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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United Arab Emirates)란 어떤 곳인가??

김영희 |2007.05.20 15:56
조회 114 |추천 0
UAE는 United Arab Emirates의 약자로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조그만 연방국가를 가리킨다. 우리말로는 보통 아랍 에미리트연방이라고 번역하는데,여기서 '에미리트'라는 말은 우리말로 하면 '토후국', '족장국', '추장국'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아랍어 단어이다. 아랍어에서 대장, 족장, 추장 등을 아미르(Amir) 라고 하는데 여기에 접미어를 붙여 '추장의 영토' 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나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나라는 과거 오토만 터키 시대에 추장들이 다스렸던 7개의 조그만 부족국가들이 모여 1971년 독립국가를 이루면서 연방을 결성한 것이다. 7개의 추장국 가운데 아부 다비, 두바이, 샤르자라는 세 추장국이 전체 연방 영토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는 수도가 위치한 아부 다비의 에미레이트가 대통령으로 UAE를 대표하고 있으며, 상업도시로 크게 발돋움한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세이크 막토움(Sheikh Maktoum bin Rashid al-Maktoum)이 수상직을 맡고 있다.

정부형태는 연방 대통령 중심제이며, 7개 Emirate가 연합하여 UAE를 수립하고 1971년의 잠정헙법(1996년 정식헌법 채택)에 기초하여 통치하고 있다. 즉,아부다비와 두바이 양대 에미리트가 권력의 핵심을 구성한다. 1971년 잠정헌법 채택 이후, 모든 에미리트는 형식상 평등하다는 전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아부다비를 제외한 다른 에미리트는 각 에미리트의 실제 기여능력이 명시되어야 할 정식헌법 채택에 대해 그동안 소극적이다가,1996년 5월 연방최고회의에서 잠정헌법을 정식헌법으로 채택할 것을 결정하였다. 연방정부의 구성원은 7개 Emirate의 Ruler로 구성된 최고회의(Supreme Council)에서 선출하는 대통령 중심제이며,그 밑에 최고회의 산하의 내각을 두고,일반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각 Emirate Ruler는 완전 독자적 왕정으로서의 행정조직을 갖고 있지만,외교,군사,통화 및 우편 등의 연방정부 소관기능만 정부에서 업무를 관장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민선의회는 존재하지 않지만,각 지방 토후가 지명하는 4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연방평의회(Federal National Council)가 명목상 의회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의회는 입법기능이나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은 없고,단순한 자문기구로서 내각에서 제출한 법안을 심의한다. 임기는 2년이며,각 에미리트에 의해 임명된다. 40명으로 구성되는데,아부다비 8명,두바이 8명,샤자 6명,아즈만 4명,움 알 콰인 4명,라스 알 카이마 6명,후자이라 4명이며,의장은 Mohammed bin Khalifa Al Habtour(2000.1 연방평의회에서 재선)이다.

사법제도는 헌법에 의하여 최고법원과 일반법원의 심급제로 나뉘어 각 에미리트는 지방법원 성격의 민사,형사법원을 갖고 있다. 종교관련사건은 Sharia 법원에서 헌법대신 이슬람 정신을 근거로 재판한다. 인권보호와 관련해서는 1992년 6월 UAE 연방내각은 연방법 11호를 가결한 바,동 법은 기본인권과 개 인의 자유 보장에 관한 내용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이는 그동안의 이슬람전통에 비추어 볼 때 기본권에 관한 획기적인 개선으로 평가된다. 동 법에 의하면,적법한 절차와 법원의 판결에 의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처벌되지 아니하며,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체포,수색,구금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사측면에서 볼 때,총병력은 약7만명(육군:약 6만 5천명 추정)으로 GCC 국가중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1983년 2년제 단기 사관학교를 설립,내국인을 선정,장교로 양성하고 있다. 이는 군지휘부의 내국인화 정책의 일환으로 장교는 직업군인으로서 공무원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특히 걸프전 이후 가능한 분야에 대해 외국인 병력을 UAE 국민으로 대체하는 정책을 수행한 결과,과거 70%정도 차지하던 외국인 용병이 30%정도로 감소했다. 1976년 이전에는 아부다비,두바이,샤쟈,라스 알 카이마가 각각의 병력을 보유하였으나,1976년 Zayed 대통령이 통합을 주창한 이후,아부다비에 설치된 통합사령부가 각 에미리트의 여단을 통제하는 형식을 갖추었으나,여전히 각자의 독립성이 강하였다. 그러나,1992년 아부다비와의 폭넓은 경제적 합의에 의해 샤자가 독립군대를 해산함으로써,사실상 아부다비와 두바이군이 UAE군의 주축이 되어 왔으나,두바이가 97.12. 두바이 지역을 관할해 왔던 군대를 통합사령부 지휘체계하에 편입하기로 결정한 후,실질적인 UAE군 통합을 이루게 되었다.

석유발견이전 협상국가(Trucial State)를 형성했던 7개 에미레이트의 경제는 진주채취,수산업,무역 및 소규모 농업이 기반이었다. 19세기 이 지역과 관계를 갖게 된 서구에 의해 규정된 해적행위 또한 해안 부족들을 위한 중요한 소득의 근원이었다. 아부다비에서 최초로 석유가 발견되었을 때인 1958년과 특히 석유가 최초로 수출되었을 때인 1962년이래 이 지역의 경제는 전격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의 속도는 UAE의 연합정부 창설을 주도한 1971년 독립이후 그리고 1973/4년 가입한 OPEC에 의한 유가상승에 따라 상당히 빨라졌다. 1988년 World Bank의 추계에 따르면,UAE의 1인당 GNP는 15,720달러를 기록하였고,1995년 현재 22,020달러로 크게 증대되었다. 1989년 전반기동안 유가의 인상과 걸프전이후 지역경제의 확대는 UAE 경제의 장래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UAE의 경제는 유가하락과 달러화 가치하락으로 1980년 중반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9년이후 유가회복과 이란-이라크 전쟁이후 중개무역의 증대로 10%이상의 고도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2차산업과 3차산업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UAE의 경제는 석유부문(1994년 기준 석유산업은 GDP의 33.7%,전체 수출의 51.8%)에 커다란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건설부문이 성장의 주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그 내용도 석유수입(收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더욱이 종합적인 개발정책의 부재와 기술인력의 부족은 UAE 경제성장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UAE는 달러에 대한 디르함(Dh)이 Dh3.671로 고정됨으로써 원유수출과 석유수입 감소의 압력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일량 220만 바렐의 OPEC 쿼타는 1995년이후 차츰 초과되고 있으며,18달러수준의 원유를 17.30-17.90 달러 수준의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현재 UAE의 지탱가능한 산유량은 일량 260만 바렐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석유수출로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는 매년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매년 20-3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던 UAE는 1993-94년 국제 유가하락으로 경상수지가 10억대 수준으로 감소하기도 하였으나,1995년 32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회복하였고 향후에도 커다란 유가의 변화가 없는 한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가 기대된다. 1995년말 현재 UAE의 대외지급준비자산은 74.7억달러에 이르고 있다. 한편 정부의 산업구조 다양화 정책의 노력으로 GDP중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1975년 1%에서 1987년 9.4%로 크게 증대되었으나,GCC국가들의 경기침체 여파로 1994년에는 8.3%로 감소하였다. UAE는 인구가 적고 자원도 석유와 개스에 한정돼 있어 일반 제조업의 기반이 취약한 편이며,기존의 제조업도 철강,시멘트,석유화학 및 비료 등을 비롯한 중화학공업에 편중돼 있다. 건설부문은 석유산업에 이어 GDP의 점유율이 10%를 차지하고 있는 제2의 산업이 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석유수입(收入)을 배경배경으로 이룩된 산업이므로 석유산업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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