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길은 없었다.
누군가 앞서간 흔적이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나의 좌표를 결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모두들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별 이변이 없는 한
그곳에 가기만 하면 맞닥뜨리게 되는 장관도 있다.
해돋이를 맞기 위해 동해안 경포대나 성산포 일출봉을 찾기도 하고
황금빛 낙조의 아쉬움을 느끼려는 욕심에
강화도 보문사 뒷산을 오르거나 태안반도를 찾기도 한다.
이렇듯 이름난 곳에는 지리산의 일출처럼 삼대가 복을 지어야만
간신히 볼 수 있다는 까다로운 조건도 없이, 그저 가기만 하면,
별 이변이 없는 한 늘 약속된 장관이 펼쳐진다.
그러나 전혀 예상도 못했던 곳에서 뜻하지 않게 맞게 되는 느낌이
더할 나위 없이 깊숙히 각인되는 까닭은, 아무리 화려한 장관이라 하더라도
그것과는 바꾸고 싶지 않는 내 삶의 소중한 괘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길을 따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라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왕자가 그의 작은 별에서 슬픔을 좇아 마흔 세번의 일몰을 목격하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슬픔이 복받칠 때면. 해지는 것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야" 라고 했듯이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세계에 접근해 가는 나의 방식이다,
새롭고 이름난 곳은 아니라 하더라도
나의 생애 소중한 흔적을 남겼다면 그곳이 존재하는 필연적 이유가 된다.
그리고 나는 세계속에서 그리고 세계는 나 속에서 서로 어울려
늘 새롭고 자유로운 장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