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백제사 집필을 시작했던 1997년부터 지금까지 내 뇌리를 맴돌고 있는 화두다. 정말 백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백제라는 이름을 반복해서 불러보면 이상하게도 쓸쓸하고 측은한 느낌이 든다. 부여의 후예로서 고구려 건국에 막중한 역할을 했던 계루부 집단의 우두머리 소서노, 그녀는 남편 주몽에 이어 유리가 왕위에 오르자, 아들 비류와 온조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신하와 백성을 이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 망명길에 오른다. 발해를 건너 산동반도에 이르고, 다시 황해를 건너 한반도로 찾아든 그녀는 고구려보다 훨씬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여 돌아오리라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위를 두고 비류와 온조사이에 다툼이 일어났고, 소서노는 의리와 명분을 저버린 온조를 응징하기 위해 직접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채 위례성으로 말을 몰았지만, 불행히도 아들의 칼날에 희생되는 불운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듯 백제는 소서노라는 한 여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의 한과 눈물과 웅지가 뒤엉켜 핏빛 선연한 한 송이 꽃을 피웠으니, 그것이 곧 백제였다. 온조에게 그것은 형과 어머니를 죽이고 피운 악의 꽃이요, 조국을 등지고 망명한 백성의 설움과 한을 담은 눈물의 꽃이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언젠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듯이 백제인들 역시 자신의 고향인 저 대륙으로 돌아갈 꿈을 꾸며 힘을 키우고 세력을 확대하였고, 드디어 고이왕 대에 이르러 대륙백제를 건설함으로써 고향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그리고 근초고왕에 이르러 마침내 대국의 위업을 달성하고 고향을 땅을 다시 밟았다. 반드시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오리라던 소서노의 다짐은 그녀가 죽은 지 4백 년이 지나서야 이뤄졌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백제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고향 땅에 발을 디딘 것도 잠시, 백제의 땅은 그 뒤로 점점 줄어들어 성왕 대엔 대륙의 땅을 모두 잃고 한반도 남부의 서부일원으로 쪼그라들기에 이른다. 급기야 고구려와 당의 치열한 주도권 싸움에 휘말려 신라에 병합되는 불행한 최후로 국운의 막을 내렸다.
패자는 말이 없다 했던가. 백제 몰락 이후 신라는 줄기차게 백제의 역사를 축소해 한반도에 한정시켰고, 그것은 결국 역사 속에서 대륙백제의 존재를 완전히 폐기 처분함으로써 백제를 한반도 남부의 자그마한 국가로 전락시켰다.
『삼국사기』의 「백제본기」는 바로 그런 음모와 왜곡의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백제의 진짜 얼굴을 알 수 없게 되엇다. 그나마 중국의 『남제서』,『송서』,『수서』등에 백제의 진면목에 대한 기록들이 극히 일부라도 남아 있어 불행 중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위안을 삼는 정도이다.
중국 사서들을 살피면서 나는 정말 한숨을 쏟아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기록들이라도 남아 있지 않았다면, 백제는 영원히 한반도 남부의 별 볼 일 없는 소국으로 기록될 것이고, 우리는 백제의 진면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 역사와 문화와 영토를 논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국 사서들에 언뜻언뜻 비치는 백제 관련 기사들을 모두 동원한다하더라도 백제의 광활했던 영토 전체를 알아내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현재 남아 있는 사료만으론 백제인들이 어떤 경로로 대륙에 진출했으며, 어떻게 대륙백제를 확대해 나갔으며, 어떤 방식으로 대륙을 경영했으며, 어떻게 수백 년 동안 그 땅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대륙백제의 역사가 없는 백제사는 반토막의 백제사다. 따라서 지금까지 쓰여진 모든 백제사는 반토막의 백제사다. 이 책 역시 그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록 대륙백제의 형체라도 그려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긴 했지만, 사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백제의 진짜 모습은 이 책에서 그려진 백제보다 훨씬 크고 대단하다는 것이다.
백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거인이다. 우리는 아직 그 거인의 발크기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겨우 다리 한쪽을 발견하고 백제라는 거인을 모두 다 아는 것처럼 떠벌려댄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한 일이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백제를 거인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백제의 발에 묶인 한반도 사관이라는 족쇄를 풀어주는 일이다.
백제사를 쓴다는 것은 키를 알 수 없는 엄청난 거인의 무덤을 발굴하는 일과같다. 무덤을 발굴하면서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속단하고 있다. 무덤 속에 묻힌 인간은 우리보다 훨씬 작고 왜소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 짐작을 바탕으로 사그라진 거인의 관을 다시 짜고, 찾지도 못한 유골을 복원하려고 한다.
역사학은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작업이 아니며, 없는 것을 지어내는 작업도 아니다. 동시에 역사학은 있는 것을 감추는 작업이 아니며,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작업도 아니다. 어떤 틀을 만들어두고, 그 틀에 맞게 끼워 맞추는 작업도 아니다. 역사학은 있었던 것에 대해 정직하게 인정하는 작업이다.
지금 백제사에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남아 있는 기록에 대해 인정하는 학문적인 태도다. 그래야만 백제라는 거인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그 거인을 초대하기 위한 초대장을 만드는 심정으로 이 글을 썼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백제인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10월
박 영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