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은 6일 실시된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니콜라 사르코지 당선자와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시장이 ‘닮은꼴’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결코 이 전 시장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좌파 언론중 하나인 경향신문이 얘기하고 있는 두 사람의 닮은꼴은 무엇인가?
첫째, 인생사와 정치경력의 유사성이라고 한다. 유·소년기 가난을 딛고 자수성가한 경험, 주류 엘리트 코스보다 비주류 출신에 속한다는 점이 그렇다고 한다. 둘째, 강력한 추진력이 그렇다고 한다. 이 전 시장의 대선발판이 되고 있는 ‘청계천’이 서울 시장 재직시의 업적이라고 한다면, 사르코지는 내무장관 시절의 강력한 범죄정책이 자랑거리라고 한다.
셋째, 두 사람 모두 보수 우파이면서 ‘개혁’과 ‘변화’ 이미지로 자리매김한 점도 유사하다고 쓰고 있다. 사르코지가 전문가들 사이에선 ‘르펜 라이트’(극우주의자 장 마리 르펜의 아류)라는 비판을 들었지만 대중에겐 ‘늙은 프랑스’에 새 바람을 몰고 올 것이란 기대를 모음으로써 대선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이 전 시장에게 시사한 바가 크다. 사르코지가 이른바 ‘탈 이데올로기’의 ‘실용론’을 내세워 오랜 좌파 정권의 그늘이 드리웠던 프랑스를 우향우시켜 가는 전략은 이 전 시장이 실용적 중도론을 통해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은 물론 동서 화합을 이룩하여 날로 좌경화되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을 다시 우로 한클릭 이동시키려는 전략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여진다.
넷째, 직선적인 말투가 비슷하며 이로 인해 이따금 말실수를 빚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한다. 경향신문이 사르코지가 2005년 비행청소년들을 “쓰레기”라고 불러 폭동을 부채질한 것과 이 전 시장이 경쟁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해 “아이를 낳아봐야 보육을 얘기할 자격이 있다”고 해 물의를 빚었던 일을 유사점으로 비교하고 있는 것은 다소 격이 맞지 않아 이 전 시장에게 억울해 보이는 것이긴 하다.
그렇지만 사르코지의 그런 직선적 어법이 폭동까지 불러일으켰지만 강력한 추진력과 실용주의 노선에 묻혀 큰 대과로 작용하지 않았던 점을 놓고 볼 때 분명 이 전 시장도 직선적 어법으로 많은 말실수를 하고 있지만 그 결과가 사르코지와 같은 정도의 사회갈등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 경제난과 지역갈등 등을 고려할 때 역시 강력한 추진력과 실용주의 노선을 막을 정도는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마지막으로 경향신문은 사르코지와 이명박이 개인적으로는 닮았을지 모르지만 양국의 정치·사회·문화적 배경과 구조가 판이한 만큼 섣부른 일반화는 곤란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 한발을 빼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시장’과 ‘경쟁’이 ‘변화’를 상징하는 단어일 수 있지만 한국에선 아직 ‘보수세력의 캐치프레이즈’라는 지적이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정당정치 측면에서도 프랑스의 경우 1960년대 ‘68세대’ 이후 오랜 좌파적 전통이 뿌리를 내린 점에서 단선적 비교는 어렵다며, 최근의 프랑스 우경화엔 이민자 문제로 인한 극우주의 부상이라는 ‘역사적 퇴행’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프랑스 대선 결과를 경제적 안정과 성장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은 굉장히 단순화하는 이야기다. 대선의 판단기준은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과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다르다고 한 양국의 정치사회 문화적 배경은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시장’과 ‘경쟁’이 변화를 상징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저 ‘보수 캐치프레이즈’라는 인식은 좌파정권에 줄을 대고 있는 좌파언론의 무지한 시각일 뿐이다. 지금 한국에서 경제가 차기 대선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것 역시 10년 좌파정권에 의해 ‘시장’과 ‘경쟁’이 질식당해온 결과다. 그래서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극우주의와는 다르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우경화 주장이 곳곳에서 싹트고 있질 않은가? 좌파전통이 수십년을 이어온 프랑스와 10년밖에 안된 한국이 다르다고 할 것이 아니라 좌파정권의 폐해가 건강하게 자라야 하는 우파마저 병들게 했다는 점이 또 다른 공통점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경향신문이 아예 비교조차 하지 않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또 있다. 두 사람 모두 강력한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상대와의 일전을 치렀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대선에서 부동의 2위를 기록하며 결선에까지 올라 사르코지를 압박한 루아얄과 이명박을 턱밑에서 압박하고 있는 박근혜는 각각 프랑스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예쁜 좌파]라는 별명을 얻었던 여성 이미지 정치가 루아얄의 꿈은 날아갔다. 지난해까지 여론조사에서 사르코지와 비슷한 지지율을 얻었지만 올 들어 잇따른 말실수에 전략 실패가 얹어지며 고배를 마신 루아얄의 실패에 대해 프랑스 정가에서는 이미지 정치의 한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로서도 눈여겨볼 대목이 아닌가 싶다.
박근혜와 루아얄에게서도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예쁜 좌파'라는 별명을 얻었던 루아얄은 대부분의 여성 정치인과는 달리 자신의 외모와 여성이란 이미지를 한껏 강조하는 전략을 폈다. 절대 바지를 입지 않았고 높은 힐을 고집했다. 블로그와 인터넷 사이트도 활발히 이용했고, 젊은 층을 겨냥한 축제 같은 선거 운동도 폈다. 바지를 자주 입고 다니는 점만 빼고는 대부분 박근혜에게서 느낄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하나 더 다른 점이 있다면 루아얄은 좌파고 박근혜는 우파라는 거지만 별로 중요한 거는 아닌 것 같다. '이미지만으론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루아얄의 발목을 잡았다고 하니 말이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프랑스에 핵잠수함이 몇 척인지도 몰라 자격을 의심받기도 했으며, 중동과 중국 방문에서 말실수를 거듭해 얼굴만 예쁜 정치인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한다. 루아얄은 '이미지로 먹고 산다'는 비난을 만회하고자 올 2월 100가지가 넘는 공약을 내놓았지만 구체적 재원 확보 계획도 없이 저소득층 지원을 대폭 늘리는 정책에 유권자들은 오히려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 점은 박근혜와 다를까? 별로 달라보이지도 않는다.
결정적으로 루아얄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꿨지만 여성 득표에서도 사르코지에게 졌다는 것이다. 1차 투표에서 여성 유권자의 32%가 사르코지를, 28%가 루아얄을 지지했다. "우리는 치마를 갈아입는 것만큼이나 자주 생각을 바꾸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원하지 않는다"고 루아얄을 공격한 미셸 알리오마리 국방장관이야 남성적 관점을 심하게 대변했다고 치더라도 결정적으로 진보적 여성들이 여성임을 강조하는 루아얄에게 반감을 느꼈다는 점이다.
여성 대통령에 대해 기본적으로 나약함을 문제삼는 남성 유권자들을 고려할 때 여성들 사이에서조차 어필하지 못한다면 좌절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인데, 그것이 프랑스만의 현상일까? 박근혜는 여성임을 강조한 바 없으니 한국의 진보적 여성들이 오히려 지지할까 생각해보면 대처를, 힐러리를, 그리고 알게 모르게 루아얄의 승리를 기도했던 박근혜가 여성임을 애써 감춘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진보적 여성들이 프랑스보다 적어서, 아니면 남녀 불문하고 아버지 박정희의 유훈을 생각하면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여성의 적은 여성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 다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