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Beautiful Sunday

신혜인 |2007.04.15 17:09
조회 22 |추천 1


From. Cine 21

(글) 황진미

 

*시간으로 위장한 한 남자의 면죄부*

 

*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볼 생각이 있으나 아직 보지 않은 독자는 읽고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영화의 구조는 독특하다. 두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두개의 이야기가 평행하게 나가다가 하나로 만나는 구조인데, 두 인물의 관계가 반전의 핵심이다.

이 영화는 범죄스릴러가 아니다.

영화의 핵심은 강 형사와 그의 아내의 수년에 걸친 애증관계로

굳이 말하자면 멜로이다.

영화는 수년의 간극이 있는 사건을 평행하게 진행시키면서,

"같은 시간대 다른 인물"의 이야기인 양 위장하다가

"다른 시간대 같은 인물"이었음을 드러낸다.

왜 이런 구조가 필요했을까? 

 

- 현재를 정당화하는 구조

 

는 의 완벽한 역상이다.

에서 학원강사 조인영(김정은)은 첫사랑의 남자와 이름과 용모가 같은 남학생 이석을 보고 사랑을 느낀다.

이어 여고생 조인영(정유미)과 이석의 연애장면이 나온다.

관객은 당연히 정유미 장면이 김정은의 과거장면이라 이해한다.

즉 "다른 시간대의 같은 인물"로 파악한다.

그러나 정유미가 김정은을 찾아오는 순간, 둘은 "같은 시간대의 다른 인물" 임을 알게 된다.

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30살의 여자가 17살 소년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것이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감정 때문이라면 이해해줄 수 있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30살 여자가 17살 소년에게 품은 욕망이 첫사랑의 기억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면, 추악한 음욕이 되는가?

순수한 사랑과 추악한 음욕의 판단 기준은 과거 사연을 알고 모르는 차이에 있는가?

 

가 동일인물인 줄 알고 아름답게 보던 관객에게, ‘동일인물 아니어도 아름답니?’ 묻는 반면,

는 다른 인물인 줄 알고 냉정하게 보던 관객에게,

‘동일인물인데 용서 좀 해주지?’ 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는 말한다. “평생 속죄하며 살게….”

영화는 이미 충분히 망가진 채로 의식불명의 아내 곁을 지키는 박용우(남궁민의 미래)를 먼저 보여주면서, 그는 미래에 내내 속죄할 테니, 용서해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속죄와 용서가 과연 정당한 것일까?

 

아내는 현재의 자상한 남편과 과거의 강간범이 동일인물임을 알았을 때, 그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는 자상한 남편 노릇이 강간죄에 대한 속죄가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아내는 강간범이었던 남편의 존재를 견디지 못한다.

또한 그는 수년째 간병하는 행위를 통해 아내를 상해한 죄를 속죄하고 있다(아내가 의식이 있다면 그것을 견딜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것이 과연 올바른 의미의 속죄인지 따져물을 필요가 있다.

 

속죄는 우선 죄의 사실을 적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은 왜 일본의 사죄없는 보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가?).

우선 강간의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속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강간을 사랑으로 치환한다(“널 정말 사랑했어”).

강간을 사랑으로, 살인을 강도사건으로 전치(그의 말버릇 “차가 와서 비가 많이 막히네요”)시킴으로써 그는 죄와 분리된다.

자신을 죄로부터 분리하여 “죄지은 착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그는 이미 자신을 용서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그의 속죄는 무의미하다.

그가 속죄의 이름으로 행하는 후속조치들은 또 다른 집착의 변주들일 뿐이다.

 즉 강간하고 일부러 접근하여 결혼한 행위나 찔러놓고 간병하는 일련의 행위에서 ‘전자를 죄(폭력)-후자를 속죄(순정)’로, 즉 상반된 의미로 볼 수 없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점에서 상반되기는커녕 동일하다.

 

- 가해자 관점의 서술방식의 한계

 

상반된 듯 보이는 ‘폭력’과 ‘순정’이 앞뒷면으로 결합된 지점에 이 영화의 최초의 사건, 강간죄가 놓여 있다.

짝사랑하던 여자를 강간한 것과 모르는 여자에게 성욕을 풀기 위해 강간한 것은 다르지 않느냐는 질문을 이 영화는 깔고 있다.

 

물론 남자(가해자)의 입장에선 다르고, 여자(피해자)의 입장에선 같다.

즉 사랑해서 강간했다는 말은 남자의 입장이지, 여자의 입장에선 똑같은 폭력일 뿐이다.

 

또 사랑-강간-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관점, 즉 ‘사랑해서 강간했고, 결혼해서 책임졌다’는 관점 역시 남자의 관점이다.

이는 강간을 성행위의 일종(적극적인 구애의 과정이자 조금 거친 성행위)으로 파악하는 것이요, ‘정조에 관한 죄’로 보는 관점이다.

강간 이후 계속 그녀를 사랑함(훼손된 정조를 책임짐)으로써 사태가 마무리됐다고 보는 것이다.

 

는 강간에 관한 남성 중심적 관점에 반쯤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 (박용우의 대사 “결혼까지 했으면 해피엔드 아닌가?”), 한편으로 피해자의 관점을 일부 수용한다.

 

가 그나마 미덕이 있다면 강간에 대한 피해자의 관점을 일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가 강간 이후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한두줄의 대사로 지나가지만,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의 결혼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녀의 몸부림은 녹록지 않게 담겨 있다.

그녀는 그와의 달콤한 연애와 결혼생활도 폭력이 탈각된 순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폭력의 연장선(“다시 날 찾은 이유가 뭐야? 나한테 왜 이러는데? 어쩜 이렇게 지독하니?”)으로 이해한다.

그녀의 분노발작은 강간을 ‘정조’에 관한 죄로 이해하는 관점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으며, 피해 여성의 관점에서 그녀의 내면적 고통을 이해해야만 납득이 가능하다.

 

는 한 남자의 과거와 현재를 충돌시키며 ‘자기-면죄부’ 발행의 논리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또한 강간에 대한 남성 중심적 통념들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일부나마 여성 피해자의 관점이 포함되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강간에 관한 최악의 영화로 손꼽힐 뻔했다.

 

---------------------------------

아주 오랜 만에 읽은

정말 쓸말한 영화리뷰.

참고로,

영화는 비추.

(사랑니, 번지점프를하다, 파이트클럽의 짬뽕으로 보면 되겠다)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