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미유 끌로델의 시
이제 나는 몸을 빼려 한다.
사랑으로부터, 세상의 비웃음 으로 부터
사랑하는 폴, 일찌기 너를 따라 중국으로 가고 싶었지만
내겐 건너지지 않는 바다 하나가 너무 깊었다.
이제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겠다.
로뎅이란 바다를 건널 수 있겠다.
폴,나를 재촉하는 인어의 금빛 플루트 소리 들리는가
저 황홀한 빛
꿈 하나를 깨는 데 일생이 걸렸구나
지지 않는 햇살 같은 바다의 쪽빛 명성을 위해서
나는 죽어서도 더 불행해야 한다.
로즈는 내 삶의 터정이오 그..녀..를..외..면..할..수..는..
로뎅의 목소리는 나를 할퀴며 자라는 겁없는 손톱이었다.
밤마다 깨어지며 덮치는 조각상들,초인종은 울리지 않고
작업실 거미들은 탄성좋은 타액으로 나를 엮었다.
그의 등을 향한 날들의 혼미한 정신
찢긴 팔다리 타고 올라 나의 뇌수를 뽑아내던 잔혹한 그리움의 대롱
맨발에 거리를 헤매도 바다는 끝내 내 발바닥 적셔주지 않았다.
아, 일몰에 젖은 사람들의 눈빛이 나를 찢어발기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폴 네가 맞은편에 서 있기도 했던가
배에 올라야 할 시간이다,사랑하는 폴
파도위 바람처럼 가벼워지는구나
너무 무거웠던 짐,때가 되면 스스로 떠나지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사랑, 이제서야
고모는 몽드베르크 정신병원에 있었다,
라고 말할 조카들의 병아리 같은 입
훗날이 미안할뿐이다...
까미유끌로델
프랑스 페렝 타르데누아에서 태어난 여류 조각가.
그녀와 로뎅의 러브스토리는 미술계의 유명한 일화중 하나다.
로뎅과 맺은 내연의 관계로 오히려 더 유명한 조각가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독립된 예술가였으며 로뎅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다재 다능한 조각가였다.
그러나 불행이도 그녀의 작품세계가 아직 온전하게 평가받지 못하고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각가의 길을 일찍이 선택한 젊은 까미유끌로델은 17세에 이미 아카데미 콜라로시에서 조각가 수업을받는다.
1885년 로뎅과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로뎅의 작업실에서 모델과 조수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미 1888년에 발표한 로 극찬을 받으며
전도가 매우 유망한 조각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미술사에서는 로뎅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그녀의 위상이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물론 근대 조각가의 거두 였던 로뎅의 그림자에 가렸겠지만
나중에는 로뎅의 보이지 않는 온갖 방해로 인해
제대로 조각의 꿈을 펴보지도 못하고 정신병 증세로 시달리다
말년에 정신병동에서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