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은지 두 주가 지나가도록 머리 속이 얼얼하다. 좋은 얼얼함이 아니다, 제길... 올해 들어 처음으로 책을 읽다가 그만 덮어버릴 뻔했다. 오래전에 배웠던 기표로서의 시니피앙과 기의로서의 시니피에가 떠올랐다. 소설 속에는 무수한 기표들이 좋게 이야기하면 무질서하게, 나쁘게 이야기한다면 맥락없이 떠다니고 있다.
“... 만약 세상에 왼손잡이 대 오른손잡이의 비율이 2:8이 아니라, 8:2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세상 사람들은 틀림없이 신을 왼손잡이라고 생각하게 됐을 거야...”
이처럼 무수한 기표들 중 하나가 왼손잡이이다. 이 맥락없는 세상 혹은 가족의 우익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지만 성이 좌이기 때문에 결국 좌우익이 되고 마는...) 할아버지는 좌익 결벽증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 가족의 미아와 미로라는 딸과 아들은 선천적인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수정해야 할 지경이다.
“... 우리는 세상에서 두 가지만큼은 절대 믿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하나는 이념이었고, 다른 하나는 종교였다. 이념이란 무교도들이 춤출 무대를 마련해 준 신흥 종교였고, 종교란 자본주의의 병적인 불평등을 가려 주는 신흥 이념이었다. 이념과 종교에 복속된 인간들은 하나같이 오만하고 독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설의 또다른 축에는 탈북이 있다. 미스터 리, 라고 불리우고 리우리, 라는 어떻게 불러도 같은 이름을 가진 탈북자가 살인범으로 몰리고 기획탈북에 대해 취재를 하는 이준 기자에 의해 진범이 가려진다는 스토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스토리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저 무수한 탈북자와 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은 이 세상의 혼돈을 보여주기 위해 끌어들인 하나의 이슈에 불과하다.
“가족들이 길을 잃었고 괴테가 날 공격해. 할아버지가 덩어리. 아파. 그들은 날 보지 못해. 플라스틱 지구. 세상에 상징과 은유가 사라지면? 예술? 인간이 방해받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예술을 하는 거라면, 내 삶은 예술 그 자체. 왼손잡이 미스터 리. 무질서와 질서. 최초의 악수. 그리고 포옹. 카오스모폴리탄.”
소설의 행보는 종횡무진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볼과도 같다. 은유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를 비롯해서 정희, 두환, 태우(태우는 나중에 현이라는 이복동생을 갖게 된다)라는 이름을 가진 미로의 친구들도, 그 이름들에서부터 수상한 냄시가 가득하다. 게다가 이들 인물들은 미로 속을 헤매고 다니고, 길을 잃은 미아와 같으며, 어딘가 수상하기 그지없는 미스터리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만 같다.
“... 다양성의 시대잖아. 단 하나의 거대한 이데올로기는 폭력이나 다름없어. 진정한 세계화는 여러 개의 세계화여야 돼. 롤랑바르트가 말했어. 유토피아는 더 이상 갈등적이지 않은 무한히 세분된 사회를 상상하는 데 있다고.”
말이 좋아 다양성의 시대이지, 카오스 가득한 세계를 작가는 그와 비슷한 혼돈의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세계는 그저 작고 답답한 카오스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소설은 이 혼돈 가득한 세상을 풀어갈 실마리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소설을 통해 증폭된 카오스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작에서 통속적인 일본 대중문화를 통해 수상하기 그지없는 인물을 창조했던 젊은 작가의 행보는 정말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독창성의 무게를 감내할 수 있는 체력의 부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