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 고생해라, 그러면 30년이 편해진다.’이 명언(?)은 자식의 명문대 입학에 목숨 건 어느 학부모가 고1이 된 아들에게 남긴 말이다. ‘아름다운 사람’보다 ‘성공한 사람’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공부보다 인성교육에 힘쓰자고 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제안일까.
한 초등학교 입학식 날 담임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설문지를 돌렸다. ‘당신의 자녀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거의 모든 학부모들은 의사, 법관, 교수, 예술가 등을 적었는데 한 엄마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감동한 담임교사는 이 엄마를 학급자문위원으로 위촉하고 아동지도 상담교사로 모셨다.
부모들이 자녀의 성공과 출세를 꿈꾸며 뒷바라지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성교육은 뒷전인 채 영어, 수학에만 열을 올리는 한국 엄마들에게 의 작가 김유미 씨는 한 인터뷰에서 일침을 가했다.
“요즘 엄마들, 영어만 일찍 가르치면 뭐합니까. 아이들의 문화적 소양과 매너는 빵점인데요. 그런 아이들은 서울대, 아니 하버드대학 졸업장을 들고 가도 글로벌 기업에서 선택하지 않습니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성적을 올리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아이를 이곳저곳 학원으로 실어 나르며 전쟁터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게 요즘 엄마들의 일과. 게다가 수험생이 있는 집안은 초비상사태다. 수험생은 마땅히 ‘상전’이며 모든 가족 행사에서 ‘면책 특권’의 대상이다. 손님 초대도 금물이고, TV도 숨죽이며 보아야한다. 아이가 명문대에만 들어가 준다면 조금 예의가 없더라도, 버릇없고 이기적이더라도 모두 용서가 되는 시대. 우리 부모들은 과연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씨는 “글로벌 기업들은 서류 전형 통과자들을 호텔에 일주일간 데려다 놓고 그 사람의 생활과 총체적 문화 수준을 지켜본다”며 엄마가 아이를 ‘시험의 귀재’보다 ‘품위 있는 아이’로 키워야함을 강조한다.
<STYLE type=text/css> 인성교육으로 마음의 키 늘리기 이런 문제의식 탓인지 최근 인성 계발 훈련 교육에 눈을 돌리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학원 등 지식 위주 교육을 중요시하는 ‘극성스러움’에서 한발 물러나 리더십이나 진로, 인생 목표, 시간 관리 등을 교육하는 인성 교육 센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참가하던 리더십 스쿨의 대상자가 초등학생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하는 증거.
초등학교에 다니는 재원이와 재훈이는 부모는 물론 친척, 이웃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존댓말을 사용해 주변의 칭찬을 듣는다. 두 아이의 엄마 윤주환 씨(42·서울 송파구 문정1동)가 다섯 살 때부터 존댓말과 인사 예절을 가르친 덕분이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잖아요. 공손한 말씨를 쓰며 과격한 행동을 하진 않거든요. 부모와 자식이 서로 존대어를 사용하면 친밀감이 줄어든다고도 하는데 오히려 서로를 존중해 주며 더 귀하게 대합니다.”
윤씨는 주위의 엄마들이 공부 이외에는 모든 것을 부차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에 휩쓸리기 싫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을 인성 스쿨 캠프에 보낸다. 자신감을 키우는 훈련을 비롯해 별자리, 연극놀이, 해양단 수련, 스키, 영어 캠프 등에 보내는데 다녀올 때마다 아이들 마음의 키가 한 뼘쯤 자라는 것 같다고 전한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풀고, 경쟁 대상으로서의 친구가 아니라 우정을 쌓아 와요. 집에 와서는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대화도 풍성해져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 책임감 등은 시간이 갈수록 값진 가치라고 생각해요.” <STYLE type=text/css> 학교, 가정, 전문교육기관을 통한 인성의 발견
인성교육과 리더십 교육을 실시하는 곳으로는 인성스쿨, 청학동예절학교, 계룡중앙학당, 공병호 경영연구소, 인성스쿨윌리엄연구소, 카네기연구소, 한국리더십센터 등이 있다. 리더십 교육은 나와 다른 능력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키워주고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인성스쿨에서는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자신감 캠프와 잘못된 습관으로 자기 관리를 못하는 학생에게 좋은습관 캠프가 추천할 만하다. 그 외에 체험학습, 효 교육, 가치관교육, 대인 관계 등 다양한 인성교육을 실시한다.계룡중앙학당 서영주 훈장은“ 청소년들이 학교와 학원에서 시달리다보니 체험이 부족해 추억이 메말라 있다”며 “전통문화체험을 통해 옛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하고 한문교육으로 효와 공경을 배우고 텃밭을 일구며 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육에 힘쓰고 있다”고 말한다. 공병호 경영 연구소는 시간 관리, 자기 경영 등을 바탕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과 계획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도록 이끌어준다. 공병호 씨는 “요즘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의 삶을 살지 못하고 부모의 의지대로 끌려가는 세태를 경계한해야 한다”면서 “아마 연애나 결혼까지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할 것”이라며 개탄한다. 그가 강조하는 ‘자기 경영’이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자기 경영은 한마디로 선택과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과 운명에 대해 책임져야하고 그 책임이 절박할 때 노력하게 되거든요. 삶에 대한 열의, 야성을 갖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것은 천금의 유산보다 가치 있는 것이죠.”
이런 프로그램은 방학이나 주말에 운영하는데 짧게는 하루 8시간 등 집중 교육부터 3일 프로그램 등 다양하다. 부모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김양중 교사(대진디자인고등학교 도덕과)는 아침마다 10분간 주제별 명상 시간을 갖고, 세 가지 마음 갖기(안녕하십니까,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인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라는 책을 만들어 좌우명과 가훈, 자신의 행동 관찰과 흥미, 적성, 진로 등을 탐색하면서 자신의 인성 점수를 수시로 진단하는 인성교육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대전 신계중학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교장, 교감, 교직원이 학생들과 함께 배식, 식사를 하며 사제 간에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밥상머리’ 인성교육을 하고 있다.
미래는 다양한 전문성과 재능,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인생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십대의 시절’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기와 공부 기계로 기억하게 할 것인지, 다양한 체험을 통해 꿈을 키우고 도전하며 노력하는 아름다운 시절로 만들 것인지 또한 부모의 선택 중 하나다.
<STYLE type=text/css> 내 아이를 키운 건 8할이 ‘자율성’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배은실(45)·조영수(50·전주 예원예술대 문화영상창업대학원 교수) 부부는 지난 추석에 아이들이 제출한 ‘추석 연휴, 2박3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주제의 보고서(?)를 보고 감동받고 말았다. 큰 딸 민지(고 3)와 아들 준상(고2)이가 합작해 만든 연휴계획서에는 자신들이 가고 싶은 여행지와 그에 대한 각종 정보, 비용, 즐길 수 있는 놀이까지 완벽하게 담겨 있었다. 참고문헌까지 밝히며 A4용지 10장에 달하는 계획서 덕분에 이 가족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자녀들 스스로 원하고, 계획하고 준비한 여행을 즐기며 다시 한 번 가족애를 다지게 됐다.“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참고서 대신 백과사전을 사주었어요. 모르거나 궁금한 것은 늘 사전으로 해결했고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찾아하는 습관을 들였지요. 그래서 아직까지 공부만을 위한 학원을 다닌 적은 없어요. 운동이나 악기 등 본인들이 원하는 학원에 다니지만요.”
배씨네의 인성교육의 모토는 ‘무엇이든 스스로 해보는 것’이다. 야구장이나 축구경기장을 찾기 보다는 휴일이면 동네 학교에 가서 넷이서 공을 차며 논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1시간씩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 물론 방과 후에도 집이나 독서실에서 스스로 공부한다. 영어 공부를 하라고 채근하기보다는 함께 외국 비디오를 보다가 아이가 알아들을 때마다 용돈을 주었다. 시험을 잘 보기위해 영어를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아이들은 더 즐거워한다. 용돈 관리도 스스로 한다. 그러나 대가성 용돈은 아니다. 가령 아이가 아빠 구두를 닦았을 때 그 노동력의 대가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구두를 닦아줘서 아빠가 기분이 좋기 때문에 용돈을 주는 것’이다.
또한 무엇이든 함께 한다. 부부가 서로 존대어를 쓰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모에게 존댓말을 쓰고 집안일을 하는 엄마를 도와 설거지, 청소, 세탁도 함께한다. 만화책과 비디오보기, 컴퓨터 게임, 등산, 텃밭 가꾸기 등은 빼놓을 수 없는 가족의 의무이자 권리다.
그래서인지 두 아이는 특별히 스트레스나 입시 강박 관념에 시달리지 않는다. 아이들 성품이 편안하고 경쟁심이 없어 오히려 걱정될 정도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것은 대학 입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30년 후에 할 것을 배우는 거라고 말합니다. 쉰 살이 넘어서 직장에서 명퇴하고 할 일 없어 방황하는 명문대 출신 많잖아요. 그 후에도 평생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 아닐까요?”
늘 아이들이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택하고 책임지는 교육법을 실천해 온 조씨가 절대 허용하지 않는 것은 ‘엄마에 대한 무례함’이다.
“엄마에게 버릇없게 굴거나 엄마의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거나 엄마가 모르는 게 있다고 무시하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집안이 뒤집어 지도록 혼을 냈어요.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 예의가 있어야 할머니에게, 이웃과 친구에게, 나아가 사회와 직장에서도 예의 있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는 진리를 확인시켜주는 이 가정의 모습에서 우리 미래의 희망을 본다. 박미경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