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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기독교를 배타적인 종교라고 폄하하지마십시요..

차윤진 |2007.06.07 16:38
조회 6,569 |추천 413

 

 

많은 사람들이 다른 종교는 배타적이지않고 포용적인데 기독교만 그리고 유독 한국기독교만 특별하게 배타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것이 종종 자신들은 기독교인이 되지 않은 이유라고 합니다.

 

과연 기독교가 배타적인 종교일까요?

사전적인 의미로 '배타적'이란 말의 뜻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려 하지않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독도문제에 대한 우리국민의 입장은 배타적입니까?

아니면 우리입장에서의 정당한 주장입니까?

그것은 우리입장에서의 정당한 주장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근거로 특정한 교리체계를 세우고 그것은 외부에 표명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의 정당한 주장일 뿐입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의 여러다양한 가르침 사이에서 기독교인들이 일관적으로 자기 종교의 가르침에 반하는 사실들을 선택.거부하는 것은 자기 신앙의 순수성 보호차원에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일 뿐 결코  배타적이란 이름을 부치며 정죄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야훼 하나님입니까? 증산도에서 말하는 강증산 상제입니까?

예수그리스도는 성자하나님입니까? 불교.이슬람교에서 말하는 단순한 성자.선지자입니까?

영원한 지옥은 존재합니까? 다른 종교의 가르침처럼 존재하지않습니까?  

 

이런문제에 있어서는 이것이며 저것일 수 없고 어떤 절충도 없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무엇은 선택하여 믿는다고 해서 그에게  배타적이란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교는 배타적이지않다고 말합니다. 

그럼 묻겠습니다. 불교에서는 불.법.승에 귀의하여 8정도의 수행을 하지않은 기독교인이나 이슬람교인들도 (그들 방식의 구원인)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 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까 아니면 그들만이 해탈 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까? 

불교에서는 기독교인들을 향해 천지만물을 창조한 인격신 같은 (존재하지않는) 고기적 존재를 믿는 사견과 미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폄하합니다. 

불교에서는 그들만이 진리를 정견하고 있으며 그들만이 구원(해탈)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민족종교인 증산도.대순진리회 역시 겉으로는 모든 종교를 인정하고 있는 듯하나 기독교인들에게 환부역조(자기조상이 아닌 이방신 야훼를 아버지로 섬기는 죄)의 대죄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경전(도전)에 강증산이 기독교에 가르침에 대해 하나 취할 것 없는 가르침이라 말하며 기독교 경전을 불태워버리는 내용을 담고있습니다. 그들은 후천개벽시 자신들의 가르침대로 수련을 하며 자신들의 방식대로 천지신명을 잘 섬긴 사람들만이 결국 구원받게될 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교파 중 가장 포용적이라는 천주교에서는 갈라져나간 형제라고 칭하는 기독교(프로테스탄트)교회들에 대해서 아직도 그 교회들을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하지않고 있습니다. (박도식 신부의 '천주교와 개신교' 36 P ) 겉으로는 칼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란 개념까지 표현하여 다원주의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듯하나 뒤로는 '천주교와 개신교' 같은 책을  계속 찍어내며 개신교인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진정한 회개도 할 수 없는 것 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가 배타적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식사도 잘 같이 안합니다. 그들은 남의나라에 와서 남이 먹는 음식에까지 참견할 정도입니다.  

 

여러분이 기독교인이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해나가는 것을 끝내 배타적이라고 한다면 저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결국 배타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만이 다른 종교처럼 가식적이고 위선적이지않게 겉 다르고 속다르지않게 일관적으로 정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며 살아간다고 말하겠습니다.   

 

기독교인이 절대적인 자기확신을 가지고 배타적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자기의 신앙을 표현하는 것은  그들의 신앙이 절대무오한 성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때문입니다.  

 

불교인에게는 그런 경전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석가모니 이전과 당대에 존재한 인도 제 종교의 가르침을 비판.흡수.차용.종합.개조하여 편집한 책이있을 뿐입니다. 이는 불교의 우주론만 살펴보아도 명백합니다. 불교의 기본적인 진리인 사성제의 가르침만 유심히 보아도 그것은 보편적인 진리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불교비판' 이란 책을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증산도.대순진리회에는 그런 경전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시대에 따라 교주 강증산의 삶을 미화하고 신격화하며( 김탁이 쓴 '증산도학' 이란 책의 표현대로) 변천하는 책이 존재할 뿐입니다.

 

천주교의 가르침에는 인간적인 생각이 보태어져있습니다. 얼마전 오랜세월 믿고 고백해온 유아림보 교리에 대해 교황 베네딕토 16세 스스로 그 교리는 성서에 의해 명확한 지지를 못받는 신학적 견해라고 입장을 변경한 사건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처럼 성경에 바탕을 둔 자신의 신앙적 진리를 절대무오한 진리라고 말할 수 없기에 그렇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기독교인 형제.자매 여러분 !

성경과 기독교 진리의 절대적인 근거와 다른 종교와의 근본적 차이와 진정한 종교적 포용과 관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대로 기독교의 절대적 확신을 근거로한 신앙표현행위에 대해 배타적이란 말을갖다붙이며 폄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를 택했고 그 진리안에서 행하는 것일 뿐입니다.   

      

 

      

 

 

 

추천수413
반대수2
베플김민수|2007.06.07 17:28
이런 글 볼때마다 개신교는 갈때까지 갔다는 생각밖에는 안드는군요..단군상 논란,제사의식,붉은악마..등등 여타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 유독 왜 개신교만 배타적인 입장인 것이죠? 단군상 건만해도 개신교의 논리는 특정종교의 우상숭배라고 말했지만 다른 종교도 그러던가요? 불교나 천주교가 단군상 목자르고 페인트 칠한답니까? 여타 이슈에 있어서 개신교는 오로지 다양성을 외면한채 모든 것들을 "성경"과 개신교의 잣대로만 판단하고 그외 반론이나 반대에는 사단 취급하며 하위개념으로 보고있죠..각각의 종교논리를 보면 분명히 서로 상반되는거 맞습니다...단편적으로 본다면 맨날 헐뜯고 치고 받고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고 자기들 안에서의 종교는 자기들것만의 참인것이고 다른 종교의 논리는 거짓이 되죠..그것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알고있는 사항 입니다.그렇다고 대 내외적으로 경전 하나만 가지고 종교외에 [모든 분야]에 대적용시키며 타인에 대해 강요하는것은 개신교밖에 없습니다. 개신교가 "배타적"이란 소리를 듣는것은 자기 범주를 넘어선 행위들 때문입니다..(
베플진형탁|2007.06.08 05:27
일단 기독교의 정의에 대해 잘못 알고 계신 부분을 지적하자면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으로 천주교와 개신교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지 개신교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글에 기독교라는 말을 쓰시면 천주교까지 싸잡아 욕먹는 경우가 생기니 단어사용에 유의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주교인으로 한국 개신교와 함께 기독교인이라는 말을 들을때가 가장 치욕스럽습니다.
베플이규학|2007.06.08 14:32
같은 기독교 인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글 남깁니다. 위의 분의 말씀이 맞다 아니다가 아니라 왜 특별히 기독교가 힘을 잃었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입장을 변명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 소금이라 말합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분명히 버려지고 밟힌다고 경고합니다. 반대로 빛의 역할을 감당하면 사람들은 빛을 등경아래 두지 않고 등경위에 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밟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소금으로서 그 맛을 잃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고 등경위로 올려지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가 빛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논쟁도 지겹습니다. 저도 기독교 인으로서 안티 기독교분들의 마음이 얼마나 굳어져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녹이는 것은 논리적인 반박과 대응이 아니라 우리가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츰 우리 모습에서 다시 소금의 맛과 빛의 역할이 살아날 때 조금씩이지만 세상이 우리를 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세상이 우릴 등경위에 두는 날까지 참고 선을 행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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