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시간 : 2007.04.18 23:57
명승지와 기암괴석, 쇼핑센터와 별미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대 여행서 전문 출판사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의 설립자 토니 휠러(Wheeler·61·호주 멜버른 거주)씨가 최근 펴낸 ‘나쁜 나라들(Bad Lands)’은 평범한 사람은 별로 갈 일 없는, 전반적으로 욕을 얻어먹는 불량국가 여행기다. 부시 미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비난한 북한·이라크 등을 비롯, ‘불량국가’ 아홉개국을 돌아보면서 얻은 여행 단상에 각국이 처한 현재의 상황과 근현대사를 섞었다. 결론은 ‘나쁘다’는 것은 상대적이라는 것. ‘나쁜 나라를 비난하는 미국 등 서방세계는 그럼 착하기만 한 나라냐’는 것. 국내서는 ‘신발끈 여행사’를 통해 판매되는 책의 일부를 발췌, 의역해 소개한다.
쿠바
쿠바란 나라는 도대체 이웃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존재다. 물론 쿠바의 천하무적 국가대표 야구팀을 빼고는 말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끝없는 장광설로 사람들이 지쳐 죽게 만들긴 하지. 아바나 건축의 특징은 ‘세련된 깡패 풍’이라고 할까. 여기에 1950년대 미국 리조트 스타일, 19세기 스페인 식민지 건축이 섞여 있다. 1959년 이후 완벽히 냉장 보존된 도시는 수십년간 서서히 부패해 왔지만, 최근에 복원 작업이 시작됐다. 쿠바에서 렌트카를 하면 아마 ‘푸조’나 ‘현대’일 것. 그런데 거리에 안내 표지판이 없다. 연간 페인트 구입 예산을 모두 ‘사회주의 아니면 죽음을’ 입간판 제작에 쏟아 부었나. 주민들이 자가용 살 형편은 안 되고, 버스는 자주 다니지 않는 쿠바에서는 운전 중 끊임 없이 만나는 히치하이커들을 태우면 되기 때문에 길 찾기에 큰 문제는 없다.
미얀마
고급 호텔 수영장 옆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다 보니, 여기가 군사정권의 압제하에 쫄딱 망할 지경인 나라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1978년 아내와 함께 한 호텔에 머물렀는데, 당시 밤 10시만 되면 바(bar)가 문을 닫는 동시에, 쥐들이 출현해서는 손님들의 무릎을 지름길 삼아 로비를 질주하곤 했다. 물론 지금 그곳은 외국의 주요 신용카드를 받는 깔끔한 호텔로 바뀌긴 했지만. 바간에서는 열기구를 타고 수없이 많은 탑들이 서 있는 풍경을 내려다 봤다. 쥐라기 공원에서 세포 하나로 공룡을 복제하듯, 이곳에서는 오래된 탑을 속속 복원하고 금칠을 해대고 있다. 마약왕과 군사정권의 장군들을 위한 저택 설계 전문이라는 한 영국인 건축가는 “이 사람들은 영국 식민지 시대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알바니아
동구권 몰락 후에도 알바니아 공산당은 목 잘린 닭처럼 한동안 비틀비틀 생명을 이어갔지만 지금은 바와 카페, 레스토랑이 넘쳐나는 곳. 음식은 신선하고, 담백했다. “비싼 화학 비료를 쓸 수 없으니 유기농일 수 밖에”라고 현지인은 전했다.
사우디 아라비아
사우디 아라비아가 다른 나라 쳐들어갈 생각이 있겠나.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슬람 과격단체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고 있다. 석유로 번 돈을 가지고 온갖 힘든 일은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다 해결하니, 심심한 젊은이들이 지하드에 몰리지 않겠는가.
리비아
최고지도자 카다피의 성적표는 이렇지 않을까. “노력은 한다. 그러나 주의 산만하고 결과물이 신통치 않다.” 아내와 둘이 가려 했더니 리비아를 여행하려면 반드시 4인 이상이 신청해야 한다는 거다. 실제로 네 명이 다 올 필요는 없어도 신청은 4인 이상이라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팔순 노모와 아들 녀석의 이름을 가짜로 올렸다. 정말 감동을 받은 건 사하라 사막. 동화책에 나오는 그 전형적인 사하라 사막, 딱 그 풍경이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언덕에, 외로운 낙타 캐러밴(물론 낙타는 도요타 랜드 크루저로 바뀌었지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물러간 도시에는 곳곳에 휴대폰 매장이 가득하다. 인터넷 카페도 많다. 그런데 볼리우드(Bollywood)에 질려버렸다고 할까. 가는 곳 마다 인도 연속극, 영화, 뮤직비디오…. 한때 아프가니스탄에서 영화 ‘타이타닉’ 해적판이 끈 인기를 끌면서 ‘타이타닉’ 모양의 웨딩 케이크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타이타닉호를 타고 가는 디카프리오와 윈슬렛 커플을 보며 자유연애에 지지를 보냈고, 침몰하는 배를 보며 조국 아프가니스탄을 걱정했다고 한다.
이란
이란처럼 외부 여행자를 완벽하게, 적극적으로 환영하려는 나라가 또 있을까. 레스토랑에 혼자 있으면 ‘우리 테이블로 오세요’라고 초대하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여성은 “영어 할 줄 알아요? 우리랑 얘기하고 가요”라고 말을 건다. 수박을 먹던 할머니들은 한 쪽 권하기도 했다. 젊은이들의 파티에도 초대됐다. 실내에서 여성들은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 맥주가 어디서 났냐고 하자 “민병대가 무기인척 하면서 술을 들여온다”고 했다.
이라크
우르 같은 오래된 도시나 바그다드를 돌아보는 것은 다음으로 미뤘다. 일단 터키에서 이라크로 들어가 이란으로 빠져 나오는 식으로 비교적 안전한 곳만 돌아보기로 했다. 같은 ‘악의 축’이면서도 북한은 고립되고 비난 받는 정도에서 끝나고, 이라크는 쑥대밭이 됐다. 같은 레벨의 ‘악당’이면서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어떻게 사담 후세인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을까.
북한
북한 여행 중에는 내내 키득거릴 수밖에 없다. 안내원들이 신출귀몰하는 지도자의 전지전능한 행각에 대해 너무나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모습 때문이다. 내가 가져간 가이드 책에 적힌 “북한은 너무나 초현실적”이란 구절을 보고 안내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수령님이 농장, 공장, 어촌 등을 방문해 생산 증대를 지휘했다는데, 그렇게 모든 분야에 전문가인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당신이 수령님을 만나 봤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평양 백화점이야말로 주체사상의 절정. 말 그대로, 아무것도 수입하지 않는다. 북한 지하철에서 낙서를 발견했다. 북한에도 낙서가? 혹시 반정부 움직임? 알고보니 동독에서 들여온 구제 지하철. 낙서는 그러니까 동독제. 거대한 과시의 진열장인 그 인위적인 도시 평양에서도 제일 엽기적인 곳은 평양학생소년궁전. 방마다 전시용 어린이들이 춤추고 악기를 연주한다. 농민들은 늙은 소를 끌고 맨손으로 농사를 짓는 동안, 지도층은 대리석 궁전에서 게임을 벌인다. 최고의 볼거리는 ‘아리랑 축전’. 만약 어느 쪽 군대가 ‘단체 무용’을 잘하는지에 따라 전쟁이 결판난다면, 나는 북한 쪽에 돈을 걸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