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25일 (수) 08:31 스포츠서울
사생팬의 '어긋난 사랑' vs 소속사의 '잘못된 대응'

[스포츠서울닷컴 | 구수진기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극성팬. 이들은 자신들을 '사생팬'이라 지칭한다. 팬들의 말에 따르면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쫓아다니는 팬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추운 겨울 밤새 스타 집 앞에서 기다리며, 택시를 타고 도로 질주도 불사한다. 한마디로 생과 사를 오가는 그야말로 '사생(死生)'팬 이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사생팬'들의 행동이 그렇다. 물론 팬들이 없으면 스타도 없다. 스타들은 팬들에 존재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사생팬은 예외다. 스타들조차도 '사생팬'을 부담스러워한다. 또한 소속사와 매니저들은 이들을 골칫거리로 여기며 거칠게 제압하려고 한다. 때문에 '사생팬'으로 시작된 그릇된 팬문화의 병폐는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다.
최근 잇달아 일어난 2건의 사건만 봐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지난 15일 '사생팬'들이 슈퍼주니어 숙소 앞에서 심각한 소음을 일으켜 주민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부터 불과 5일 후인 지난 20일 엠넷(Mnet) '스쿨 오브 락'에 고용된 경호원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물의를 빚었다. 팬들과 주민, 매니저 사이에 오고가는 폭력. 어쩌다 이렇게 스타와 팬의 관계가 멍들게 된 것일까. 폭력이라는 줄기 아래 극단적으로 꼬여있는 '사생팬'과 소속사의 현 실태를 스포츠서울닷컴에서 살펴봤다.

◆ '사생팬'의 '어긋난 사랑'
"매니저들한테 많이 맞기도 하는데 뭐 어쩔 수 없죠. 그래서 매니저 보이면 일단 숨어요" (16세 김하늘)
지난 15일 오후 슈퍼주니어가 합숙하고 있는 강남구 청담동의 한 빌라 주민이 결국 소음을 참지 못해 팬들을 폭행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오전부터 몰려와 아무리 가라고 해도 가지않고, 계속 소음을 내는 아이들 때문에 괴로웠다"며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놨다.폭력에는 이유가 없다. 변명 또한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생팬'들 역시 숙소 주민들에게 5가지 폭행을 휘두르고 있었다. 바로 '소음, 사생활 침해, 방화, 쓰레기 투기'이다.
'사생팬'들에게 시간은 상관 없었다. 조퇴와 결석도 밥 먹듯이하며 숙소 앞에 진을 치고 있는 팬들도 있다. 심지어 한 초등학생 팬은 수업 일수 부족으로 중학교 진학에 실패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은 숙소앞에서 조용히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타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이들은 소리 지르며 몰려든다. 매일 매일 가해지는 '소음폭력'. 어떤 폭력보다 참아내기 힘들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방화'와 '쓰레기 투기'다. 사생팬들은 귀가하는 스타들을 보기 위해 밤을 새고 기다린다. 이들 중 대다수는 첫차를 타고 학교에 등교한다. '사생팬'들에게는 날씨따윈 상관없다. 추울때는 불까지 피우며 밤을 샌다. 슈퍼주니어 숙소 앞에 위치한 까페 매니저 이종화씨는 사생팬으로 인한 피해가 심하다고 전했다. 그는 "아이들이 밤에 1층 주차장에서 불을 피워서 천장이 뚫린 적이 있다"며 "이들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 낙서도 엄청난 피해인데 불까지 피우다니 너무 이기적인 행동인것 같다"고 말했다.

◆ 소속사의 '잘못된 대응'
"주민 항의가 빗발치는데 말로 타일러도 안듣고…" (아이돌 그룹 매니저)
'사생팬'들의 극성 사랑 때문에 여러 문제점들이 생긴 만큼 소속사도 발빠른 대처를 하고 있다. 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폭력'이다. 어린학생들의 극성 사랑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치고는 한참 잘못됐다. 이로 인한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20일 케이블TV 음악채널 엠넷 '스쿨 오브 락'에서 연예인 보호를 위해 고용된 경호원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이외에도 경호원과 매니저들은 스타를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팬들에게 자주 폭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설 경호원은 전문가 집단이다. 이에 반해 이들이 어린아이들에게 행하는 방법은 전혀 전문가 답지 못했다. 사설 경호원은 때때로 거친 폭력을 휘두르며 사생팬을 진압하고 있다. 매니저들의 팬 폭행 역시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서울 한 중학교에 재학중인 임정아(16, 가명)은 매니저에게 폭행당해 얼굴이 부어올랐다고 밝혔다. 그는 "숙소 앞에서 오빠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매니저가 오더니 얼굴을 때렸다"며 "발로 걷어 차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아이돌그룹 매니저는 "일부 맞는 부분도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며 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사생팬'들이 새벽 2시에도 심각한 소음을 내 주민들의 항의가 거세다"며 "이런 상황을 포함한 어쩔 수 없는 경우에 때릴때도 있지만 그건 아주 가끔이다. 보통 말로 타이르고, 때려도 살짝 쥐어박는 정도다"고 밝혔다.
◆ 날카로운 대립각, 해결의 실마리는 없나
'사생팬'들의 잘못된 사랑으로 야기된 문제들은 이미 극에 이르렀다. 어디서 부터 잘못됐는지 찾기 힘들 정도다. 이에 대해 과거 '사생팬'이었던 정아람(23, 가명)씨는 "사생팬 활동 때문에 나의 학창시절의 추억은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린시절 나의 맹목적인 스타 사랑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 했다"며 "3년 남짓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후유증은 너무나 길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사생팬'들 중에는 나이 어린 학생들이 많다"며 "학교와 가정에서 이들의 잘못된 사랑을 바로 잡아줘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소속사 또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속사는 팬들의 잘못된 사랑을 폭력으로 다스려서는 안된다. 그런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사생팬'을 무조건 혼내는 대신 소속사 스스로도 반성해야 한다. '사생팬'들이 생겨난 원인에 신비주의와 돈벌이에만 급급한 소속사 측의 잘못된 홍보 전략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팬들만을 위한 이벤트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소속사들은 팬들과 스타와의 만남의 기회를 좀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
온갖 폭력으로 물들어버린 팬문화. 이대로 간다면 대한민국 연예계는 팬도 없고 스타도 없다. 올바른 팬문화가 정착되야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순항할 수 있다. 서로에게 더이상 책임을 미뤄선 안된다. 조금 더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팬들은 잘못된 사랑을 바로 잡고, 소속사는 틀린 대응 방법을 고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