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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학을 다닐 당시에는 객관적 세계를 분석하는

김기백 |2007.06.02 15:41
조회 15 |추천 0

과거 대학을 다닐 당시에는 객관적 세계를 분석하는 주력했다. 요즘에는 군대에서 갇혀있는 신세이다보니 나의 내면을 분석하는 일에 치중하는 것 같다.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전부터 칼융 심리학을 보고싶었고, 계속 의식은 하고 있었지만 쉽사리 실천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책도 안읽는 상황에서 내가 읽어야할 '객관적 세계'의 분석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보고싶었던 칼융심리학 해설서를 보고 있다. 표면적으로나마 알고있었던 무의식. 그리고 프로이트 심리학. 내가 꿈꾸는 나의 무의식이라는 세계가 단순히 성과 관련되어 있어서 나의 불만족한 욕구로만 치부해왔던 것을 많은 부분 뒤집어 버렸다.

 

 칼융은 전형적인 학자다. 자신의 일생을 심리학 연금술 신화학 자연과학 등 기타 여러 방대한 양을 연구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그의 연구 결과는 프로이트의 연구 결과를 한층더 발전시킨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리비도(정신적 에너지)는 프로이트의 성에너지에 한정되지 않았으며, 과거로 부터오는 태고유형,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와 같은 핵심적 키워드로 분석했으며, 나는 그것에 대해 전적으로 맞다고 생각했다.

 

 칼융은 19세기말 20세기 초 학자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열전의 시다. 혁명으로 넘어가는 시대이다. 나는 실존주의 철학을 넘어 구조주의 철학으로 넘어가는 시기이기도 한 칼융의 연구업적은 소쉬르의 구조주의적 토대에 이룬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어쨋든 어떠한 철학의 사조나 명분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질에 좀 더 접근하냐의 문제인다.

 

아이러니 한것은 칼융의 분석 그 자체는 무의식을 분석하고 있지만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틀(도구)은 과학의 성격(구조주의적 방법론)을 빌리고 있다. 그것은 의식의 세계이다. 어차피 마찬가지 문제인거 같다.

의식의 저변이 넓어질 수록 이에 반하는 무의식의 저변도 넓어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가 느낀 칼융의 한가지 다른점은 각자의 개인의 정신에너지의 분배에 대해서는 개성을 인정했고, 또 개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체계만을 세우는 그리고 그것에 분류만을 하는 심리학자와 다른 특징이다. 겸손하기도 했고, 그리고 인간을 존중했던 칼융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합리성으로 해결하지 못한 부족한 한 부분(인간미, 개성 피드백)을 통해 절묘하게 채웠다.

 

그런데 글을 쓰다보니까. 쓸떼없는 말만 나왔다. 결국엔 나의 생각은 나의 꿈을 분석해보고 의식을 분석해본 결과 별문제가 없었던 것이다.(이말은 고로 나의 컴플렉스에 대해서 접근하지 못했다는 말..) 결국 니 자신을 알라가 답이다. 더욱 날 알기위해 성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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