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준혁 !
정말 이선수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표현이 옳을듯 하다. 이선수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자그마치 10개 이상의 사이트를 열어 놓은상태인데 좋은글이 나올런지 모르겠다. 여지껏 삼성 선수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항상 생각했던 것이지만 내가 라이온즈 선수들에게 받은 기쁨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심정으로 최대한 나의 애정이 드러나는 글을 쓰도록 노력해보는 수 밖에 없는듯 하다.
*한국의 스탠 뮤지얼*
요 근래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중의 하나가 카디널스이다. 올해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는데.. 그 카디널스 팬들이 100년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뽑는 선수가 바로 '스탠 더 맨' 스탠 뮤지얼이다.
라이온즈 선수들에게 받은 기쁨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심정으로 최대한 나의 애정이 드러나는 글을 쓰도록 노력해보는 수 밖에 없는듯 하다.
몸을 잔뜩 웅크린 독특한 크로스스탠스를 가지고 있었던 뮤지얼은 세인트루이스에서만 22시즌(풀타임 21시즌)을 뛰며 통산 .331의 타율과 함께 3630안타(역대 4위) 475홈런 1951타점(5위) 2루타 725개(3위) 장타 1377개(2위)를 기록한 위대한 타자이다..동시대 투수 프리처 로는 뮤지얼을 상대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멀찌감치 볼 4개를 던져 1루에 내보내는 것"을 추천했다. 상대팀 팬들에게는 보기 싫은 존재였지만 그런 그들도 뮤지얼을 사랑하고 또 존경했다. 뮤지얼은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으며, 그라운드의 신사로 통했다. 1957년 신시내티 레즈 팬들의 올스타투표 몰표 사건이 있을 때도 유일하게 뮤지얼의 자리는 지켜졌다. 늘 스스로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타격에 있어서는 정말 독학생이지 않았나 싶다. 내가 타격을 배울 때 항상 듣던 말이 ‘가볍게 갖다 맞히라’는 거였다. 가볍게만 치면 홈런인데 뭐 그렇게 힘들게 타격을 하느냐는 말이었다. 그런데 말대로 가볍게 친다고 홈런이 되나? 그냥 가볍게 맞히기만 해서는 땅볼이다. 이때 혼자서 타격 메커니즘에 대해 고민했지만, 당시 내 생각을 이해해줄 타격 지도자는 없었다. 혼자 스스로 개발하고 터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모델’로 삼은 선수라도 있지 않는가?
->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많이 봤다. 예전에는 메이저리그 중계가 없지 않았나. 해외에 나가면 무조건 비디오테이프를 많이 구입해왔다. 그걸 보면서 메이저리거들의 타격 자세를 연구했다. 자꾸 보고 연구하니까 공통점이 보이더라. 그들은 맞는 순간에 얼마나 임팩트를 줘 힘을 극대화하느냐에 관심 있어 보이더라. 그냥 갖다 맞히는 것이 아니라 힘을 줘 ‘팍팍’ 때리는 거다. 타격 자세는 방법의 문제지, 그것이 화두는 아니었다. 가까이는 국내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였던 타이론 우즈를 봐라. 국내 선수들이랑 다르다. 굳이 인상적으로 본 선수가 있다면 켄 그리피 주니어였다. => 이 인터뷰를 보니 타격법 고안의 과정이었던거 같기도 하네요;;;>
그러나 96년부터 부터는 뉴제너레이션의 등장과 함께 양준혁의 성적도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된다..이승엽과 신동주 최익성 김한수 정경배 등의 화려하고 젊은 핵타선의 리더로서 양준혁은 자리잡게 된다...
97년 드디어 천재모드 발동한 이승엽과 함께 YY포로 불리면서 그야말로 한구프로야구의 마운드를 융단폭격하기에 이른다..(최강의 클린업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이승엽 양준혁 신동주의 클린업은 타고 투저 시대를 개막한 당시까지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초강력 클린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이승엽 선수가 97년 MVP등등 여러상을 수상하면서 했던 수많은 수상 인터뷰중에 단 한번도 빠지지 않았던 말은 "양준혁 선배가 있어서 올해의 성적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양준혁 선배에게 제일 고맙습니다.."였다.. 여기에는 4번이었던 준혁선수 덕에 투수들과의 정면승부를 많이 할 수 있었다는 확 들어나는 이유 이외에도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입단 3년동안 자신에게 가장많은 가르침을 준 선배이고 가장 많이 배우고자 했던 선배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했던 것인데. 팀의 최고 스타가 훈련이 다 끝난 늦은 시간에 매일같이 배트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 재능 많은 후배는 야구관을 확립했던 것이고 양준혁 선수에게서 배운 것을 밑바탕으로 더 위를 추구하는 대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이말은 이승엽 선수의 좌우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 좌우명은 양준혁 선수의 좌우명이었다고 한다..(MBC성공시대에서) 대타자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던 이 어린 선수가 얼마나 양준혁 선수를 존경했는지 좌우명까지 따라한 모습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양신이 말한 양준혁' 이 인터뷰중에"난 한국프로야구를 동경하면서 자란 세대이고 , 나를 동경하며 자란 세대가 야구장에 있는데 낯선 이국땅에서 은퇴하고 싶지는 않았다."라는 정말 눈물 핑돌게 하는 대목이 있는데 양준혁 선수를 가장 가까이에서 동경하던 선수가 이승엽 선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었다.
양준혁 선수에 대한 평가에서 영양가 논쟁이 나올때면 양준혁 선수는 항상 "나는 위대한 타자란 이름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남들 다른일 할때 야구장에서 흘린 나의 땀만큼은 영양가니 뭐니 하면서 깍아 내리지 말았으면 한다" 라고 단호히 이야기 한다. 왜냐하면 그 엄청난 대 기록들을 이루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진정한 노력을 기울였노라고 자신에게 자신이 있기때문일것이다.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양준혁이고 14년간 그를 봐온 라이온즈 팬들 모두 그 사실을 안다.
*트레이드 ... 그리고 미안함*
양준혁 선수를 생각할때 항상 가슴속 한켠에 어찌 할 수 없는 미안한 기억을 갖고 있다. 98년 겨울 임창용 선수와 1대3 트레이드에 양준혁 선수가 포함되었을때, 해태 친구 한넘이 해태를 마구 탓하면서 이런 바보같은 트레이들 하냐고 역정을 낸적이 있는데, 내 생각에 양준혁 같은 대선수를 데려가는데 왜 그러냐구 했더니 어찌 양준혁이 임창용이란 같은 가치일수 있냐며 버럭 역정을 낸일 있었다. 난 왜 그때 그 친구 처럼 내 선수 양준혁 선수를 옹호해주지 못했는지 아직도 후회가 된다.
어느 블로그에서 양준혁 선수에 대한 글을 보았는데 거기 이런말이 있었다. 오승환 배영수 권혁 권오준 조동찬 모두 삼성의 팔다리 같은 존재들이고 모두 소중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양준혁 선수는 팔다리가 되지 못한다, 양준혁 선수는 라이온즈의 심장이며 영혼이기 때문이다. 백번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라이온즈의 심장이며 영혼인 선수를 떠나보내면서도 내 얄팍한 머리속에 약한 삼성의 마운드가 어떻게 달라질까를 떠올렸었다.. 이게 너무 미안해서 아직도 양준혁 선수 인터뷰나 양준혁 선수에 관한글을 읽을때면 괜히 죄인이 된거 같고 또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나의 감상은 잠깐 뒤로하고... 당시의 트레이드는 냉혹하게 이야기 하자면 약한 삼성의 마운드와 또 당시로선 몇년째 연봉 1위를 기록하고 있던 고액연봉자 양준혁을 처분하려는 여러이유가 맞아 떨어져서 이루어진 것인데. 무엇보다도 이제 20대 초반의 (이승엽 선수보다 한살 어린??) 앞길이 창창한 유망주를 내주더라도 왼손거포를 가져보고 싶었던 김응룡 현 삼성사자의 열망이 이루어낸 트레이드였다..김응룡 사장의 좌타거포사랑은 각별하다는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투수가 대다수인 야구판에 좌타거포가 한명있으면 감독입장에서는 정말 편한일이긴 하다.)
양준혁 선수는 당시 구단에 대한 배신감으로 은퇴라는 배수진을 치나 김응룡감독의 전화 한통화에 해태로의 트레이드를 받아 들인다. "준혁아, 들어와라 딱 1년만 있으면 보내줄께" 라고 했다는데 정확히 1년뒤에 양준혁 선수는 LG로 트레이드 된다.
*선수협 .. FA 그리고 삼성으로의 귀환*
우승청부업자로 왔던 임창용 선수가 거짓말 같이 포스트시즌에서 무너졌던 99년 시즌이 끝나고 프로야구판에 큰 폭풍이 일게 되는데... 바로 선수협파동이 그것이다..(파동이라고 하니 왠지 부정적 늬앙스가 느껴지고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못찾겠네요;;;) 겨울 내내 양준혁 송진우 마해영 강병규 등등 (8명인지 9명인지 그랬는데;;)의 선수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자주 뉴스로 보게된다 스포츠 뉴스도 아니고 뉴스로 ;; 복잡한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그때 주동자로 몰린 위 8~9명을 전원 제명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KBO결정에 분노했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이 문광부 장관의 주선으로 어찌어찌 타결이 되어 위 스타 플레이어들은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오게 되지만 마해영 선수는 보복으로 삼성으로 트레이드 되고 강병규 선수는 염원 하던 10승을 거두고 프로생활의 꽃을 피울즈음 결국 선수협 문제로 프로생활을 접고 만다.(부상때문이기도 하지만.)
2000시즌이 끝나고도 다시 선수협 문제가 불거졌지만 어찌어찌(;) 타협이 되고 양준혁 선수는 2001 시즌 통산 4번째 타격왕을 차지하면서 장효조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그리고 그해 삼성은 또 거짓말 같이 한국시리즈에서 무너지고 만다.
2001시즌이 끝나고 KBO는 FA년수를 1년 당겨 9년으로 하기로 하고 양준혁 선수는 갑자기 정해졌지만 9년을 채운 FA대상자가 되어 LG일본 훈련도중 급히 귀국 FA협상을 갖게된다... 그리고 35억을 달라고 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는데.. 생각해보면 양준혁 선수의 활약이 비하면 그리 과한 액수라고 보기 힘든데;; 당시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엇다. 결국 양준혁 선수는 원소속 구단 LG와 협상이 틀어지고 FA시장으로 나오게 되는데 여기서 선수협 활동을 주도했던 것이 족쇄가 되어 아무도 양준혁 선수를 불러주는 구단이 없었다.
그때도 양준혁 선수를 불러준것은 김응룡 감독이었다.(김감독님 비록 삼성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해태시절이 얄미워서 참 싫어라 했는데 그래도 우리 양준혁 선수 챙겨준것은 정말 고마운 마음 뿐이다.) 양준혁 선수는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김응룡감독이 좌타거포를 너무 좋아라 한다고, 하지만 이승엽 선수라는 당대 최고의 좌타거포가 있는 상태였는데도 양준혁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 했던것은, 양준혁이라는 한국프로야구의 대타자가 이대로 매장되는 현실을 그대로 방치 할 수 없었던 국가대표 4번타자 출신의 명감독님의 마음 씀씀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여튼 옵션까지 합쳐서 최대 27억 2천만원까지 늘어나는 역대 최고액 FA계약으로 삼성으로 다시 돌아온 양준혁 선수는 프로 생활 10년째만에 처음으로 3할 미만을 마크하는 극심한 부진을 보인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10타수 5안타로 맹활약하면서 삼성의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역활을 담당하게 된다. (양준혁 선수 오자마자 우승하는걸 봐서는 양준혁 선수 없었으면 이것도 '양신의 저주'이런게 되는게 아니었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도 해본다.)
*만세타법 *
언젠가 TV에서 스트라익 존을 9개로 나누고 타자마다 강한 코스 약한 코스를 분석하여 데이터 자료화 해서 해설한적이 있었는데(KBS) 양준혁 선수는 8개의 강한코스와 1개의 평범한 코스가 있었다. 실로 차명석 해설위원의 해설과 H2의 저 장면이 확 와닿는 순간이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그런 양준혁 선수가 10년차만에 3할 미만을 마크하자 양준혁 선수에게 먹튀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양준혁은 끝났다는 성급한 판단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말이야 거꾸로 잡아도 3할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잡고도 안되는걸 어쩌랴. 양준혁 선수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타격폼에 수정을 가하기로 하는데..
이렇게 타격폼에 수정을 가하는 기술적 변신이외에도, 양준혁 선수는 FA계약 문제로 지난겨울 부실했던 훈련이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판단하에 혹독한 동계 체력훈련을 한다..
타격폼을 수술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전성기때 타격사진을 보게되는데 그때 타격후 한손을 놓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한국프로야구에서 개발한 최초의 타격폼이란 소리를 듣는 만세타법.
그리고 양준혁 선수는 2003년 2004년 완벽 부활하게 된다.
2003 - 161안타 33홈런 92타점 0.329 (홈런 안타 커리어 하이)
2004 - 151안타 28홈런 103타점 0.315
*라이온즈 팬들의 마음속에 울펴퍼진 한방*
1951년에 메이저리그 전통의 라이벌 자이언츠와 다저스간의 리그순위 동률로 인해서 플레이오프를 치룬적이 있었는데, 샌프란시스코가 9회말에 4대1상황에서 1점을 따라붙고 주자 1,2루 상황에서 보비톰슨의 끝내기 홈런으로 샌프란 시스코가 승리 월드시리즈에 진출한적이 있다.. 그때 보비톰슨의 그 끝내기 홈런은 '전세계에 울려퍼진 한방'이란 이름으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홈런인데.
나에게도 그런 홈런이 있다.. 바로 2005년 한국시리즈 3차전, 8회초까지 1대0의 살얼음판 같은 리드 를 지키던 상황에서 터진 양준혁 선수의 3점 홈런이 그것이다. 그 홈런 한방으로 양준혁 선수의 영양가 논쟁이 사라졌고 또 그 홈런으로 2005년도 한국시리즈는 삼성의 우승으로 사실상 결정되었다.
이승엽 마해영의 감동적인 랑데뷰 홈런보다도 왜 양준혁 선수의 저 한방이 더 크게 내마음을 울린건지는 양준혁 선수의 한국시리즈 3차전후 인터뷰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팬들에게 이제야 보답한거 같아요" 양준혁 선수를 보면서 너무나 행복했는데 그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걸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양준혁 선수의 트레이들 생각할때 마다 너무나 미안해서 미치겠는데 양준혁 선수는 이제야 팬들에게 보답한거 같다고 말했다. 이런 선수가 친 극적인 홈런이었기 너무나도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졌던게 아닐까? 그리고 양준혁 선수는 모든 라이온즈 팬들에게 소중한 존재이기에 감히 라이온즈 팬들 마음속에 울펴퍼진 한방이었다고 감히 이야기 해본다.
미스터라이온즈 양준혁*
오늘 기사중에 브라운이 양준혁 선수를 빅파피라고 부른다는 기사를 읽었다. 땅볼을 치고도 1루까지 전력질주 하고 최고참 최고스타임에도 가장 열심히 훈련하고 가장 진지하게 야구를 대하는 모습이 외국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멋져 보였는가보다..(하긴 야구의 국경이 어디 있겠는가~~) 보스턴 출신인 브라운이 최고의 극찬이라고 생각했던 표현이 바로 빅파피 오티스에 양준혁을 동급화 해주는 거였던 모양이다.
비단 브라운 뿐만이 아니다.. 우리 팬들도 '진정으로 야구를 존경하는 선수' 양준혁 선수를 위해서 양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지 않았던가... 운좋게 건질수 있는 내야 안타를 위해서건 체력훈련을 겸해서건 1루까지 전력질주 하는 양준혁 선수의 모습은 아름답다. (자신의 차례가 되면 마운드를 향해서 힘차게 달려가던 이상훈 선수가떠오르건 왜일까? 이상훈 선수의 그 모습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양준혁 선수의 야구에 관한 기사문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칠려고 한다.
양선수가 생각하는 야구란 도대체 무엇인가?
-> 음, 야구라... (잠시 생각하다) 야구는 시계추라고 생각한다. 보기에는 시계추가 그냥 왔다갔다 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부속들이 따닥따닥 붙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야구도 선수들의 모습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운전을 해주시는 분이 있고, 코칭 스탭과 프런트가 조화를 이뤄 돌아간다. 가장 중요한 부품은 물론 팬이다.
항상 팬들을 향해 밝은 모습 밝은 미소를 보내는 양준혁 선수. 소외된 2군의 선수들을 보고 선수협을 결성하기로 마음 먹었다던 양준혁 선수 당신이 있어서 삼성팬이라는게 정말로 자랑 스러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 근래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팀중의 하나가 카디널스이다. 올해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는데.. 그 카디널스 팬들이 100년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뽑는 선수가 바로 '스탠 더 맨' 스탠 뮤지얼이다...(요즘은 푸횰스라는 최고의 타자의 등장으로 행복한 카디널스 팬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