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카즈 메라의 슬픈 이야기
어느 연주회
일본 최고의 성악가를 뽑는 자리였다.
8명이 본선에 오르고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았다.
으레 그렇듯이 성악가는 발성을 풍부하게 할 큰 덩치를 지니고 있었는데
마지막 무대에 오른 자는 난장이였다.
순간 사람들은 "까르르" 웃으면서 설마 그가 마지막 연주자라고 여긴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무대의 중앙에 그는 다소곳하게 섰다.
마이크가 그의 머리 위로 치솟아 있기에 작은 키에 맞추려고 어떤 악장이 무대로 나왔다.
무대에 서있던 그를 비웃듯
전에 선 덩치 큰 주자들의 능수능란한 노래솜씨에 이미 결과는 나왔다는 듯
귀찮듯이 마이크 머리를 키에 맞추려 툭툭 쳤다.
마이크는 켜져있었기에 객석에 "퉁퉁"소리가 크게 울려퍼지자 .
관중은 다시 까르르 웃어 버리고 말았다.
웃음 바다가 된 객석 위에 그는 혼자였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는 "난장이"라는 놀림과 집시였던 부모님을 모시고 방랑자와
소외당한 사람들에 묻혀 살아왔고 아무도 자기 곁에 끝까지 있어주지 않았지만
노래는 곁에 있어주었기에 웃음바다가 된 그 객석에서조차 노래는 부를 수가 있었다.
객석은 고독한 그의 사무치듯 고통스러운 절규와 한을,
그러나 운명을 받아들이는 그의 노래에 모두 뭍히고 말았다.
모든 이가 기립박수를 첬고,
비웃음이 눈물로, 난장이는 거인으로 무대에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는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카운터테너
Yoshikazu Mera로 알려지게 된다.
성장 지체병에 걸려 15세 소년의 체구와 목소리에서 성장을 멈춘 일본 카운터 테너 요시카즈 메라
메라 요시카즈는 1971년 미야자키현 태생으로
1994년 제 8회 Kogaku 경연대회(Kogaku competition)에서 1등 입상,
1995년 제 6회 Sougakudou 재팬 음악 경연대회(Sougakudou Japan music competition)에서
3위에 입상했으며 현재 그는 네델란드 국립 장학생으로서 암스테르담의 Swelink 뮤직아카데미
(Swelink Music Academy)에서 공부 중이다.
그는 클래식뿐 아니라 일본 음악과 성가, 뮤지컬 배우에 이르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일본과 네덜란드를 바쁘게 오가며 활동 중에 있다.
1995년 숨어있는 인재를 찾아내기로 유명한 스웨덴의 BIS레코드사는 메라가 속해 있던
"Bach Collegium Japan"을 주목했다. 그리고 BIS 레코드사는 "Bach Collegium Japan"이
연주하는 바흐의 칸타타 전곡을 담은 시디를 발매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2010년까지 60장의 CD를 발매하는 장대한 계획이다.
이 씨리즈에서 메라요시카즈의 노래는 많은 갈채를 받았고 1996년 9월에 발매된 그의 CD,
"Song of Mother/ Japanese Songs" 는 일본 클래식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클래식 CD로서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최근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Mononoke Hime)"의 주제가를 부르는 등
클래식 외에도 여러 장르에 걸친 크로스오버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