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정황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달 14일,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민주노동당, 언론노조, 영화인대책위와 함께 제작한 한미FTA반대 라디오 광고를 심의 받는다. 디포트피쳐스 광고대행사를 통한 심의 요청이었다. 그러나 일주일쯤 뒤인 20일 나온 심의 결과는 ‘조건부 방송가’.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는 인터넷 공모를 통해 추진한 이 광고를 두고 내용수정 뒤 재심의를 받으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범국본은 이와 관련 “사실상 방송 불가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재심의를 받으라’는 것은 ‘방송 불가’ 입장과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이번 라디오 방송의 ‘조건부 방송가’ 결정 전에도 한미FTA반대 TV광고인 ‘고향에서 온 편지’(농축수산 비상대책위와 영화인대책위를 중심으로 제작)에 대한 ‘조건부 방송가’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입막음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범국본은 지난달 25일 이와 관련한 성명까지 발표하고 “TV광고에 이어 다시 한 번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결정”이라며 강력 규탄한 바 있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조건부 방송가’ 결정을 내리면서 지적한 부분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소비자가 오인할 수 있는 표현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관계를 입증하라는 것이다.
먼저 청취자의 오인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한 표현은 4가지로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우리의 아이들이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게 될지도 모릅니다’ ▲‘불평등한 한미FTA협상’ ▲‘일자리도 양극화의 해소도 희망도 잃어버린 멕시코 NAFTA의 절망’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가족의 건강을 볼모로 한 한미FTA’ 등이다.
또한 입증 책임을 물은 표현은 3가지로 ▲‘미국은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으면 한미FTA를 체결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미국의 자료에 의하면,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한국에서 1차적으로 54만명의 실업이 발생한다 합니다’ ▲‘얻는 것은 없고 손해만 나는 한미FTA협상’ 등이다.
여기에 광고주를 표기하지 않았다는 것도 ‘조건부 방송가’ 결정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거론하고 있는 사항들은 “이미 수차례 많은 언론과 방송에서 보도 된 바 있는 내용들이며,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우려하는 내용들”이라는 게 범국본의 설명이다.
범국본 채희병 선전홍보팀장은 “미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 우려 뼛조각이 발견되고 맹독성 발암물질 다이옥신까지 검출된 사실은 무엇이고, 무역구제 등 한국측 기대분야가 번번히 거부되는데 반해 미국측 요구는 일방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현실은 무엇이냐”며 “한미FTA 체결로 인해 우리는 169개의 법률을 고쳐야 함에도 미국은 법률 하나 안 고치는 것만 봐도 졸속협상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채 팀장은 “정부 광고야말로 근거가 없으며, 국민들이 오인할 소지가 큰 과장·허위 광고”라고 덧붙였다.
수십억으로 포장한 정부 광고는 진정 광고인가
이같은 논란을 키우는 건 정부다. 지난해 정부는 한미FTA 홍보에 70억원의 예산을 쓴 데 이어 올해에도 홍보비조로 66억여원을 본예산에 편성해 놓았던 것. 재정경제부가 국회 재경위 소속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에 지난해 11월 제출한 예산안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한미FTA 체결지원위원회의 내년 예산으로 95억9,800만원을 배정했다. 이 중 한미FTA 홍보예산이 65억7,559만원이다.
편성항목도 다종다양하다. TV광고에 16억7,400만원, 라디오광고에 9,900만원, 신문광고 12억5,300만원, 인터넷광고 9,900만원 등 ‘광고기획 및 매체 광고비’ 항목에 40억1,600만원의 집행계획을 세워놓았으며, 홍보물 제작 및 배포에 16억4,400만원, 홍보기획비로 3억1,000만원, 인터넷홍보 2억3,000만원, 로고 홍보물 제작 1억2,000만원, 국회 대외활동지원 1억6,548만원, 국회 홍보활동 9,011만원도 확정했다.
국가 예산낭비를 감시하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한미FTA 관련 홍보사업을 ‘2007년도 예산안 중 낭비우려 사업 선정결과’로 꼽기도 했다. 게다가 국정홍보처가 언론보도의 내용을 문제 삼는 태도는 독재정권시절 보도지침(통제) 악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범국본은 "이번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심의 결정은 지금까지 진행된 한미FTA협상이 밀실에서 굴욕적이며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국민들의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기도이며, 미국의 시간에 맞춰 나라 경제와 주권을 송두리째 미국에게 내주며 국민들에게 장미빛 환상만 심어주는 정부의 위험한 홍보만 옹호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정부 광고에 대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고려하는 등 맞불을 지필 계획이다.
아래는 지난달 28일 재심의를 받기 위해 녹음, 어제(6일) 방송가 판정을 받은 음성 파일과 시안 2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