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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수업-당신이 잃어갈 것들에 대해

이대희 |2007.04.28 10:32
조회 35 |추천 1
 안녕하세요? 맛있는 토스트 BOOK 입니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마라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마라. 눈물이 전부 빠져나오게 두라. 그러면 스스로 멈출 것이다. 마지막 눈물 한 방울까지 흘리고 나면 기분이 홀가분할 것이다.

충분히 슬퍼했다면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대부분 자기 자신을 충분히 슬퍼하도록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슬픔은 항상 일어나며 또 언제나 치유된다.


올바르게 살면 고통 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 아래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할 권리를 결국엔 놓아줘야 한다.

 

고통과 슬픔이 갑자기 찾아왔을 때, 단지 슬픔 곁에 앉으라. 슬프면 자신이 그 슬픔을 느끼게 하라. 분노와 실망에게도 이같이 하라. 하루 종일 울어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  


 

1. 신은 감당할 만큼만 고통을 준다

 

'자신이 쓴 글에 심취되어 밤을 지새울 수 없다면 그 글은 결코 다른 누군가의 밤을 지새우게 할 수 없다.' 이 책을 탄생시키는 내내, 이 글이 진정 우리를 울게 하지 못한다면 또한 우리의 슬픔을 치유하는 데 실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이 책은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을 것이다.

 

슬픔의 첫 단계는 우리가 상실에서 도저히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만든다. 인생이 무의미해지고 감당할 수 없게 느껴질 뿐더러 삶이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점점 정신이 무감각해지고 감당할 수 없게 느껴질 뿐더러 삶이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점점 정신이 무감각해져 간다. 어떻게 살아갈지, 살아간다 해도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스럽다가 그저 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2. 슬픔에게 자리를 내어주라

 

분노가 솟구치면 소리 내어 분노하라. 판단하지 말고, 의미조차 찾으려 하지 않고, 오직 분노 그대로를 느끼라. 어차피 삶은 불공평하다. 죽음 역시도 불공평하다. 그러니 이토록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상실 앞에서,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신이시여, 부디 저를 잠들게 하시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 상황이 모두 꿈이었음을 알게 하소서. 그녀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3. 눈물의 샘이 마를 때까지 울라

 

하지만 이것을 알라. 정작 피해야만 하는 일은, 쏟아내어야 할 눈물이 충분히 빠져나오기 전에 울음을 억지로 멈춰버리는 것이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라. 눈물이 전부 빠져나오게 두라. 그러면 스스로 멈출 것이다.

 

삶은 계속되지만 정작 왜 그렇게 흘러가야만 하는지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다. 사랑한 이가 더 이상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낯선 삶이 펼쳐진다. 누구의 말도 당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없다. 당신의 마음을 녹여줄 단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갈지 또는 스스로가 삶을 원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단지 숨만 쉬며 살아가는 것이다.

 

4. 떠나간 이가 해왔던 것, 그것을 하라

 

사랑하는 이가 떠나고, 당신 '남겨졌다' 는 것에 대해 의미를 잃었는가? 당신이 왜 굳이 남겨졌는지 이유를 알고 싶은가? 신과 우주만이 그 정답을 얘기해주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만은 있다. 당신들은 모두 '살기 위해' 남겨졌다는 사실이다.

 

오직 하나의 상실을 두고 슬퍼할 수 없다. 사랑한 이를 잃었지만 그 슬픔은 과거와 현재에 일어났던 모든 상실들을 생각나게 한다. 과거의 상실들은 전에 일어났던 누군가의 죽음이다. 현재 당면한 상실들은 가장 최근의 상실이 남기고 간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삶속에서 순응해야 할 모든 변화들을 말한다.

 

5. 사랑을 위해 사랑할 권리를 내려놓으라

 

착하고 바르게 살면 그 대가로 고통 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사랑을 알아간다는 것은 사랑할 권리를 조용히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러니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상실의 최고 미덕은 '고난은 성장을 위한 기회' 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한 첫 반응은 어럴 것이다. "신은 내가 수업을 통해 성장하도록 해야지 사랑한 이의 상실을 통해서가 아니지." 하지만 세월이 지나 삶을 되돌아볼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성장을 깨닫거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그녀가 죽음 직전에 완성시킨 마지막 저서

 

상실수업

 On grief and grieving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김소향 옮김 /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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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에 출간되어 출판계의 화제로 떠오르며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은 아직까지 수많은 독자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 필독서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04년에 작고한 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이다. 그녀는, 제자인 데이비드 케슬러와 함께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만나왔고, 그네들로부터 듣게 된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 을 정리하여 이라는 책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2007년 3월, 의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을 다시금 선보이게 되었다. 이 죽음을 맞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메시지라면, 은 남겨질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이 죽음 앞에서 삶의 열정을 제시하는 책이라면, 은 죽음 뒤에 더더욱 타오르게 될 삶의 열정을 불러일으켜 주는 책이다.


중풍으로 9년간 마비된 몸으로 힘겹게 살아온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가빠지는 숨과 점점 꺼져가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며, 수십 년간 손수 연구해왔던 죽음과 남겨짐에 대한 정신적, 실천적 가르침을 가까스로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책의 공저자인 케슬러는 병상침대에 누운 스승 엘리자베스 옆에 앉아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았을 뿐더러, 원고의 내용과 너무나 흡사하게 삶의 마지막을 품에 안아가는 그녀를 지켜봐야만 했다.


감당 못할 만큼 신은 가혹하지 않다는 것, 절망 속에서 속히 빠져나오려고 너무 애쓰지 말라는 것,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됐을 때 느껴지는 분노와 통곡, 혹은 원망과 자존심, 그밖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감정을 '제발 부인하지 말고 100퍼센트 드러내놓아라' 고 저자는 부탁한다. 이는 삶의 마감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 결국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상실은 '모두 끝났다' 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는 삶' 의 증거에 다름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죽음' 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두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기를 꺼리게 되는, 즉 금기시되거나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삶이 있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 삶이 더 소중해지는 것처럼,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더 이상 금기시하거나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 앞서 설명했듯 이 책의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은 삶과의 작별을 눈앞에 둔 이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배우는 가르침과 지혜가 실려 있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아니 이 땅의 생명체로서 자신과 관계했던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남겨진 자들에게도, 어쩌면 떠나는 이만큼의 정신적 충격과 절망을 피할 수 없다. 이 책에서는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허무를 통틀어 '상실(loss)' 로 일컫고 있다. 상실을 처음 예감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마침내 상실해버리고 말았을 때, 그리고 상실 이후 기약 없는 치유의 시간까지…… 저자는 수십 년간 호스피스 및 죽음을 연구해온 이력과 경험자로서 현실적인 도움 및 정신적인 위로를 전해주고 있다.


특히나 죽음이 단순히 충격과 고통과 눈물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님을 다각도로 설명해가고 있는 점이 탁월하다. 가령 죽음을 알게 되었을 때 겪게 되는 분노와 타협, 수용 등의 단계적인 심리상태를 짚어주고, 상실 이후 사랑했던 이와의 기념일을 맞았을 때의 난감함, 유품을 보관하는 데서 생기는 갈등 등 미처 생각지 못한 이별의 사소한(그러나 절대 사소롭지만은 않은) 주변부까지를 건드려준다는 점이 그러하다. 그리고 상실의 원인 또한 질병뿐만 아니라, 사고, 자살, 피살, 자연재해 피해, 전사 등등 극히 현실적인 예화를 들어가며 그 치유의 경로를 살펴준다.


망연자실한 상실 앞에 우리는 한없이 자신을 탓하게 된다. 집에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었더라면? 아이들이 그 심부름을 하러 밖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가 건강검진을 평소에 잘 받았더라면? 그녀가 정신적으로 외롭지 않도록 평소에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이 모든 후회와 괴로움들은 우리가 내린 결정에 의해 결과적으로 발생한 것이므로, 이제는 너무나 늦어버린 시간임에도 우리는 쓸데없이 자꾸만 '만일'을 연발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회할 만큼 후회하고, 미워할 만큼 자신을 미워하다가, 쓰러질 만큼 최대한 우는 것이 최선이라고 저자는 몇 차례 강조한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 것, 눈물이 전부 빠져나오게 둘 것, 그리고 슬픔의 가장 밑바닥에까지 발을 디뎌볼 것.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것이, 이 모든 상실이 '끝남' 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는 삶' 의 명백한 증거로 다가올 것이다.

 

6. 몸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라

 

이제 됐다. 그만 하면 됐다. 이제 당신에겐 오로지 당신 자신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돌아가서 자신과 접촉하고, 스스로 어떤 감정 상태에 빠져 있는지 눈여겨볼 일이다. 몸의 속도를 늦추고, 오직 몸이 해달라는 대로 다 들어주라.

 

상실을 겪은 후에야 삶에서 얼마나 많은 기념일들이 있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사랑한 이가 한때 가져다주었던 행복이 무엇이든, 지금은 깊은 상실만이 남아 있다. 사랑하는 이가 이 세상을 떠난 날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부여된다. 한 달이 되는 날, 반 년이 흐른 날, 일 년이 지난 날…….

 

7. 슬픔에 '종결' 은 없다는 것을 알라

 

수시로 그와 관련된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그간 네가 힘들여 꼭꼭 눌러두었던 슬픔은 여지없이 또 분출될 거야. 그러나 기억해. 어떤 경험을 하든지 그 안에는 늘상 슬픔이 웅크린 채 숨어 있지. 애석하게도, 죽음에는 쉬어가는 기념일이 단 하루도 생길 수 없거든.

 

사랑한 이가 떠나버린 후에라도 그에게 편지를 쓰라. 당신이 어떻게 지내고 그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말하라. 자주 찾아가는 것이 불가능할 때는 편지가 멀리 떨어진 무덤까지 대리 여행을 할수도 있다. 만일 무덤 앞에 있었다면 했을 말들을 편지로 옮기라. 다음에 사랑한 이의 무덤을 찾았을 때 지금껏 쓴 편지를 다 모아 그에게 읽어주면 그 편지들이 결국엔 당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8. 상실의 밑바닥까지 발을 디뎌보라

 

슬픔은 밖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고통과 슬픔은 오직 표현할 때만이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떠나간 이에게 편지를 쓰라. 당신이 얼마나 한심하게 지내고 있으며, 얼마나 독하게 잘 참아내고 있는지를, 그리고 단 하루도 당신을 잊은 적 없다는 고백을 쏟아보라.

 

9. 신의 이해를 구하지 마라

 

집에 조금만 더 일찍 도착했었더라면? 아이들이 그 심부름을 하러 밖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가 건강검진을 평소에 잘 받았더라면? … 그러나 다시 한 번 묻자. '푸른 잎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을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10. '상실' 은 가장 큰 인생 수업

 

당신이 살아가면서 무언가 잃어갈 것들에 대해 정녕 두려운가? 하지만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 결국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상실이란 '모두 끝났다' 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의 증거가 된다.

 

슬픔의 힘은 희한하게도 슬픔을 치료하는 자체 효력을 갖고 있다. 어쩌면 아직도 슬픔의 초기에 있을 수 있고, 어쩌면 상실을 미리 예감하는 감정에서 다시 시작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그것은 들쑥날쑥한 감정의 주기를 끝마친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걸 말끔히 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실의 고통이 다시는 찾아 오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다. 탄생과 죽음의 주기를 완전히 따르므로 삶을 충만하게 경험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상실을 견뎌내고 살아남았다. 슬픔과 애도의 힘이 우리를 치유하고, 잃었던 그 사람과 함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그것이 바로 슬픔의 은총이며, 슬픔의 기적이다.

그것이 곧 슬픔의 선물이다.

 

이 세상이 하나의 학교라면, 상실과 이별은 그 학교의 주요 과목이다. 상실은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어려운 배움 중 하나이다. 아무리 상실을 겪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그것은 결국 찾아온다. 살아가면서 겪는 상실에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그중 가장 고통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상실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을 잃는 것이다. 평생 곁에 있을 것 같은 부모님, 이미 하나의 인격체가 된 배우자, 자신의 전부를 줘도 아깝지 않은 자식, 자신의 반려자가 될 애인, 그리고 든든한 자신의 후원자인 친구, 선생님....  그 사람이 내 곁에 사라져버린다는 것, 그 이름을 다시는 부를 수 없다는 것, 이젠 그 사람이 내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너무나 두렵고 슬프게 만든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Elizabeth Kubler-Ross


"난 내가 겪은 이 고통을 이해하는 척하지 않습니다. 대신 신에게 분노할 겁니다. 9년 동안 나를 한 의자에 앉혀 꼼짝없이 갇혀 있게 한 신에게 화가 납니다. ……그러나 신에게도 뜻이 있겠지요. 신은 내게 딱 맞는 시점을 이미 계획하셨고, 그때가 되면 나는 '네' 라고 대답하며 따를 겁니다. 그리고 나비가 누에를 벗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나도 내 육체를 두고 떠날 것입니다."

 

"죽음은 단지 이 생애를 마감하고 고통과 번뇌가 사라진 곳으로 옮겨가는 일일 뿐이에요. 이 사실은 상실과 슬픔에 잠긴 나에게, 내가 소중히 여긴 모든 사람들이 괜찮을 거라는 걸 가르쳐주고 날 안심하게 만들어주지요. 나는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리고 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이곳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 돌봐줄 거예요. 그래서 그들과 함께 웃고 미소 지을 거예요. 만일 그들이 사후의 삶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난 그들에게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말할 거예요. '하하, 우린 이곳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괜찮아' 라고요.

진실로 영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난 내가 한 때 살았던 삶과 헤어진 사람을 몹시 그리워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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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는 토스트 BOOK 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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