금해져왔기 때문에, 난 소녀를 바라보며 질문
 했다.
 "시아."
 시아? 조금은 특이한 이름이군. 난 내 이름을 대충 '베리'라
 고 말해주고, 수도로 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준비를 마치고 내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시아라고 하던
 소녀도 나를 따라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막상 이런 상황이 닥쳐 오자 조금 후회 같은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내가 그녀를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된다
 고는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그녀를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쓸모없는 동점심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한
 일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래 섞인 바람이 입 안에 들어와, 자꾸 짜증이 나기 시작했
 다. 아직 정오가 되기도 많이 이른 시간이지만, 날씨는 벌써부
 터 더워지기 시작했다.
 거치적거리는 외투는 가방에 쑤셔 박아놓은 지 오래였다. 무
 겁고 쓸모없는 데다가, 디자인도 맘에 들지 않는 그야말로 최
 악의 아이템이었지만, 그렇다고 버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
 다. 밤에 든든하게 입고 자지 않는다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
 었기 때문이다. - 그래도 밤에는 꽤 쌀쌀하다고 느낄 만큼 기
 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
 날씨는 더웠고, 마실 물도 충분하지 않는 데다가 장비마저
 빈약했다.
 그래도 수도로 통하는 길이었기 때문인지 잘 정비되었기 때
 문에 걷기 편했고, 가끔씩 마음씨 좋은 상인들 같은 사람들이
 마실 것이라도 건네주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시아라는 소녀는 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
 리, 부지런하게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잘 따라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새삼스러울 따름이었다.
 
 하루종일 걸었던 오늘은 재수없게도 노숙을 해야만 하는 상
 황으로 결론지어진 것 같다.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자는 것이, 새삼스럽게 굉
 장한 일인 것처럼 내 사고를 전환시켜 준 것이, 이번 여행의
 플러스 요소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도 좋을 듯하다.
 ".. .."
 시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
 저는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내게 묻는 듯해서 나는
 입을 열었다.
 "내일도 한참 걸어야 할 꺼야, 쉬는 게 좋아."
 가방에서 건조 식량을 꺼내서 노엘과 시아에게 조금씩 떼어
 주고, 나도 조금 떼어 먹고는 외투를 몸에 두르며 바닥에 누웠
 다. 하나밖에 없는 모포는 시아에게 건네주었기 때문인지, 밤
 바람이 불어와 조금씩 몸에 한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들을 모아, 조그마하게나마 피워둔 모닥불을 쳐다보
 며, 그렇게 누워 있은 지도 조금 시간이 지나자, 슬슬 졸음이
 내 몸을 무겁게 하기 시작했다. 조금 춥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피곤함이 더 우선이다. 눈꺼풀이 저절로 감긴다.
 '내일은 도착할 수 있어야 할텐데….'하는 생각을 마지막으
 로, 난 그렇게 잠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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