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지중해
카이로에서 버스로 지중해 연안도시인 알렉산드리아로 원정 여행을 다녀오는 날이다.
아침 8시에 숙소인 Nile Hotel을 출발해서 황량한 사막을 직선으로 뚫은 고속도로를 달려 11시가 되어서야 알렉산드리아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엄청난 더위로 사막을 데우고 있다.
‘불볕더위’라는 표현은 여기에서야 실감하였다. 중간 휴게소에서 버스를 내릴 때 종아리를 훅하고 지나가는 바람이 불가마가 스쳐가는 느낌 그대로였다. ‘열풍’이란다.

알렉산드리아 톨케이트

알렉산드리아 재래시장

고속도로 휴게소. 더운데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해진다. 습도가 없어서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해서 폼페이의 기둥과 원형극장을 둘러보고 지중해 바다가 보이는 식당으로 옮겨갔다. 이리 예약해둔 양고기갈비구이 점심식사는 3시간의 피로를 씻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맛있는 점심식사와 달리 우리 일행 모두는 이번 여행을 통틀어 제일 힘든 하루로 기억하게 되는데 그것은 집단으로 배탈이 난 것이다. 카이로로 돌아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단체로 사먹은 아이스크림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음날 새벽비행기로 이집트를 떠나 터키로 넘어가야 하는데, 약간의 변비 끼가 있었던 나는 오히려 쾌변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만, 화장실 들락거리느라 정신들이 없다. 몇몇은 터키여행 내내 고생을 하였다.
위대한 마케도니아인이었던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를 정복한 후 이집트로 왔고 지중해 해안의 조그만 어촌 마을에 자신의 새로운 수도,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다. 알렉산드리아는 해변까지 연결되어 있는 큰 광장인 미단 사드 자굴(Midan Saad Zaghoul)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알렉산드리아에는 한때 500,000권 이상의 장서를 보유한 커다란 도서관이 있었으며 전성기에 이 도시는 과학, 철학, 지적 사상, 교육의 대단한 보고였다.
그리스-로마 박물관(Graeco-Roman Museum)에는 기원전 3세기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검은 화강암으로 된 장대한 아피스(Apis) 조각이 있는데, 아피스란 이집트인들이 숭배하는 신성한 소의 이름이다. 그 외에도 미이라, 석관, 도자기, 보석, 고대 태피스트리 등이 있다. 로마 원형대극장이 최근 재발견되었으며 이는 로마인들이 이집트에 지었던 유일한 원형대극장으로 보인다. 경기장 주변으로 흰 대리석 테라스가 13개 늘어서 있는데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하다. 발굴작업이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실제 땅을 파는 장소는 이제 극장 북쪽으로 조금 옮겨갔다.
폼페이 기둥(Pompei's Pillar)
알렉산드리아야 말로 고대와 현대가 뒤섞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현대식 고층빌딩과 고급건물들이 즐비하지만 거리 골목 골목 노점시장과 재래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신호등 없는 거리엔 노선표시없는 버스와 전차가 뒤섞여 다닌다.

기둥하나 우뚝서있는 모습이 과거의 영화를 느끼기엔 부족하다.

폼페이의 기둥은 높이가 25m에 달하는 커다란 분홍색 화강암 기둥으로 둘레도 9m나 된다. 십자군들이 이집트에 왔을 때 이 기둥을 보고 폼페이의 것이라 믿었지만 사실 이 기둥은 아주 규모가 컸던 세라피움(Serapeum)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이 기둥은 297년 디오클레티안 황제를 위해 세라피움 중앙에 세워졌던 것이지만 1000년 후 이집트에 온 십자군들이 세라피움과 클레오파트라 도서관을 파괴하고 기둥만을 남겨놓았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세웠던 도서관 기둥 중의 하나라고 추측하고 있다.
로마원형극장(The Roman Amphitheater)

그레코 로만 박물관에 가까운 콤 알디카 유적 속에서 1964년 발견된 원형극장. 좌석은 유럽산 대리석이고, 원주는 아스완의 화강암과 소아시아의 녹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좌석은 13단, 700~800명이 앉을 수 있다. 의자에는 로마 양식의 조각이 새겨져 있고, 연극 공연이나 격투기 대회에 쓰였다. 이집트 유일의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공동목욕탕이 있다. 콤 알디카의 유적 주위는 공원으로 되어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콰이베이 요새(Fort Qaitbey, The Citadel of Qaitbey)


세계 제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파로스 등대가 있었던 곳이며 지금은 해군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등대는 전쟁과 재해로 파괴되었고, 그 자리에 요새가 세워졌다. 이 요새는 1480년 술탄 카이베이가 알렉산드리아의 고대 등대 위해 세운 것이다. 지금은 성채의 안에서 등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파로스 등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이집트 쿠푸왕의 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할리카르낫소스의 마우솔루스왕묘, 로도스의 크로이소스 거대상과 이 알렉산드리아 등대가 들어간다. 이 등대가 세계적인 불가사의로 꼽히는 것은 고층의 건물을 세우는 기술은 금세기 들어서였다는 것, 즉 16층 정도의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나 가능했다는 통념 때문이다. 과연 당시의 사람들이 이러한 건물을 지을 정도로 문명을 구가했던가? 아니면 과장섞인 전달 과정에서 왜곡되어 신비화되었던 것인가?
이 등대에 대해서는 많은 전설이 존재하고 있다. 기원후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한 아라비아인들은 이 등대에 달린 거울로 빛을 한 방향으로 모으면 해상의 배를 태울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었다고 말을 전한다.
이 거대한 건축물이 파괴된 이야기도 대단히 신기하다. 등대가 파괴될 당시에 이것이 있던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와 같이 아라비아인에 의해 정복되어 있었는데 그 적대국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한 비잔틴 제국이었다. 이 제국의 황제는 간계에 대단히 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황제는 칼리프(회교의 교권과 왕권을 통합한 지위) 알와리드의 궁정에 비밀 지령을 내린 사자를 보냈다.
황제의 사자는 칼리프의 궁전에 도착하자마자 앞잡이들을 풀어 등대밑에는 이집트국왕이 지녔던 금은 보화가 가득하다고 거짓 소문울 내게 했다. 이 소문을 들은 이집트 고관들은 이 사실을 칼리프에게 알렸고 칼리프는 망설이다가 등대의 철거 명령을 내렸다. 등대의 철거가 한창 진행되어 거의 반을 허물었을 때 칼리프는 자신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중지 명령을 내렸으나 때는 늦었다. 복구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이 등대를 건축할 수 있는 건축술이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거대한 구면 거울도 파괴되어 산산히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반쯤 남은 등대도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 알렉산드리아에는 배의 길잡이가 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이 등대는 14세기까지 반 정도 부서진 상태로 계속 서 있다가 대지진으로 완파되었다. 그후 여러번 등대를 재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를 축조할 기술이 없었다. 이 기술이 가능한 때는 20세기 들어와 강철 구조의 사용 등 건축술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서야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몬타자궁전(Montaza Palace)
비치 기슭의 조금 높은 구릉 위에.. 궁전
알렉산드리아 북동쪽 17km, 몬타자 비치 기슭의 조금 높은 구릉위에 있다. 원래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1892년에 세워졌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정원에는 수백 그루의 야자나무가 있고, 스포츠 시설이며 레스토랑, 매점 따위도 갖추어져 있다. 150ha의 부지 안에 있는 팔레스틴 호텔은 별장 하나를 개조한 것으로 분위기가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