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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아카오 HL

양정환 |2007.05.25 18:47
조회 581 |추천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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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펀치까지도 완벽한, 괴물 쁘아까오.

 

 

K-1 MAX 사상 최강의 파이터라고 불리는 낙무아이가 있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미들킥, 정교하지는 않지만 관중들로 하여금 소름이 끼칠 정도의 타격음을 내는 펀치, 그리고 상대의 공격을 개의치 않는 저돌성. 현 K-1 MAX에서는 같은 레벨의 선수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무적의 무에타이 파이터가 바로 쁘아까오 포.프라묵이다.

2006년 K-1 MAX 제패에 빛나는 제왕 쁘아까오
K-1 MAX는 K-1에 비해 선수간의 실력 차가 적고 선수층이 훨씬 두텁다. 특히 일본내에서도 -70kg 체중의 선수들은 예전부터 꾸준한 경기를 가져왔었고, 신일본이나 전일본이 가지고 있는 선수층만 해도 K-1 헤비급이 가지고 있는 선수층보다 질적, 양적으로 모두 월등한 수준이었다. 단지 기술 레벨만 비교한다면 K-1 MAX의 선수들은 K-1 선수들보다 적어도 두수에서 세수는 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헤비급 파이터 자체가 부족한데다가 그 대부분은 복싱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량급은 다르다. 원래 경량급의 체중을 가진 사람 자체가 월등히 많은데다가 태국과 일본이라는 거대한 입식타격 강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K-1 MAX의 관중 동원력은 아직 K-1에 미치는 수준은 아니다. 이 때문에 이벤트 수 자체가 적고, 월등한 선수층에 비해 적은 이벤트는 선수들의 가혹한 경쟁을 유도해, 결과적으로 더욱 높은 기량의 선수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K-1 MAX 세계제일결정토너먼트에서 우승하기란 K-1 월드 GP에서 우승하기보다 배로 어렵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체급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비교는 무리일지 모르지만, 한 선수가 여러 차례 우승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K-1에 비해 K-1 MAX는 매번 챔피언이 바뀌었다는 점만 보자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가혹한 무대에서 2번의 우승을 달성하며 사상 최강의 K-1 MAX 파이터로 추앙받는 인물이 바로 쁘아까오인 것이다.

 

 

태국의 유망주에서 K-1 MAX의 제왕으로!
1982년에 태어난 쁘아까오는 원래 다른 낙무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태국에서 오랜 기간 무에타이 시합을 가져온 선수다. 엄누워이 페더급/라이트급 챔피언, 태국 프로무에타이 챔피언 등을 지낸 그는 태국의 양대 무에타이 무대 중 하나인 룸피니에서 랭킹 2위까지 랭크된 바 있는 실력자다. 당시 차세대 룸피니의 제왕감으로 여겨지던 쁘아까오는 22세 때 무대를 일본으로 옮겨버렸기 때문에 태국 메이저 무대(룸피니, 라자담넌) 정복 기록은 달성하지 못했다. 공식전적은 120전이 넘는다고 하지만 본인조차도 자기가 몇 번을 싸웠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숱한 싸움을 거쳐온 쁘아까오는 K-1에 나오기 전에 이미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던 셈이다.

2004년 K-1 월드 MAX 개막전(2004. 4. 7)에 모습을 드러낸 쁘아까오는 뉴질랜드의 조단 타이를 3라운드 판정으로 누르고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그러나 이 당시까지 쁘아까오가 일으킬 돌풍을 예상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실제로 K-1이나 K-1 MAX 무대에서 낙무아이들의 전적이 썩 좋지 못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K-1 초창기에 참전했던 창푸아 키아송릿이나 MAX의 가오란 등이 그렇게 눈에 띌만한 강함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쁘아까오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해 7월 7일 국립 요코하마 경기장에서 열린 K-1 월드 MAX 결승대회에서 쁘아까오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의 킥과 무릎을 내세우며 간단히 우승을 거머쥐었다.


특히, 마사토와의 결승전은 충격 그 자체였다. 2003년 월드 MAX 우승을 거머쥐면서 K-1 MAX 최강이라고 여겨졌던 마사토를 일방적으로 두들겨버린 쁘아까오의 파괴력은 관객들에게 전율을 느끼게 했다. 홈 어드벤티지와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시합에 임했던 마사토는 자신의 라이벌 알버트 크라우스를 준결승에서 판정으로 누르고 결승에 진출한 상태였다. 그리고 알버트와의 시합은 누가 보더라도 마사토의 우세였고, 때문에 마사토의 우승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쁘아까오에 비해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평소처럼만 싸워준다면 마사토가 무난히 우승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쁘아까오의 미들킥은 마사토를 계속 휘청거리게 했고, 마사토의 장기인 펀치와 킥의 적절한 컴비네이션과 거리 조절은 쁘아까오를 상대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비록 텃세에 가까운 판정 때문에 연장 승부까지 가기는 했으나 그것으로 승부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당시 알버트 크라우스와 마사토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K-1 MAX에 혜성처럼 등장한 쁘아까오는 이런 세력 균형 자체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절대왕자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쁘아까오 K-1 MAX 최초의 패배. 그러나…
K-1의 룰은 원래 목잡기(빰) 상태에서 니킥을 가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빰이 길어질 경우만 아니면 어느 정도 공방은 허용했고, 사실 이것은 심판 재량에 가까웠다. 그러나 쁘아까오의 등장은 K-1 MAX 뿐만 아니라 K-1의 룰까지 모두 개정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바로 목잡기 상황에서 무릎공격을 1회로 제한하는 규정이 2005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규정은 명목상으로는 “거인 파이터들의 득세를 막고 보다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서”라는 그럴 듯한 이유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쁘아까오의 독주를 막기 위해 무에타이식 빰 공격을 완전히 봉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펀치 테크닉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쁘아까오에게 이런 룰 제한은 큰 영향을 주었고, 결국 알버트 크라우스에게 K-1 MAX 최초의 패배를 당하고 만다.

쁘아까오는 아직 복싱 테크닉보다는 무에타이 기술에 훨씬 의지하고 있는 선수였다. 복싱 스타일이 더 큰 점수를 얻는 K-1 MAX 무대에서 2004년 우승을 차지한 것은 그만큼 그가 특별한 파이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들킥과 니킥에 한정된 쁘아까오의 공격패턴을 공략 못할 알버트 크라우스가 아니었다. 1회로 제한된 빰 공격 타이밍을 알버트는 집요하게 파고 들었고, 쁘아까오의 킥은 알버트의 절묘한 스텝 인과 카운터 펀치에 무력화 되었다. 이 시합 도중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다운까지 당하며 쁘아까오는 K-1 MAX 진출 후 최초의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미 다케다 코조와의 대결에서 이런 패턴의 공격에 고전한 바 있는 쁘아까오는 알버트에게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약점을 절감하게 되었다. 알버트 크라우스는 이미 쁘아까오의 선배인 가오란 가오위치를 2002년 MAX 결승에서 격파한 바 있었기 때문에 이 시합을 기점으로 ‘무에타이 킬러’라는 자랑스런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 K-1 월드 MAX 결승전에서 쁘아카오는 앤디 사워를 상대로 판정패를 당하며 2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 결승전은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당시 쁘아카오는 토너먼트 1회전에서 자담바에게 의외의 고전을 했고, 알버트 크라우스와 판정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면서 체력이 바닥나 있었다는 것. 반면 앤디는 코히루이마키, 야스히로 카즈야 같은 비교적 쉬운 상대들을 꺾으며 체력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 대회 이후로도 쁘아까오보다 앤디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원매치로 다시 붙으면 쁘아까오가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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