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ILER WARNING!!
이 글은 영화 감상의 재미를 방해할 수 있는 결정적인 영화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신 분만 읽으시길 절대적으로 권장합니다.
1.
지구의 운명이 걸린 대재앙, 이른바 '글로벌 킬러'를 다룬 영화는 특수효과와 특히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발달과 함께, 세기말 불안감의 영향으로 1990년대 이후 특히 붐을 이루며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는 '지구 내'의 문제가 아닌, ‘지구 밖’으로 부터의 위협으로 인해, 해결해내지 못하면 도망칠 장소가 없는 범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제의 근원인 즉 우주로 적극적으로 다가가야만 하는 [Deep Impact (1998)]나 [Armageddon (1998)]등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Sunshine (2007)]은, 지구의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의 수명이 다해가는 시점에서 이 태양을 다시 살리기 위해 지구로부터 엄청난 핵탄두를 실은 우주선을 우주로 보낸다는 기본설정만을 본다면, 앞의 두 영화와 비슷한 설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2.
하지만 [Sunshine]은 비록 닮은 설정과 몇몇 닮은 장면이 등장하긴 하지만, 닮은 건 그 뿐이며, 영화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느낌을 보여주고 있다. [Deep Impact]가 전 지구적인 운명을 앞둔 사람들의 시각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적인 성격이 강하고, [Armageddon]이 블록버스터의 적당한 즐거움을 가미한 새로운 형태의 SF액션을 보여주었다면, [Sunshine]은 훨씬 더 무겁고 차가운, 호러가 가미된 스릴러라고 볼 수 있을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SF 다큐멘터리처럼 신기하고 아름다운 우주의 전경과 함께 진지하게 진행되어가던 영화가, 몇몇 승무원이 이카루스 1호로 옮겨 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갑작스럽고 새삼스럽게 마치 "이건 대니보일의 영화란 말이야!"라고 외치는 듯이, 순간 프레임 삽입 등의 감각적인 편집과 앵글들이 예사롭지 않게 등장하면서 으스스한 호러 영화로 분위기를 바꾸어 놓더니, 역시나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예상치 못했던 악당을 (태양으로 인한 화상을 입은 피부를 가진 그냥 인간일 뿐인 그를) 마치 초자연적인 존재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로 포장하면서 공포감을 높여 놓기도 한다.
애초에 태양의 수명이 다해감으로 인한, 그리고 임무가 실패했을 경우에 닥칠 인류 전체의 위기에 대한 공포 같은 건 그다지 크게 묘사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우주선 내의 인물들 외에, 운명을 앞둔 지구 위에 머물러 있는 인류는 단 3명만이 잠깐 등장해서 인류 전체를 대표하고 있을 뿐일 정도다. 영화는 절대적으로 우주선과 승무원이 처한 위험에 대한 공포로 온통 집중되어 있을 뿐이며, 이런 면에서 오히려 [Deep Impact]나 [Armageddon]보다는, 우주공간에서 고립되고 밀폐된 우주선 안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투를 그린 SF호러 영화인 [Alien (1979)]시리즈나, [Event Horizon (1997)] 등의 영화들과 훨씬 더 닮아있다.
3.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심플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고, 결국 스릴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도 하지만, 잘 뜯어보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데 있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선택’의 문제가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의 인물간의 갈등이 이로 인한 것들이고, 선택의 결과가 스토리 전개의 바탕이 되고 있다.)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다수결의 민주주의가 통하지 않는 절대적인 문제인 것도 있고, 철학의 개념일 수도 있는 이 ‘선택’들은, 이는 영화 중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데, 이는 관객들에게도 생각해볼 만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었다.
-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목적을 수행하러 가던 와중에 예상하지 못했던 돌출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정대로 진행하여야 할까, 아니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그 주 목적의 성공확률을 좀 더 높여줄 지도 모르는(물론 아닐 수도 있는) 돌출상황을 위해 계획을 변경하여야 할까.
- A또는 B를 반드시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당한 한 사람이 내린 결정을 모두가 따라야만 했을 때,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
- 누군가가 죽어야만 나머지가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면, 과연 누가 죽고 누가 살아야만 하는 걸까.
- 특정한 한 사람의 생명과 인류 전체의 생명의 경중의 비교는 그리 간단한 것일까.
- 자연을 거스르면서까지 자연의 일부일 뿐인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정당한 것인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자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같은 '선택'의 화두는 여러 번 던져 주고 있지만, 영화상으로는 어떤 선택이 절대적으로 옳은 건지는 여전히 알 수는 없다. 사실 잘 뜯어보면 각 등장인물들의 성격들은 시종일관 잘 유지되고 있지만, 저런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는 명확하거나 일관적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듯한 느낌도 또한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세 명중 한 명만이 보호 장비를 착용할 수 있었을 때, 메이스는 주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캐파가 가장 중요한 인물이므로 그를 보호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이전에 위험한 우주선 수리를 위해 우주 밖으로 나가는 임무를 위한 누구를 내보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에서 캐파를 내몰았던 것도 다름아닌 바로 그였던 게 아니었던가.
아무튼 영화는 스토리를 가진 영화일 뿐이고, 화두는 말 그대로 화두일 뿐, 생각은 우리 관객들 각자가 해보아야 할 몫이겠지.
4.
사실 우주선은 태양의 위협으로부터의 준비는 잘 되어 있어 보였다. 승무원들의 오랜 우주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영화를 이끌어가는 일련의 위기들이 닥치기 시작한 건, 7년 전 같은 임무로 태양을 향해 보내졌다가 갑자기 실종되었던 이카루스 1호를 접촉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진로를 아주 조금 수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야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카루스 2호가 접근하도록 이끈 건, 그 이카루스 1호에 탑승하고 있던 인물, 즉 ‘인간’이었던 것이다. 요컨대, 영화상에서 등장하는 모든 위기는 태양의 위협보다도 결국은 (역시나!) 인간이 근원이었다는 얘기다.
인류 전체의 생존이 달린 막중한 대 임무를 방해한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똑같은 임무를 가지고 우주로 보내어졌던 인물이었다. 도대체 그는, 왜 목적지인 태양의 바로 문턱에 다다른 후에 갑자기 임무를 포기하고, 또다시 날아온 절박한 인류를 방해하기로 마음먹었던 걸까?
영화에는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그 견디기 힘든 강렬한 빛을 온몸으로 직접 쬐며 하염없이 태양을 바라보는 셔릴이나, 카네다 선장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과연 (특히 셔릴은 자외선 과다노출인 듯한 피부상태를 가지고서도) 태양을 그토록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들은 구릿빛 피부를 위해 우주 공간에서 천연 자외선에 열광하는 선탠 중독자인걸까?)
언젠가 뇌과학 관련 서적에서 보았던 멜라토닌이나 세로토닌 같은, 인체 내에서 빛과 관련되어 증감하는 호르몬과 뇌신경전달물질의 작용 수준을 뛰어넘는, 분명히 그 이상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과연 그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괴력을 가진 태양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가까이서 접하면서 그들을 압도해버린 그 느낌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자연과 우주에 대한 어마어마한 경외감. 상대적으로 우주 공간에서의 작은 먼지일 뿐인 인류의 미약함의 깨달음.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이카루스 2호의 임무를 방해한 핀베커는, 아마 자신도 7년전, 이카루스 1호를 이끌고 태양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셔릴이나 카네다 선장과 마찬가지로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앞에서 나열했었던 '선택'의 문제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의 것에 해당되는, 인류는 대우주의 자연 섭리에 순응하여야 함을 깨닫고 선택하였으리라. 그리고 자연을 조정해 자신들의 멸함을 거부하려 애쓰는 이 오만한 인간들을, 스스로가 신의 전도사가 되어 심판하려 하였던 것이리라.
5.
이 영화를 보면서 지구상의 ‘엔트로피’ 문제의 최후의 보루인 ‘태양’의 소멸이 소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Deep Impact]나 [Armageddon]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역시나 당혹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평소 Newton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잡지 등에 실린 사진들을 심심찮게 들춰보며 우주나 자연의 신비함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몇몇 장면에서의 아름다운 우주와 태양의 영상들은 (비록 CGI 일지라도) 탄성을 불러일으켜 줄지도.
- DeepFoc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