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익의 국토기행 - 51한반도의 지정학적 꿈 - 한강하구(漢江河口)
‘한강의 기적’도 지도자의 혜안 믿고 따른 국민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실이지
저 산줄기가 송악산(松嶽山)이고, 왼편 하구 쪽으로 예성강 하구가 보이지?
지금부터는 정신 바짝 차리고 잘 보게.
강의 하구를 이리 막고 저리 열면 동아시아 최고의 하항(河港)이 만들어질 걸세.
인천항의 적체는 여기 하항이 만들어지고 나면 일거에 해결이 되는 거지.
해항, 하항(sea- and riverport)에 인천, 김포 공항(airport)까지 있으니
이제 정보항(teleport)만 있으면 삼위일체(triple port)가 다 갖추어지는 것 아닌가.
한 반도의 지정학적(地政學的) 꿈은 무엇일까? 러시아 동진(東進)의 희망이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 부동항(不凍港)에 있고, 중국의 꿈이 동아시아를 품는 중화대국(中華大國)에 있다면, 우리 한반도의 꿈은 무엇일까? 일본열도가 천년을 두고 버리지 못하는 욕심이 대륙으로 가는 길에 있다면, 우리 민족이 이 땅에 몸담고 살면서 반만년 꾸어 온 꿈은 과연 어떤 것일까?
여기는 연미정이라고 하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서해와 강화해협으로 갈라 빠지는 모서리지. 오늘 정치지리학세미나는 이곳 강화도 북단에서 시작하네. 저기가 북한 소가 떠내려와서 평화소로 컸다는 그 유도 아닌가. 대안에 북녘땅을 마주한 한강하구에 섰으니 꿈을 얘기해 보세나. 지정학의 르네상스를 얘기하고, 심장부(Heartland)와 주변부(Rimland)의 의미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추적했으니, 이제 분단과 통일의 공간적 의미를 곱씹어 보세. 뭔가 생각이 있을 법한 현장, 한강하구에서 말이지.
한강수(漢江水)라 깊고 맑은 물에 수상선(水上船)타고서 에루화 뱃놀이 가잔다.
아하 아하 에헤요 에헤요 어허야 얼싸함마 둥게 디여라 내 사랑
이 땅의 청년들아, 지리학도들아, 우리에게 지정학적 꿈이 있는가? 어떤 꿈이 있는가? 그대들은 천년만년 묵은 꿈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가? 어떤 꿈인지 어디 여기 풀어놓아 보게나. ‘지정학적으로 불리하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을 양이면 아예 말고. 그건 못난이 개꿈이거든. 중국을 헤집고 대륙으로 나가는 것이라면 통이 크긴 한데, 그래서 무엇을 얻었던가? 바다 건너 일본을 따라잡는 것이라면, 야무지기는 하지만 그래서 또한 무엇을 얻겠는가?
눈을 감고 세계지도를 펴게. 그리고 멀리멀리 바라보게. 동해 너머에 일본이 있고 북한 땅 지나면 중국이 있지만, 그 너머에 더 크고 넓은 바다와 세상이 보이지 않는가. 태평양을 한눈에 보게나. 그리고 아시아 대륙을 죽 훑어보게나. 가장 큰 바다, 가장 큰 대륙을 무대로 종횡무진 누빌 꿈을 꾸어야지. 서북에 대륙세가 있고, 동남에 해양세가 있다면 반도에 반도세가 있는 것이 이치 아닌가. 그걸 없는 것으로 치부하면 그게 곧 제국주의의 지정학이지. 반도세가 버티지 못하면, 이 땅은 외세의 교두보가 되거나 동네 부두가 되고 만다니까. 이른바 완충지대로 전락하고 만다는 말이지. 분단의 지정학은 그래서 땅의 운명이 땅의 이치와 함께 사람에 달려있음을 일러주는 것이니, 부디 이것을 잊지 말게나.
세(勢)가 무엇인가? 총이겠는가, 돈이겠는가, 아니면 그 둘을 합친 것이겠는가? 물론 무력이 없인 평화를 지켜낼 수가 없지. 돈이 없이는 백성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기르지 못하고. 그러나 우리가 그 둘을 얼마나 가져서 남을 굴복시키고 부리겠는가. 그리고 우릴 따르라고 하겠는가?
내가 싫어하는 말이지만 작은 나라라고 하지. 작은 나라가 큰 나라 되는 길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종대왕께서 육진을 개척하시되 한글을 지으시고, 퇴계 선생께서 벼슬을 버리시되 학문을 탐구하시고, 김구 선생께서 임정(臨政)을 이끌면서도 문화대국을 말씀하신 까닭을 알겠는가? 문화의 기반이 힘에 있지 않고, 힘의 기반이 문화에 있음을. 투쟁으로 되는 일이 있고, 돈으로 살 수 있는 일이 있지만, 참 문화의 핵심은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네.
무엇이 중하고, 무엇이 값지며, 무엇이 보람인지를 바로 알아야 하는 걸세. 남들이 거기에 승복하고 따라주면 그걸 덕이라고 하네. 덕을 배우고 익혀 행함이 또한 앎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면, 문화는 덕의 토양 위에 자라난 지식의 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창의적 지식이야말로 문화의 핵심이 아니겠는가. 땅에 나서 하늘을 우러르는 덕을 가지고 대양과 대륙을 아우르는 문화를 꽃피우는 것, 그게 우리의 꿈이 아니겠는가?
이제 보이는가? 본래 꿈이란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담기는 것이라네. 그리고 우리네 꿈은 없는 것을 탐하거나 남을 못살게 굴어 얻는 이익에 있지 않다네. 그래도 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면 저 강을 바라보게. 물줄기 서로 기대어 감고 풀면서 개펄도 펼치고 백사장도 남기고 또 섬도 만들지 않나? 그러면서도 쉼 없이 바다로 흘러가는 게지. 태백에서 발원하여 충주, 여주를 거치고, 금강산에서 시작해 일곱 댐을 거친 물이네.
라인강 물은 알프스에서 시작해 북해로 들어가기까지 일곱 번을 도시에 들어갔다 나온다던데, 그런데 한강에는 한번도 사람 사는 세상에 안 들어 가보고 곧장 바다로 가버리는 물이 태반이라네. 물을 생명의 원천이라고 한 고대 철학자를 웃었지만, 그게 결국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생명수를 우린 그냥 그것도 더럽혀서 버린다는 것이지. 다른 자리에선 물 부족을 얘기하면서 말이지.
한강수에 임진강, 예성강 물을 더해 바다 같은 강물 되어 황해바다로 흘러드는 저 물길이 반도 중부의 젖줄이라네. 일천 이백 리 유로가 삼만 오천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유역에 걸쳐 크고 작은 물길들을 모아서 여기까지 흘러왔지. 온갖 목마른 것들을 축이고 뜨거운 것을 식히고 더러운 것을 씻기면서. 저녁 햇살이 반사되어 역광에 눈이 부시지마는 맨눈으로 똑똑히 보게. 빛이고 냄새고 허투루 지나치지 말고. 구성진 경기민요 가락이 바람결에 들리는구먼.
앞강에 뜬 배는 낚시질 거루요 뒷강에 배는 임 실러 가는 배란다.
아하 아하 에헤요 에헤요 어허야 얼싸함마 둥게 디여라 내 사랑.
이 보게들, 무릇 기적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한강의 기적’도 실은 기적이 아니라네. 시대와 세상의 구도, 그것을 꿰뚫어 본 지도자의 혜안과 믿고 따른 국민의 눈물겨운 노력이 만들어낸 결실이지. 그대들이 보기에는 인생의 즐거움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일벌레들 같겠지만, 그리 안하고 어찌 오늘이 있었겠는가. 기성세대라고 왜 맛 있고 재미 있고 편한 것이 싫겠는가. 왜 낭만이 없고 성질이 없겠는가. 하지만 지금 이런 넋두리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생색을 낼 줄도 변명을 할 줄도 모르는 세대인 걸. 다만, 그 꿈이라는 게 꿈자리로나 해몽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지.
내가 하필 왜 여길 오자고 했는지 이젠 짐작이 가는가? 그렇지. 분단의 현장, 동서로 강이 흐르되 남북으로 사람이 오가지 못하는 곳, 그리하여 강의 진정한 흐름이 정지된 곳을 그대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네. 세상천지를 다 가고도 북한 땅을 못가는 지리학자가 사랑하는 후배 제자들에게 여길 꼭 보여주고 싶었다는 말이지. 한반도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잠재력이 큰 땅, 그러나 용렬스럽게도 남도 북도 쓰지 못하는 땅이 되어 있네. 서울의 관문이라는 점잖은 말을 썼지만 더 직설적으로 말해볼까? 땅을 유기체로 본 이들의 생각을 빌리면 여긴 ‘서울의 목줄’이라고. 그래서 병인ㆍ신미양요 때 저들은 뱃머리를 이리 들이댔고, 맥아더는 인천에 상륙작전을 편 것이거든.
이제 자리를 옮겨 보세. 여긴 서북단의 98고지, 제적봉(制敵峰)이라네. 강 건너 멀리 왕관처럼 생긴 저 산줄기가 송악산(松嶽山)이고, 왼편 하구 쪽으로 예성강 하구가 보이지? 지금부터는 정신 바짝 차리고 잘 보게. 강의 하구를 이리 막고 저리 열면 동아시아 최고의 하항(河港)이 만들어질 걸세. 로테르담, 함부르크, 르아브르에서 보듯이 하항이 해항보다 유리한 건 알겠지? 해일에 안전하고, 하운과 결합하고, 육로에 연접하고. 더구나 우린 남북 하안에 각각 구미대로 제 깜냥만큼 만들어 쓰면 그만 아니겠나? 인천항의 적체는 여기 하항이 만들어지고 나면 일거에 해결이 되는 거지. 해항, 하항(sea- and riverport)에 인천, 김포 공항(airport)까지 있으니 이제 정보항(teleport)만 있으면 삼위일체(triple port)가 다 갖추어지는 것 아닌가.
동북아 중심은 그렇게 만드는 거야! 미국 같았으면 이 말끝에 ‘멍청아!(stupid!)’를 붙이는 건데... 아무튼 나는 그런 그림을 그리네, 꿈을 위한 무대장치로 말이지. ‘개성공단’이 순조롭다니 믿고 싶네만, 십 년 전에 나는 그걸 남북협력공단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
자네들이 그럴 듯 하다니 조금 더 그려 넣어 볼까? 인천공항이 들어선 영종도에서 강화를 가로질러 저 강 건너 개성(開城)으로 바로 길을 내는 건 어떻겠는가? 다리를 놓건 해저터널을 뚫건 연결을 하자는 말이지. 북쪽 사람들이 허브공항을 이용하는 데 인천시내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내려오게 하자는 것이지.
그리고 또 뭐가 있느냐고? 꿈은 끝이 없는 거라네. 개성 근교 예성강 연안에 통일수도 만들자는 안을 글로 쓴 적이 있는데, 읽어봤나? 개성에서 배천, 연안 가는 나루터에 벽란도라고 있지. 거기서 당나라 오가는 배가 떴다는구먼. 신수도라고? 표나 계산하는 정략 차원의 잔꾀 내지 말고, 동아시아 이끌어갈 문화대국의 수도, 남북한 백성들 모두가 새 천년을 노래할 그런 수도를 그려야지.
나는 해주에서 서산반도에 이르는 지역의 그림을 대경기만(Great Gyeonggi Bay)이라고 명명하였지만, 그거 잘 만들면 동경만(東京灣)은 바다 격한 걸로 제칠 수 있어. 북경(北京)이나 상해(上海)도 인프라와 제도적 소프트웨어가 아직은 해 볼 만해. 승산이 있단 말이지. 역사가 준 천재일우의 기회인데, 서울의 그 많은 경세가들은 도대체 뭣들하고 있는 거지? 보이는 것에만 매달려서는 안 돼. 문을 닫아 걸어도 안 되고.
양구화천 흐르는 물 소양정을 감돌아 양수리를 거쳐서 노들로 흘러만 가누나.
아하 아하 에헤요 에헤요 어허야 얼싸함마 둥게 디여라 내 사랑.
사랑하는 청년들아, 반도의 미래를 위해 남겨둔 최고의 땅, 남북의 군인이 마주보고 지키는 약속의 땅을 본 소감들이 어떤가? 고지에서 내려가거든 초지진, 광성진으로 가보자. 부근 물가 어느 식당에 들러 막걸리에 밴댕이젓과 순무김치 곁들여 놓고 생활공간(Lebensraum) 얘기를 좀 더 해보자꾸나. 프리드리히 라첼, 칼 하우스호퍼, 비달 들라 블라시와 한스 보벡을 넘어 현대적 개념, 그렇지 바로 그대들의 생각을 말이다. 저 해가 바다로 가라앉더라도 오늘 우린 경기만이 동아시아의 심장으로 박동하는 꿈을 그리자.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노래하자.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글·사진/유우익 서울대 교수(지리학)
yui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