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인 김수영의 유고작 풀
내가 가장 먼저 접한 그의 시는
그의 생에 마지막 시였다.
짧은 시가 주는 강한 여운 그의 시중
대체로 짧음의 미약을 가진 시들의 공통점이다.
제재니 주제니 구성이니
특징이니
그의 시를 읽는데 가장 쓸데없는 것들이다.
시인이신 신경림님은 아직도 그의 시 중 눈 이라는 시의 제대로된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힌바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시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가 눈과 폭포라고도 했다.
4.19가 어쩌니 민족성이 저쩌니
그의 시를 보는 여러 관점이라 하겠지만
소위 김수영의 메니아라 자칭하는 나로서는
부디 그의 시를 읽을 때
"참여문학의 모범적 실천인의 모습"을 찾거나
그것에 대한 편견으로 먼저 다가서지 않았으면 한다
확실히 그는 참여 문학의 큰 갈래였지만
그의 시가 모두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시에서 그런 모습만 찾으려고 애를 쓴다
뻑하면 4.19의 정신이 어쩌고 자유가 어쩌고
4.19가 그의 시풍에 가장 큰 전환점인 것은 확실하다.
그가 끈임없이 자유를 노래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시에서 그러한 정형화된 이미지만을 찾는다면
분명 그 사람을 시를 잘 읽었다고 말 할수 없다.
중.고등 학교때 입시를 위해
주제니 제재니 갈래니 형식이니 상징이니 비유니
시를 토막내어 읽는 것만 배웠으니 오죽 하겠냐만
김수영의 시가 아닌 그 어떠한 시인의 시도 절대 그렇게 접근해서는 않된다.
그건 시를 곱씹어 읽어보면
절로 그려지기 부차적인 것이다.
시는 가슴으로 읽는 건데
사람들은 자꾸만 매스를 들고 해부하려고만 한다.
그러니 시가 재미없을 수 박에 없지않는가
이런 방식으로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이 바로 김수영과 이육사가 아닐런지
그런 방식으로 읽는 시는 설령 공부는 될지라도
아무것도 남는게 없다.
삶을 위한 지침이다
그 지침을 잘게 부수면 당장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저있고
어떻게 조립되었으며 또 어떻게 만드는지 대충 알수는 있겠지..
하지만 정작 그 본질인
"삶을 위한 지침"으로서의 역활을 못하게 되는거다.
시는 제발 편견 없이
무식하게
가슴으로 읽자
애써 머리 굴려가며 해석하려 하지 말고
억지로 꾸역꾸역 외우려하지도 말고
그냥 정말 무식하게 읽자.
눈으로 보고
입으로 중얼거리고
머리고 곱씹으며 생각하고
가슴으로 간직하자
그게 진짜 시를 읽는 참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