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집 없는 설움’이라 했던가. 어려웠던 시절 못 입고 못 먹는 것도 모자라 머리 둘 곳 조차 없는 설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담은 말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배고프고 못 입는 것도 서럽지만, 내 작은 몸 하나 뉘어 편안히 쉴 오두막 하나 없다는 것. 그것은 생각해보면 참 서러운 일일 법도 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집 사기’ 풍토도 그런 맥락에서 생겨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워낙 땅 덩어리도 좁은 데다가 ‘집을 사는 일’이 또 하나의 경제적 부의 축적 수단으로 전락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남의 눈치 안 보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집 하나 갖는 일은 이 시대의 모든 이들이 갖는 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터. 젊은 맞벌이 부부들은 ‘좋은 집 장만하기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10여년을 동분서주하고 몇천 혹은 억에 이르는 돈을 대출받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그 풍토는 젊은 맞벌이 부부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요즘 한국교회 역시 ‘괜찮은 교회 하나 장만하기’에 혈안이 돼 있다. 몇십 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건, 새로 개척을 한 교회건 교회 존립의 지상과제는 ‘교회 건축’이다. 몇백 명이 앉을 수 있는 교회 공간도 모자라 몇천 혹은 몇만에 이르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성한 건물 때려 부수는 건 기본이다. 교회의 주보 곳곳에는 건축 헌금 기부자들의 이름을, 그것도 금액의 순서대로 싣는 것은 물론 괄호 안에 금액까지 명시하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참 서글픈 일이다. 사람이 모여 앉아 예배를 드릴 공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어 교회 건물 짓기에 급급하여 매달리게 된 이 현실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디딤돌교회가 ‘건물 없는 교회’로 지내온 지 어느새 1년여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귀를 솔깃하게 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교회 건축에 매몰되어 가는 이 때 대세를 거스르는 디딤돌교회의 과감한 행동은 분명 ‘이유 있는 반항’이기 때문이다.
생각 있는 교회, 건물 없는 교회
2004년 11월. 디딤돌교회는 세상에 그 첫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없는 교회, 대안을 꿈꾸는 교회”를 필두로 한국교회가 교회 자신을 목적인양 제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현실을 인식, “교회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근본적 문제의식을 담고 출발했다. 디딤돌교회의 시작을 준비한 것은 윤선주(39) 목사. 10여 년 일반적인 목회를 하면서 교회의 내분과 부정적인 교회 현실 속에서 “교회의 본래적 모습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했고 그 뜻을 함께 하는 몇몇 교인들과 함께 디딤돌교회를 꾸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뜻이 좋다 하여도 그들이 꿈꾸는 형태의 교회를 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준비한 기간만 1년 여. 그 시간동안 교인들과 함께 교회의 방향성과 뜻을 타진했고 교회 규약을 만들고 여러 자료들을 수집해서 어떻게 하면 교회 공동체를 ‘대안적으로 이끌어갈 것인가’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디딤돌교회의 여러 실험적 시도들의 내용은 매우 다양한 방면에서 엿보인다. 그리고 그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바로 교회 정관이라 할 수 있는 디딤돌교회의 ‘규약’이다. 전체 예산의 30% 이상의 사회 환원, 담임목사를 포함한 모든 직분의 선출식 임기제, 분립개척의 명문화, 교회 내 의결과정의 민주화, 담임목사가 아닌 선출된 교인대표가 교회 최고 의결기관인 공동의회 의장직을 맡고, 담임목사의 임기는 5년으로 하되 1회에 한해서만 연임이 가능하게 하는 등이 그 내용이다. 물론 규약에는 없지만 디딤돌교회가 교회 건물을 갖지 않는 것도 그 실천 내용의 일부다. 디딤돌교회는 현재 송파구에 있는 지역사회교육관을 빌려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다. 주일이면 비게 되는 그 건물을 활용하고 또 건물을 짓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사회 구제를 위해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그 뜻을 모은 것이지만 너나 할 것 없이 높은 첨탑 올리기에 화려하지도 않은 작은 공간 하나 없다는 것은 분명 불편한 일일 것 같았다. 하지만 건물 없이 1년여를 지낸 교인들의 반응이나 현실이 힘들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윤 목사는 그것은 그저 “조금 불편한 것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물론 매주 교회에 필요한 집기들을 예배 장소로 옮겨 와야 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한 점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교인들 모두 그걸 ‘불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 데다가 교회 건물을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굉장히 자유로워요. 물론 교회 건물이 있고 그 곳에 정착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이 불편함이 결국 자유로움이고 그 자유로움 덕분에 교인들 모두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Open and Open
디딤돌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교인들간에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렇기에 홈페이지에는 매일 크고 작은 일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그 안에는 교회 안의 공적인 일들도, 또한 사적인 이야기들도 더불어 교회에 바라는 의견도 가감 없다. 교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누구나 쓸 수 있는 ‘건강한 교회 만들기’ 게시판은 디딤돌교회가 대안적 교회, 건강한 교회를 꿈꾸고 함께 토론하겠다는 의지를 잘 보여주는 게시판이기도 하다.
며칠 전 게시판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너희가 짜깁기를 아느냐’라는 제목과 함께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씩 따와 얼기설기 엮어 본문과 제목만 살짝 바꿔놓으면 제법 그럴듯한 설교 한편이 떨어진다. 거기다 말재간까지 뒷받침되면 금상첨화. 하지만 요즘처럼 각종 미디어가 넘치는 시대에는 짜집기도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눈에 들어오니 말이다.”라며 목회자의 설교를 비판한 익명의 네티즌의 글이었다. 이에 윤 목사는 “설교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 수단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물론 무분별한 도용은 잘못된 것입니다만 건설적인 인용은 설교자 자신과 청중을 위해서도 건전하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봅니다. 지난 주일예배에 있었던 동료 목사님의 설교는 같은 목사인 제가 듣기에도 참으로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디디머 모두에게 필요한 메시지였고, 많은 은혜와 도전을 끼쳤습니다. 정히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고 여기신다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적하시는 것이 온당한 처사라고 사료됩니다.”라며 정중한 댓글을 달았다.
사실상 교회 게시판에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누구의 글이든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그것도 익명이라고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비난 일색일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건강한 교회 만들기’라는 내용으로 토론의 장을 만들어보겠다는 디딤돌교회의 시도는 가히 디딤돌교회가 교회 자신을 얼만큼 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디딤돌교회의 ‘오픈’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매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행사와 계획들을 알리는 것은 물론 재정위원회는 매달 수입과 지출을 모두 공개한다. 교회의 기본적인 운영 규약에 명시되어 있기도 하지만 교회 안에서 쓰여지는 모든 돈의 내용은 교인들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기본적 철칙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셈이다.
대안을 꿈꾸는 교회
디딤돌교회 규약의 첫 머리에 자리하는 교회 재정 30%의 사회 실천. 이것은 교회 경제 규모의 크기와 상관없이 1년이 지난 지금도 잘 지켜지고 있다. 스리랑카 현지교회의 어린이들 10여 명의 지원, 평신도선교단체 지원, 교회개혁실천연대, 성남 사랑의집 등 여러 곳에 경제적으로 후원을 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실천이 비단 경제적 지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각장애인공동체인 루디아의 집이나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으로 가는 봉사는 교인들 스스로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디딤돌교회는 궁극적으로 기독교사회복지관, 기독교시민운동단체, 사학재단, 의료선교기관 등 여러 단체들의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아직은 시작인 지금에서는 ‘궁극적’이라는 단어를 달 수밖에 없고 언제 실현될지 모르지만 그것을 꿈꾸는 이유는 “교회가 소외된 이웃에 대한 섬김과 함께 신앙공동체로서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교회’라는 담장 안에서 빼꼼히 내다보며 손잡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담장을 넘어 사회와의 연대, 실천이 교회가 취해야 할 궁극적 형태라고 보기 때문이다.
윤 목사는 사실 “대안교회”라 불리는 것이 “참 부담스럽고 어렵다.”고 말했다. 그 관심과 애정이 디딤돌교회를 성장하게 하고 노력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디딤돌교회가 완성형의 대안교회 형태라고 생각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안을 꿈꾸고 만들어나가는 과정형의 교회일 뿐이며, 이런 대안을 꿈꾸는 교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라고.
‘대안’이라는 단어가 진부해질 만큼 ‘진정한 대안’을 찾기 어려운 때. 스스로를 ‘대안을 꿈꾸는 교회’라 지칭하는 디딤돌교회의 끝없는 실험은 ‘진행형’이기에 더욱 유의미한 것 같다.
"밖을 지향하는 교회로의 변모 시급"
디딤돌교회 윤선주 목사 인터뷰
대안을 꿈꾸는 교회, 디딤돌교회를 시작한 윤선주 목사가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신앙의 양식으로서의 기독교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제도화됐다.”는 점이다. 삶 속에 스며들어 삶의 지표가 되는 대신에 제도화되어 본래의 기독교 정신이 상실됐다는 것이다. 그러한 기독교의 변화가 결국 종교로서의 기독교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윤 목사가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갱신은 매우 시급한 문제다. 물론 그런 생각이 대안을 꿈꾸는 디딤돌교회를 시작하게 한 동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윤 목사가 바라보는 한국교회 미래의 청사진은 “바깥을 지향하는 교회”다. 지금과 같이 교회가 교회 스스로의 존립을 위해 존재할 때, 즉 ‘안을 지향하는 체제에 머무를 때’에는 지금과 같이 제도화,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불어 교회가 종교기관으로서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신앙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운동의 양상으로 변화해야” 하며, “성도 개개인이 신앙생활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고 공동체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의 인식에서 모두 성숙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시대에 교회가 존립하는 이유, 그것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본래적 기독교의 정신을 살리면서도 변모하는 시대적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길. 윤 목사가 보여주고 있는 실험과 노력들이 바로 그런 고민의 결과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까.
주간기독교 김진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