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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년은 바람에 날리고 2

은하철도 |2006.07.21 18:52
조회 838 |추천 0

 

 

중년은 바람에 날리고

 

 

2.


돌이엄마는 거친 손길로 대학에 다니는 큰 아들과 재수하는 작은 딸이 구석에 벗어 쳐 박아놓은 옷을 휙휙 집어 들더니 세탁기에 쳐 넣었다.  텅 빈 집안에서 하루 종일 이런저런 잡념에 젖어 살다니 한심한 일이다.  애새끼마저도 큰 대가리라고 제멋대로 흔들고 다니니, 뭐라고 심술이라도 퍼부으면 큰 새끼는 지 애비를 닮아서 능글능글 거리고 작은 년은 픽 토라진 얼굴로 제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도대체 자신을 거들떠보는 사람이 주위에 없는 것이다.  내가 콱 죽어버려야 이것들이 내가 소중한 것을 알 것인지, 그렇다면 죽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혹시 알아?  특히 남편이라는 화상은 잘 되었다싶어 화장실에 가 앉아서 새 계집년을 상상하며 싱글거릴지도 모르니, 죽은 년만 불쌍하지.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세탁기를 돌리고 얼른 전화를 받으니 인터넷카페에서 친하게 알고 지내는 수선화라는 대명을 가진 여자였다.  돌이엄마와 비슷한 처지라서 뻑 하면 서로 전화해서 시시콜콜 수다를 떨었다. 

“호호, 안개꽃님이에요?  오늘 아주 쿨한 소식하나 전해드릴게요. 호호호”

빠르고 들뜬 수선화의 목소리에 돌이엄마의 화색이 싹 돌았다.  역시 같은 또래의 동지가 좋다.  수선화는 호들갑을 떨며 퍼부어대듯 말을 이었다.

“추억만들기 카페에 계시는 교향곡님 아시죠?  호호호, 그 분하고 어젯밤에 데이트했어요.  정말 그 분의 시처럼 아주 근사한 분이더라고요. 호호,”

돌이엄마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약간 푼수처럼 수다스런 수선화지만 그만큼 건수도 잘 건지는 재주가 부러웠다.  전에도 다른 카페에서 활동하는 시인과 데이트를 했다고 자랑했는데, 이번에도 추억만들기 카페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교향곡이라는 시인과 데이트를 했다니, 돌이엄마는 솔깃한 기분에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정말? 호호, 수선화님은 꼭 시인킬러 같아.”

“그럼요. 저는 시를 아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면 상대도 안 해요. 호호호,”

수선화는 교향곡이라는 사람과 저녁을 먹고, 한강변을 같이 거닐었는데 무척 그 사람이 낭만적이라는 둥, 나이보다는 무척 젊어 보이고, 생활감각도 신세대 같으며, 모든 사고방식이 팍 트여서 말이 잘 통한다는 둥, 세탁기가 다 돌아갈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돌이엄마는 수화기를 놓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성격이 발랄한 수선화라지만 무척 어렵게만 느껴지는 시인과 쉽게 데이트도 하니 아무래도 자기보다는 재미있게 살아가는 재주가 있어 보였다.  별안간 자신만 바보처럼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는 이십 대 초반에 중매로 결혼했으니 길바닥에 널려있는 연애 한번 못해보고 사십을 후딱 넘긴 셈이다.  인터넷에 나부끼는 흔한 연애감정,

누구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  남모르는 바닷가의 밀회,  영원한 자기만의 비밀과 추억, 비 오는 날이면 떠오르는 보고 싶은 얼굴 등등, 이런 것들에 대한 상념을 아무리 뒤집어보고 엎어 보며 떠올리려 해도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인생인지, 떠오르느니 웬수 같은 그 화상의 유들유들한 얼굴뿐이었다.  그리고 다 컸다고 뻑 하면 자신을 무시하는 큰 새끼와 작은 새끼,


한숨을 푹 쉬던 돌이엄마는 힘 빠진 손가락으로 컴퓨터 스위치를 눌렀다.  잡념에 시달리면 역시 컴퓨터가 제일이었다.  이렇게 꿀꿀한 기분이면 꼭 찾아보는 어느 시인의 글이 있었으니, 추억만들기 카페에서 활동하는 대모험이라는 대명을 가진 시인이었다.  수선화가 만났다는 교향곡은 산뜻하고 감칠맛 나는 시를 잘 쓰지만 대모험이라는 시인은 애절한 슬픔이 바닥에 깔린 시를 잘 썼다.  성질이 깐깐한 돌이엄마의 가슴에는 대모험의 시가 더욱 잘 파고들었다.  언젠가 중국에 있는 남편과 통화를 하며 대판 싸움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도 모두 집에 안 들어오던 날 밤에 남편의 행동을 곰곰이 생각하던 돌이엄마는 분명히 남편이 중국에 작은 살림을 차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통장에 펑크를 낼 리가 만무했다.  이십년이 넘는 결혼생활 끝에 남편의 외도나 멍청히 바라보고 있으며, 자식들은 뭐에 미쳤는지 집구석에도 잘 들어오지 않으니 텅 빈 공간의 인형처럼 사는 자신이 서러움으로 밀려들었다.  중국에 전화를 걸어서 남편에게 퍼부어 댔다.  유들유들하던 남편도 이상하게 그날은 깐깐한 목소리로 맞받아친 것이다.  서로 고성이 오가던 끝에 생전 처음으로 이혼이라는 말이 뛰쳐나왔다. 

“뭐? 이혼하겠다고?  그래, 좋다. 당신 마음대로 해.”

이것이 이혼하겠다는 돌이엄마의 말에 대한 남편의 대답이었다.  입술을 꼭 깨물며 수화기를 집어던진 돌이엄마는 엉켜드는 가슴을 끌어안고 소파에 푹 엎드렸다.  자존심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 같았고 억울한 감정이 치솟았다.


새벽까지 서성거리며 분을 참지 못하다가 컴퓨터를 탁 켜고 카페에 들어갔다.  그러자 바로 얼마 전에 올려진 것으로 보이는 대모험의 글이 눈에 띄었다.  평소에는 시를 거의 보지 않았지만 그날은 “돌아보지 마세요.”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처음으로 대모험이 쓴 시를 본 것이다.  마우스로 시의 재목을 클릭하자 파도치는 듯한 애절한 음악과 가을날의 쓸쓸한 영상 위로 구구절절 싯귀절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확 얼어붙은 듯한 표정을 짓던 돌이엄마의 얼굴이 별안간 이상한 형태로 찌그러졌다.  울음이 터진 것이었다.  정말 생전 처음으로 슬피 울었다.  소리까지 엉엉 내며 우는 돌이엄마의 뺨을 타고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려 턱 아래에서 방울방울지다가 손등 위로 뚝 떨어졌다. 



* 돌아보지 마세요. *


돌아보지 마세요.

돌아보면 돌아볼 것도 없는 허수아비

참새 떠난 논 가운데

낡은 옷자락 펄럭펄럭

삐에로의 슬픈 얼굴입니다.


돌아보지 마세요.

돌아보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눈물의 강

숨죽인 강물이 흘러

주름진 산과 들

이슥한 저녁의 외로움입니다.


글 / 대모험


이렇게 돌이엄마는 대모험의 팬이 되었던 것이다.  매일매일 그의 글이 올라오기 기다렸으며, 어떤 때에는 올려진 그의 글을 제일 먼저 클릭 할 때에 이상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아무런 꼬리글을 달지도 못했다.  수다방이나 다른 게시판에서는 꼬리글도 잘 달았고 자기의 글도 잘 올리며 수다를 떠는 돌이엄마였지만 대모험의 글 아래는 마치 침범할 수 없는 성역처럼 느껴져 짧은 꼬리글도 차마 못 달았다.  어둡고, 쓸쓸하고, 그렇지만 격류 하는 힘이 느껴지고, 때로는 무척 감미롭고 부드러운 대모험의 글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대모험의 글이 올라왔나 확인하고, 저녁이면 혹시 올리지나 않았을까 하며 다시 확인했다.  또한 그의 시를 따로 보관해 놓고는 기분이 울적한 날에 훌쩍훌쩍 거리며 보기도 했다. 

컴퓨터를 보던 돌이엄마의 눈이 별안간 커졌다.  몸이 얼어붙는 듯 했다.  어제 자기가 끄적끄적 올린 글인데 대모험이 그 아래에 긴 답글을 달았으니 마우스를 잡은 손끝까지 찌르르 전율이 흘렀다. 



* 외출하고 싶다. *


인형은 외출을 꿈꾸어요.

돌아올 수 없는 외출이라도

행복하다면 바로 내 집

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글 / 안개꽃


이런 글을 낙서 삼아서 올렸는데 대모험은 무척 감수성이 뛰어난 진솔한 시라고 칭찬을 했다.  학창시절에 국어점수가 제일 나빴던 돌이엄마가 쓴 최초의 시였고, 그토록 심금을 울리던 대모험이라는 시인의 칭찬이었으니, 돌이엄마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기절초풍할 한 통의 메일이 돌이엄마에게 날아왔으니 바로 대모험이 보낸 것이었다.  꼼작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돌이엄마의 동그랗게 떠 진 눈,  벌린 입, 빨개진 얼굴, 떨리는 손, 그리고 뛰는 심장의 고동은 온몸을 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안개꽃님의 시에 대한 답시를 보냅니다.)


* 안개꽃 당신 *


순백의 흔들림이 창가에 머물러

안개꽃 사이마다 또 안개꽃

인형의 꿈이 둘러쳐진 창가에

행인의 눈길은 무심히 스쳐

바람도 없는 바람 타고 흔들리는

안개꽃 당신,


대모험 올림.

 

 

글 / 은하철도



추천수0
반대수0
베플닉네임|2006.07.22 02:20
지겹다 복사판 고만좀 올려라!도배질도 고마해라
베플철도영감님 |2006.07.22 14:54
제 글에 불청객으로 오셔셔 반박의 리플을 남겼으니...저도 한 마디 남깁니다...40방을 휘젓고 다니십니다...출석률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그래서 글케 랑님을 몰아내시는 데 열과 성의를 다하셨군요...존경스럽습니다...게시판서 만세무궁 자손만대 번창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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