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라디오 강석,김혜영의 싱글벙글쇼의 '불효자는 웁니다'
코너에서 방송된 내용입니다
이십년전 어느때의 일입니다.
밥을 먹다말고 불쑥 엄마 앞으로 작업복 가방을 내놓았다.
"예,밥이나 다먹고 내놔라~먼지 나잖아~"
"빨리 열어봐 엄마~"
엄마는 자국을 먼지 날새라 살 살 열어 보셨다.
반짝이는 포장지로 포장된 조그만 상자하나......
"풀어봐 엄마~"
"이게 뭐야?엄마 생일도 아닌데......"
부스럭 거리며 풀어낸 포장지 안엔 빨간 내복이 있었다.
그위에 나의 첫 월급봉투가 너무 얄팍해 부끄러운듯 살포시 앉아
있었다.
"엄마,실습 나가서 처음 받은거야......"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하고 월급봉투와 내복을 가슴에 안은체 부엌
으로 내빼신다....
"이런~또 울음이야?좀 웃어주면 안돼?"
"부모님 모셔와라~"
한 바탕 몽둥이 찜질후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나는 속으로 쾌감을 느낀다.얼마나 듣고 싶어하는 말인가.....
어떻하든 엄마는 나의 이 비뚫린 고2의 시간을 목도 하셔야 한다.
비틀린 나의 모습을 말이다......
중학시절 난 미술학도를 꿈꾸었었다.유독 미술선생님은 나의 그림
앞에서 지도를 많이 해 주셨고 나는 나날이 늘어가는 그림실력으로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했었다.
미술선생님과 나는 예능고로 진학하는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
었다.그러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한 급격한 가세의 기울임은
나의 꿈을 허용하지 않았었다.
중학교 삼학년때 진학상담을 위하여 어머님이 학교에 오셨을때
난 절망감을 느꼈었다.공고만이 나의 선택 이라고.....
가정형편?그게 무엔가......
중삼의 속알딱지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학교만 들어가면 장학금으로 해결될꺼라고 아무리 애원해도 이미
나의 갈길은 정해져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반항아가 되었다.
공고 전기과가 나의 진로 였다.미술학도를 꿈꾸던 나는 도저히
전기과의 학업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자연히 공부는 등한시 하고
뒷자리의 몇몇동무와 교실을 긴장으로 만드는 불량학생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비틀린 고일의 시작은 점점 깊숙한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
그당시 유명한 폭력서클의 조직에 나는 자의반 타의반 으로 맴버가
되었다.
그때부터 반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교 선배들도 나를보는 눈이
달라졌다.가만히 있어도 들어오는 상납금을 나는 서클선배에게
바치고 일부는 용돈으로 사용했었다.
자꾸만 모나고 비틀리는 나의 행적은 선도부 선생님의 눈을 벗어
나지 못하고 몇번의 감시속에 나의 잘못이 들어나고 드디어는
어머님을 호출하신 것이었다.....
학교의 부름에 후여후여 달려갔던 어머니가 돌아 오셨다.
아마도 퇴학이 될것같다는 선고를 들으셨을 테지......
그렇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일언반구도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무어라고 나무라지.....나에게도 할말이 너무도 많은데....
늦은밤 부엌에서 부시럭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거슬려서 무슨소리
인가 해서 다가가서 살펴 보다 요즘 부쩍 이상한 일을 하는 어머니
를 보았다.
캄캄한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신문지를 둘둘말아 불을피워 끄고는
몽글몽글 피어나는 연기를 담배피듯 빨아 들이고 계셨다.
처음엔 무슨일인가 궁금 했지만 어머니와 그일 때문에 말문을 트기
싫어서 지켜만 보았다......그런일은 자주 되었고......
그런데 그날따라 흥얼흥얼 노랫소리까지 들리는것이 아닌가,
"음~음~음~음~"
하도 이상해서 계속 지켜보았다.그러나.......
그노래의 끝마디는 "엄마~음~음~음~"였다
엄마라니......노랫소리라니.......
그 소리는 엄마의 울음소리 였다.소리내지 않으려 속으로 알음알음
앓는 우는 소리였다.
엄마는 그냥 나의 엄마인지 알았다.막내아들의 비틀린 모습에서
절망을 느낀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부르며 울고 계셨던 것이다.
이북에 계신 생사를 모르는 외 할머니를......
처음듣는 엄마의 비통한 울음소리......
나는 그만 부엌으로 뛰어 들었다.
"엄마~왜 울어?나때문에 우는거야?퇴학 때문에?"
울부짓는 나를 보고 엄마는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을 치셨다.
복이 받쳐 악을내며 우는 나를 한참이나 보시던 엄마는,
"울기는 내가 왜~연기땜에 매워서 눈물이 나는거야~"
"그러게 왜 신문지를 피워~도대체 왜 그래~"
"이렇게라도 해야지 이 아픈게 없어 진단다 머리 아픈것도......"
"사리돈 먹으면 되잖아~사리돈 사먹을 돈도 없어?"
"내 입에 들어갈 약이 어딨어....그저 이렇게 참으면 되지....."
더이상 말을 못하고 뛰어 나갔다.
눈물이 하염없이 코로 입으로 턱으로 흘러 내렸다.
다음날 갖은 고초를 겪으며 서클을 탈퇴했다.
맴버가 되기는 쉽지 않지만 탈퇴는 더욱더 어려웠다.
그렇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막무가내로 탈퇴를 원하는 나의 결단을
서클선배 누구도 막지 못하였다.
선도부 선생님 앞에서 벌써 두시간째 무릎끓고 앉아 있었다.
"야,임마!어쩔수 없어,내손을 떠났단 말이야....."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우리 엄마 죽습니다.써클도 탈퇴 했습니다.
믿어주세요...."
선생님은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선도부실을 나가셨다가 한참만에
돌아 오셨다.
"마지막 기회다,나는 너를 못믿어...그러니 너무 애쓰지도 마...."
다음날 부터 나는 미친듯이 전기과 자격증 공부에 매달렸다.
"도서관에서....집에서....."
갑자기 달라진 나의 모습은 모두에게 경이롭게 느껴 졌을것이다.
선생님도 반아이들도,그러나 어머님은 말없이 조심스럽게 내모습
을 바라만 보고 계셨다.
고등학교들어 나는 도시락을 한번도 가져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방 방문앞에 도시락을 정성껏
싸 놓으셨다.나는 그 도시락을 철저히 무시 했었었다.그러나
어머님의 울음이 있고난 다음부터 난 그 도시락을 가방에 챙겨넣기
시작 했었다....
빈 도시락을 내놓으면 어머니는 그래도 아무말씀 없이 바라만 보고
계셨다.그러나 어머니의 신문지 태우는 모습은 급격히 줄어드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고삼때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전기 기능사
2급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삼학년 초에 공고는 실습이란 제도가 있어서 아이들은 각 산업현장
으로 실습을 나갔었다.나는 선생님을 조르고 졸라 제일 먼저 실습
을 나갔다.처음 실습지는 여의도 전경련 회관의 신축공사장 이었다.
고등학교 재학중인 아이는 그저 심부름 밖에 없었다.
20층을 풀방구리 드나들듯이 오르내리기 어느덧 한달이 되었다.
소장님은 어느날 누런 봉투를 내밀었다.
"자,월급이라고는 뭐 하지만 수고비다,너무 열심히 일해서 약속보다
조금 더 넣었다,아껴써라~"
드디어 내 손으로 첫월급을 받았다.
이돈을 받을 어머니에게 당장 치과로 가자고 해야겠다....
내가 번돈을 가지고 말이다......
속옷집에서 몇번의 망설임 끝에 빨강 내복 한벌과 엄마의 팬티를
샀다.주인 아줌마는 첫월급으로 사는 속옷이라 짐작 하시고는
아주 예쁜 포장지로 정성껏 포장해주셨다.
그렇게 해서 오늘 밥을 먹으며,쑥스럽게 슬쩍 밀어 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캄캄한 부엌에서 한참동안이나 나오시지 않으셨다.
그런 어머니가 제작년 2월 어느날 심장병이 도져 갑작스레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돌아 가셨다......
직장에서 연락을 받은 나는 허둥지둥 병원 응급실로 달려 갔었다.
어머니 주위로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둘러서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가슴위에는 자동으로 심장에 충결을 주는 기계가
사정없이 어머니를 짖누르고 있었다.....
얼마나 아픔을 줄까.....
점점 의사들이 사라져 갔다.마지막 인턴인가 한사람이 어머님의
부음을 확인 하여주었다.....
이 속썩이는 막내를 보지도 못하신채....
가장 불효한 자식이 가장 많이 우는 법이라더니......
삼일장 치르는 동안에 얼마나 울었던지,그러나 마지막 나의 눈물을
부른것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 하면서이다.
장농 제일 깊숙한 곳에 조그만 상자가 하나 나왔다.
그것을 열어보던 나는 그만 울다가 실신 하고 말았다.
빨간내의 하나.....그위에 누런 봉투하나.....
어머니는 그내의를 한번도 입지 않으셨나보다.
또한 그봉투의 돈도 한번도 사용하지 않으신듯 하다......
며칠후 어머님 유품과 그 내의와 그 봉투를 그대로 태워서
하늘로 올려 보냈다......
"어머님 만약 그곳이 추우면 제가 보낸 그 빨간 내의를 입으세요,
그리고 돈이 필요 하시다면 막내가 처음벌은 그 돈으로
사용하세요.......어머니......."
사랑 했었습니다....아니 영원히 사랑합니다.....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