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uy~♥
남자는 참 많은 이야길 준비했다.
오는 길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낙엽 하나가 머리 위에 축복처럼 내려 앉았다는 이야기.
그래서 올려다본 하늘이 눈을 벨 듯 파랗더란 이야기.
오늘 따라 노을이 참 선명하더란 이야기.
노을이 지며 한강 다리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이상스럽게도 가슴이 일렁거렸다는 이야기.
이어폰을 나눠 끼고 나란히 걸어가는 연인을 봤을 땐,
그게 미치게 부럽더라는 이야기..
그 많은 이야기를 마음에 담은 채, 남자는..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그, 제가, 그, 버스 타고 왔거든요. 저, 요즘에 낙엽 많이 떨어지잖아요.
내가 정류장에 서 있는데! 낙여.. 콜록콜록"
너무 긴장한 탓에 침도 제대로 삼키지 못한 남자는
남데없이 기침을 해댄다.
일분 간 기침만 해대는 남자를, 여자는 근심스레 바라보고..
남자는 괜찮다는 시늉으로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간신히 말을 잇는다.
"콜록.. 아이고, 음, 보고 싶었다구요."
..여자가 활짝 웃는다.
남자는 그제야 숨을 쉰다.
The Girl~♥
남자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순간부터
여자에겐 미안한 상대가 많아졌다.
먼저 약속을 해 놓은 친구에게도.
"나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미안해서 어떡하지?"
매일 기대어 놀던 벽에게도.
"나 이제 너랑 하루종일 붙어 있는 거 못 할것같아.
내 체온이 그리울 텐데 미안해서 어쩌지?"
꽃병에 꽃혀 있는 활짝 핀 장미에게도..
"내 사랑은 이제 막 피어나는데 넌 이제 지는 일만 남았네.
미안해서 어떡하니?"
그렇게 여자는 남자를 만나러 간다.
남자는 무슨 말을 하려다 갑자기 기침을 해대고
여자는 저 기침이 끝나면 무슨 말이 나올까.
한껏 긴장을 한다.
기침을 그친 남자는 보고 싶었다 말하고
여자는 그제야 웃는다.
그러곤 남자에게 고백하듯 말한다.
오늘 하루 미안한 상대가 참 많았다고
거리에서 시금치며 고사리 옹색하게 채소를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도
향수를 잔뜩 뿌린 채 나서던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던 흰둥이에게도
바스락,발 밑에 밝히는 낙엽들에게도
몇 번씩이나 가만가만 속삭였다고
"나만 행복해서 미안해요"라고.
〃그남자 그여자〃 아름다운 101가지 사랑이야기
(04. 사랑에 서툰 당신을 위한 열가지 조건 )
MBC FM '이소라의 음악도시' / 이미나(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