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J H
운명이란 개척해 나가는 것인가, 이미 결정되어져 있는 것인가. 이
물음은 물음이 될 수 없고, 그렇기에 답이 있을 수 없다. 여생의 순
환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그런 존재만이 이 물음에 물음을
하고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인간이 사계를 느끼며, 봄이 지
나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을 관망할 수 있듯이
인간의 생을 바라보는 존재, 운명이란 그런 존재에게 사계와도 같은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운명은 개척해 가는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 같은 표현이다. 실패
한 자, 성공하려는 자, 즉 밑바닥 삶을 탈출 하려는 자들의 위안과도
같은 한숨 섞인 비상구인 셈이다.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져 있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들의 위선이며,
낙오자들의 한심한 게으름의 표출이다.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의 만물 중 오로지 인간만이 운명을 결
정지으려 한다. 그러한 오만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그 속에서 먼지와도 같은 지구, 그런 그의 품에 다리를 내리고
있는 인간. 운명을 정의 내릴 자격이나 과연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