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이곳은 시인 정지용님이 노래한 그곳.
얼룩백이 황소가 음메하며 노닐고 실개천이 흐르는 그곳
금방이라도 버선발로 달려와 맞이해줄것같은 누이가 있을듯한 정겨운 시골마을 입니다.
아직도 마음은 청춘인데 제나이 벌써 오십을 뛰어넘어 빠른 속도로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른아침 동내앞 냇가로 돌미나리를 캐러간 아내는 돌아올줄을 모르네요.아마도 봄처녀가 되어 뛰다니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것도 가진것 하나없는 못난 제게 시집와 이십이년동안 모진고생 다하면서도 불편한마디 없이 감내해 나가는 아내를 보면 고맙움을 넘어서 숙연해 지기까지 합니다
총각시절 무모한 고집과 아집 그리고 배우지못한 무지로 인하여 청춘을 아깝게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양 제앞에 나타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즘말로 삘받았다고 해야하나요?
몇천볼트의 전기에라도 감전된듯 "그래 내가 찿던 바로 그여자야...놓치지 않는다...넌 이제부터 내꺼다"
그날부터 치밀한 계획과 그리고 협력자들의 도움을 얻어 마침내
내여자로 만들고 말았답니다.
가진거라고는 젊은 몸땡이 하나밖에 그야말로 빈털털이 백수건달에게 넘어간 아내역시도 무언가에 홀리긴 단단히 홀렸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신혼생활의 현실은 첫단추부터 잿빛하늘 이었습니다.
이리저리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던 저란놈이 할수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공사장 따라다니며 소위 뒷모도 라고하나요
뭐 암튼 막노동 밖에는 할일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일거리가 있는 날보다 없는 날들이 더많았고
혼자살때 편하던 습성이 남아서인지 힘든 일들을 견디지 못하여
늘 생활이 쪼달리곤 했습니다.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두사람에게 선물을 주시더군요.
저와 열곱살 나이차이가 나는 철부지 아내는 먹고싶은것도 많을터인데도 과일한쪽 제대로 사주지못할 형편에 말한마디 못하고 그 힘들다는 입덧을 견뎌주더군요.
어느날 이었든가요.
그때 저희는 등짐으로 연탄을 배달하는 일을 하며 수고료를 받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증금도 없는 월세 오만원짜리 지하단칸방에서 사랑하는 마음하나로 풍족해하며 고단하지만 젊음이 있기에 사랑으로 견디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날밤 하루종일 연탄 등짐을 지고 시커먼 연탄검정을 재대로 지우지도 못하고 쓰러져 자고있는 저를 아내가 깨우더군요.
" 저기 오빠...나 순대가 먹고싶어"하면서 말입니다.
임신 오개월이 다되가도록 사과한개 밤한톨 먹고싶다고 안하던 아내의 입에서 순대가 먹고싶다는 말이 나왔지만 그날 저는 너무나 고단한 나머지 못들은체 하고 외면을 해버렸습니다.
지금도 가끔 아내는 그때 너무나 순대가 먹고싶기도하고 제가 야속하기만해서 밤세잠을 못이루었노란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시절 너나 할것없이 풍족한 사람이 어디있었을까마는 너무나 가난한 두연인들에게는 출산준비조차 할수잇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어느날인가는 주인집 부엌에서 솔솔 풍겨나오는 진한 사골국물 냄새에 저도모르게 다음날 아침 주인몰레 부엌에 들어가 표시안나게 한그릇 퍼왔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저는 처음으로 도둑이제발저린다.라는 말이 실감이 나더군요.
그렇게 달랑 기저귀 두필 끊어놓고 맞이한 산통.
아내는 낮선타향 언덕베기 지하셋방에서 신음을 찿아가며 산고를 겪고 있었지만 제가 해줄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두손만 꼭잡고 있는일 뿐이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연탄가게 주인아저씨의 시커먼 연탄배달 트럭을 타고 달려간 곳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조산원" 이라는 간판이 붙은 곳이었습니다.
부슬부슬 겨울비는 내리는데 친정부모님도 시댁어른도 없이 시커먼 두남자의 손에 이끌려 들어오는 산모를 따뜻하게 맞아주신분은 삼십년이 넘도록 아이를 받으셨다는 오십대 중반의 후덕한 인상의 원장님 이셨습니다.
두 가난하고 힘든 부부의 삶을 다알고 이해하겠다는 듯이 자상하고 편안한 미소로 차분하게 산고를 받아주던 그분을 지금도 저는 잊지 못합니다.
두렵고 아픈 모진 산고를 이겨내며 눈에 눈물을 글썽이던 아내는 겨울비내리는 쓸쓸한 조산원에서 첫아이를 낳았습니다.
시커먼 눈물을 뚝뚝 떨구며 고생했다...한마디 하는 저를 바라보며 배꽃같이 환하게 웃던 아내의 얼굴또한 세월이 흘러도 잊지못할 것입니다.
"오빠야...애기가 뱃속에서 못먹어서 그런가..쪼그만하네...그리고 우째 이리 쭈굴쭈굴하냐..그치 ? 그래두 눈은 오빠를 닮아서 아주 크고 똘망똘망하데이...안그래?이그 이건 또 뭐꼬 뱃속에 있을때 먹고싶은거 몬먹으면 눈짝짝이 난다하드니 한쪽만 쌀꺼풀이 있네..신기하다"
연신 신기한듯 바라보며 웃으며 애써 혼자있는 설움을 달려려하던 아내...
그때 조산원 원장님이 노란 양은 냄비에 고기한점 없이 들기름에 달달볶아서 끓여온 미역국을 국물한방울도 없이 말끔히 비우던 아내의 모습또한 아직까지도 아프게 남아있는 기억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가난한 부부의 결혼생활을 이십이년이 흐른 지금웃으며 말할수 있는것은 힘든 역경을 묵묵히 견뎌내준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석달후 강보에쌓인 어린아들녀석 안고 처갓집에 인사 드리러 가던날
금쪽같은 큰딸 무작정 보쌈하듯 데리고 사라진 도둑만도 못한 사위를 원망한마디 않고 말없이 받아주시던 장인 장모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연로하셔서 기력이 쇠잔해지신 두분이 당신들 연세는 생각지도 않으시고 큰딸과 큰사위 늙어간다고 걱정을 하십니다.
이십년의 세월은 복사꽃같이 밝으스레하면서 환했던 아내의 얼굴에 세월의 훈장을 남기었고 오동통 내너구리 이쁜 공주 아내는 이제 촌아주매가 되어 들로 산으로 누비는 억척 스런 중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자기가 이세상에서 잴루 예쁜여자인줄 아는 어마어마한 착각속에서 살고있는 철없는 아내.
그런아내와 토끼같은 두아이 건강하게 잘자라 주었으니
나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촌놈 입니다.
이상으로 촌놈 이야기를 마치고 퇴청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