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설(Hypothesis)들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설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를 의미한다. 설들은 나름대로의 명확한 근거와 제시 가능한 밑바탕을 지니고 있다. 설은 가설을 의미하는데 가설이란 타당한 논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의견들과 상반된 입장차이로 인해 정설로 자리 잡지 못하는 따라서 현재 진행 중에 모든 이 에게 인정되고 있지 않고 있는 주장과 그를 뒷받침하는 논거를 총칭한다. 이러한 설들은 상대 입장 즉 반대 입장의 설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은 창조설과 진화설의 대립된 입장 차이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서 세계는 역사적으로 많은 고찰과 연구와 더불어 신앙적으로도 끊임없는 탐구와 노력을 해왔다. 결국 현 시점에 다다르는 이 두 종류의 설은 아직도 일정부분 대립된 입장 차이를 가지며 타협점과 대립점을 놓고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과거 창조론자들의 입장에서 비과학적으로 설명되는 부분들에 대해 과거 창조론자와 그 입장을 옹호하고 전수받은 현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자들에 제시하는 논쟁으로부터 발단하고 있다. 창조론은 세월과 무관하게 확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일면으로부터 나오는 결과이다. 이러한 태도의 끈을 놓지 않으며 창조론은 신에 의한 창조를 표방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재고할 것은 크리스천들의 입장이다. 창조론의 대부분의 영역은 크리스천들의 차지이다. 이것은 그만큼 크리스천의 창조론의 근거가 타종교의 논거보다 타당해서 라기보다는 크리스트교의 세력이 지구전반에 널리 분포되어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사회는 창조론을 크리스천들의 영역 아래에서 사고하고 있지만 실상 지구상에 존재하는 창조론의 종류와 수는 인간이 창출해낸 신의 수에 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가운데에서도 크리스천의 입장이 창조론의 일반적이고도 분명한 태도와 이야기 구성을 가졌으므로 이것이 널리 통용되어지는 바이다. 익숙히 들어온 창조론의 현실도 더불어 인식하며 대립구도를 해소해야 할 것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된 문제는 끊이질 않고 진행되고 있으며 60억에 이르는 세계인구의 대부분이 이를 끊이지 않는 논쟁점으로 방치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본 연설자의 입장에서 이를 통찰하는 과정에서 나온 해답은 결합의 결과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창조론의 입장과 진화론적 태도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세월과 시간이 오래 지속되어 현 시점에 이르는 과정 중에 과학자들은 종교와 타협을 시작해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소요와 혼란의 시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이러한 문제점들은 대다수 극복해왔다. 예술과 과학이 타협을 이룬 것이나 철학과 과학이 타협점을 찾은 것과 더불어 현대의 과학기반사회에 다다르며 과학은 새로이 종교와의 타협구도를 발견한다는 난제를 선택하였다. 그 과정 중에 과학적 진화론이 종교적 창조론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도 이루어지며 대립구도를 해소하려는 많은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본 연설자와 더불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일정 수의 과학도들은 결합 설을 주장하는 시점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것은 이해하기 용이하게 말하자면 즉 창조론적 입장을 100% 수용하고 또한 진화론적 입장도 100% 수용하는 결과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서로 대립된 관계인 것으로 말할 수 있지만 그와 반대로 이 두 가설들을 합치시켜 같은 하나의 설로 창출했을 때 매우 완벽한 근거를 지닌 논리적 가설이 만들어지며 둘 중 어느 입장에도 해를 미치지 않는 입장으로 탈바꿈한다. 이제껏 들어온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에 대해 많은 인구가 익숙해 있으므로 이러한 창조-진화 결합론이 생소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분한 근거와 이론적 논리성이 있는 이상 다분히 이 총괄적 성격을 가진 가설은 주장될 수 있다. 창조론은 신적인 힘의 동조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비과학적이고 인간의 학문적 입장에서 논리정연하게 말할 수는 없다. 진화론은 인간이 창출한 과학적인 입장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도 근원의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으며 그것은 비과학적인 초월적 영역을 암시하게끔 하는 체계를 갖는다는 성질이 있다. 이렇듯 우리가 이러한 창조-진화 결합론, 다르게는 진화 방법론적 창조론을 제시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각 고전적 입장의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철학자들과 지구상의 근대인들은 여러 종류의 세계를 통찰하려는 시각에 대한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 과정은 세대를 거치면서 고대부터 진해되어 왔지만 중세 이래 대두되었던 신의 존재에 대한 이론 또한 서서히 정립되어 가는 과정을 맞이했다. 18세기 이래로 현대사회에 영향을 미친 낭만주의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며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힘과 그것을 발산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이 있음을 시인한다. 물론 신의 부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실정이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지구인들은 신의 존재를 확실시하거나 심적으로 가벼이 인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확한 맺음이 없는 현실 앞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적 구도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구도는 다분히 해소될 수 있는 내용적 측면을 갖는다. 창조론이 설명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 진화론은 명쾌하게 대답한다. 반면 진화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형이상학적 내용들에 관해서는 창조론이 확실한 입장을 표명한다. 예를 들어 창조론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새로운 종들의 탄생들을 예로 들어보자. 단순히 창조론의 입장에서는 신이 새로운 종을 창조해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창조론의 입장에 타당한 대응일 것이다. 그러나 그 종이 새로이 탄생되고 창조된 결과가 여러 기간을 지나 알맞은 환경에 적응하고 일정 수의 번식 등을 위한 자연적 법칙에 의해 이루어짐은 당연하다. 이러한 과정은 누구에게나 명백히 밝혀진 진화론의 과정이며 누구나 소싯적에 교과서에서 접하는 기초상식에 불과하다. 하물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함은 어리석은 태도로 간주될 수 있다. 반면 진화론은 세상만물의 진화와 변화를 말하고 있다. 진화론은 특히나 생물의 종의 환경에 따른 미래를 논하는 학문이기도 하지만 그와 반대로 진화의 과정을 역추적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근원의 문제이다. 세계적인 진화론학자도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으며 그 근원을 물의 생성에 두고 있다. 그러나 물의 근원과 더불어 물을 생성하는 수소원자와 산소원자의 근원마저도 과학자들은 답변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끝내 이뤄내는 결론은 우주생성설인 빅뱅인데 우주근원을 밝히고자 하는 빅뱅을 가동한 존재에 대한 해답 또한 불투명하다. 결국 진화론학자와 그에 따른 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데 이는 창조론이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이다. 따라서 결국 두 대립된 입장은 각각의 이야기의 구성상으로는 화해할 수 없으나 결론적으로는 융합될 수밖에 없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진화론에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생명체들의 환경적응과정을 명쾌하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evolution을 사전적 의미에서 풀이하면 전차적인 발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다양한 유형의 생명체들이 작고 단순한 형태로부터 복잡하고 고등의 것으로 발전함을 가리킨다. 또한 차선의 의미로 점차적인 변화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진화가 변화되어 발전함을 동시에 가리키는 말의 형태임을 보여준다. 진화의 한자어에서도 이러한 의미가 여실히 드러난다. 進이란 앞으로 나아감을 뜻하는 것으로 점진적인 발전의 양상을 띠고 있음을 말해주며 化의 경우 탈바꿈하여 새로운 체계로의 형태적, 자연적 변화를 일컫는다. 이렇듯 진화란 창조론에서 거듭하여 주장하는 세계탄생의 원리가 아닌 세계의 자연적 발전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은 창조론이 생각하는 의미의 창조를 거역하는 가설이기보다는 보다 우수한 체계의 과정적 논리이다. 진화론은 생물의 원리이자 자연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진화론이 포함하는 영역은 매우 광범위하며 진화의 과정은 매우 조용한 가운데에 이루어지고 있다. 진화의 과정은 우리의 눈에 의해 포착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비밀리에 자연의 원리와 과정 속에 묻혀 진행되어가기도 한다. 세상의 자연계는 인간에 의해서 명명되고 분류되었다. 인간과 자연은 상호 유기적인 관계이지만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자연을 큰 체계로 두고 분류했다. 산업혁명이후 인간계와 자연계는 확연히 나뉘어 지려는 양상을 보이려 한다. 그러나 진화론은 이러한 사회적 세계분류와는 달리 순수한 자연계의 분류를 다루고 있다. 자연계는 광물계와 생물계로 나뉜다. 생물계는 다시 동물계와 식물계로 나뉜다. 동물계와 식물계의 하위범위에는 더욱 세부적인 분류가 존재한다. 인간의 경우 동물계의 한 존재로써 인간은 동물계의 척색동물문중에서 척추동물에 속한다. 척추동물은 지느러미를 가진 생물과 네 다리를 가진 분류를 가지며 인간의 경우 이러한 법칙에 따라 사지상강에 속하고 포유강에 속하며 영장목 진원아목의 동물들 중 하나인 Homo과 Homo속의 생명체 중 Sapiens Sapiens 종으로 분류된다. 이렇듯 인간은 진화론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연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연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진화론자들은 우주탄생원리를 시작으로 진화론의 과정을 설명한다. 150억 년 전보다 그 이전인 200억 년 전에는 우주는 하나의 점에 불과했다. 어느 순간 그 점은 폭발과 동시에 허공의 영역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우주는 여전히 팽창하고 있다. 현 순간조차도 빅뱅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가 생성되는 과정과 동시에 여러 조각난 입자들이 허공을 떠돈다. 허공간이 우주라고 하는 실공간으로 채워지면서 원자가 생성되고 작은 입자들은 무중력 상태의 공간을 떠돌게 된다. 이러한 입자들의 방황은 시간이 흐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입자들은 이동과 동시에 충돌을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작은 폭발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충돌과 동시에 큰 입자가 작은 입자를 파괴하여 또 다른 많은 작은 입자들을 형성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충돌과정에서 큰 입자가 작은 입자를 흡수하는 원리 인데 충돌, 흡수 그리고 파괴의 단계를 거치면서 크고 작은 크기의 괴체들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먼지와 같은 알갱이부터 태양처럼 거대한 크기의 별과 태양의 몇 만 배에 달아는 성체들을 형성한다. 17세기 말 Isaac Newton이 말한 것처럼 생성된 덩어리들의 간에서는 인력과 척력의 원리가 작용했으며 무중력의 우주공간에 중력의 힘이 탄생하였다. 그 가운데 비교적 거대한 별이나 성체를 중심으로 여러 종류의 성체들이 궤도를 그리며 운행하는 행성들이 나타나게 되었고 우주상의 셀 수없이 많은 궤도의 모임들 중 하나가 태양계인 것이다. 태양계의 행성들 중에서도 지구는 교묘한 거리차로 인해 대기를 갖게 되었고 그 대기는 우주를 형성하는 기본원소인 H와 O 그리고 C의 형태로 이루어 졌다. 특이한 점은 O의 존재와 그 양이 태양계를 운행하는 다른 행성과는 눈에 띄는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지구상에 현성된 대기는 H와 O의 결합으로 수분을 포함하게 된다. 그 후 지구 자체중력에 의해 지표위로 낙하하였고 대기와 지표는 두 가지 형태의 수층을 지니게 된다. 지표의 수층은 지구자체중력으로 인해 지표의 비교적 높은 지역으로부터 낮은 지역으로 흐르게 되었고 오랜 시간 바다와 뭍의 영역이 나뉘어 진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는 동안 C원소는 물과 화학적으로 섞이지 않고 물속에서 떠돌며 수분의 영향을 받으며 수분에 적응하게 되었다. 점차 시간이 지속되어 가면서 C원소로부터 활동력이 생기고 그것은 곧 지구상의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의 역할을 한다. 물속에서 점차 생겨난 미생물체들은 번식의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새로운 형질과 새로운 형태의 개체들로 진화하였다. 생명체는 물에 원초적으로 적응했으며 물에서 자유로워진 생명체들 중에는 뭍에서의 생활에 도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이르렀다. 도전의 시작단계에서는 물에서 느끼지 못하는 강렬한 태양광선의 영향력으로 인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점차 뭍과 물에서 모두 서식하는 양서의 움직임이 이러한 진화의 과정에서 비롯되었으며, 비로소 육지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처음 뭍에 상륙한 동물들은 활동에 필요한 다리가 필요했으며 그들의 지느러미는 다리로의 진화를 거듭했다. 그들은 물속에서 지니고 있던 비늘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으나 태양력에 보다 잘 견딜 수 있는 표피를 진화를 통해 얻게 되었다. 육지에 적응하고 육지의 생활이 자유로워진 동물들 중에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표피를 점차 다른 양상으로 진화시켜 털을 형성하였는데 이후 많은 육지동물에게 이러한 움직임은 나타났으며 이러한 진화는 지구공전과 지구자전의 법칙에 순응하여 적응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상황을 암시한다. 육지에 적응한 동물 중에는 높은 곳을 열망한 개체도 있었는데 이들은 수업이 많은 노력을 거듭해 비상으로의 진화과정을 실현시켰다. 그 결과 그들의 뼈는 비어있는 공간을 형성하여 점차 가벼워졌으며 육지동물과는 다른 체계의 소화방식 등의 진화결과를 지니게 되었다. 이렇게 성형된 진화 시스템 아래에서 동물들은 작고 큰 진화의 과정을 여전히 되풀이 하고 있다. 물론 식물의 경우 또한 물에서의 뭍으로의 이동의 주인공인데 동물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진화하였으며 태양력의 영향을 중요한 생장아이템으로 하는 삶의 방식을 택하였다. 그 결과 이토록 다양한 종류의 진화과정을 토대로 하여 생명을 가진 지구상의 모든 개체들은 자신들 나름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다분히 자연계 진행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즉 자연계를 형성한 원동력은 진화의 배후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빅뱅가설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순전히 빅뱅이 단 하나의 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그 점은 어떻게 존재하였고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빅뱅이전의 상태는 현재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물론 그에 따른 후속연구가 진행되었지만 그에 대한 답은 미지수이다. 진화론은 우주 근원설 이외에도 진화과정에서의 근원의 문제 또한 다루고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지만 모든 생명체는 원소 C를 가지고 있다. 인체의 경우도 H2O와 C를 큰 비중을 가지고 내포하고 있으며 생명체가 사멸한 후 수분은 증발되지만 C의 덩어리는 부패할지언정 그 형태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C의 존재를 H나 O와 못지않게 위대한 생명탄생의 도구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C의 근원은 어디이며 C가 H와 O를 만나 이루는 생명이라는 힘은 어떻게 부여되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알 수 없는 우주 원동력을 가동하는 존재의 문제와 또 비과학적으로 해석되어지는 문제점들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의문점을 어느 정도 짊어진 채 과거의 진화의 학설을 진행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타가설과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위에서 말한 진화론의 의문점을 창조론은 너무나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창조론이 제시하는 답은 신의 존재이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은 물론 인간이 감히 알지 못하는 일까지 수행하는 절대자로서의 존재가 바로 신이다. 창조론에서 신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다스리며 세상의 운행을 관리하는 자이다. 특히 이러한 모습은 성경을 통해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성경이외에도 상당부분의 도서나 이야기 속에서 창조론은 거듭 되풀이 된다. 성경의 창조론은 크리스트교의 분포 상 창조론의 상징으로 전해진다. 성경의 창조론은 유일신 여호와에 의해 명암과 육해의 자연의 배경이 standard로 세워지고 그 위에 각종의 생명체들이 얹혀진 스토리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단계적인 창조의 스토리를 지닌다. 성경의 창세기는 세상을 신이 창조함을 이야기하는 기록이다. 그중에도 중심적인 창조의 이야기는 창세기 1장에 기록되어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창세기에서의 이 첫 구절은 창조론의 모토를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창조론의 대표 격이자 매우 일반화되어있는 성경의 창조론도 그것을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은 이들에게 과학적 이해를 도우려고 하고 있다. 성경과 일대일의 상황으로 성경의 사건들과 전반적 내용을 믿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크리스천들은 이를 진리로 정하고 이를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그러나 비-크리스천들과 더불어 심지어 일부의 크리스천들도 성경의 내용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더욱이 창조론은 신화에 가까운 일화처럼 받아들여진다. 다분히 인간이기에 이를 100% 수용하지 못하는 이성적 능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창조론은 진화론의 문제점을 채우는 도구로써의 역할을 한다. 먼저 창조론의 유형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창조론에서 특히나 성경의 창조론에서 제 1 원칙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이다. 창조과정의 첫 단계는 허를 실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혼돈되고 공허함 가운데에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신이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신의 전지전능한 힘으로 명암이 생긴다. 어둠은 원초적으로 존재했던 것으로 제시된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존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빛이 생긴 후 절기가 나뉘고 둘째 날이 되어 신은 궁창을 두어 창공의 수층과 지면의 수층을 구분한다. 이로써 바다와 하늘의 개념이 생기고 기본적인 생태환경이 조성된다. 셋째 날에는 뭍이 드러나게 하고 육지와 바다가 나뉘게 된다. 그 가운데 신은 온갖 식물들을 땅에 세우고 식물들의 번식이 보장되는 상태까지 이른다. 나흘째 되는 날에는 더욱 명확한 절기가 생기고 그러기 위한 수단으로 태양과 달이 창조된다. 다섯째 날 비로소 동물체들이 바다에 자리 잡게 되며 창공에는 새가 날게 된다. 여섯째 날엔 육지의 동물들이 창조되고 그 마지막으로 인간이 창조되는 역사가 기록되어져 있다. 이와 더불어 일곱째 날에는 신의 휴식일로 정해져있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라고 기록하며 크리스천들의 날로 불려지게 된다. 이렇듯 창조론의 창조과정은 삽시간에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여러 학자들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이를 과학적이고 학문적으로 이해시키고 있다. 크리스천들의 입장에서 신앙적인 것으로 덮어두고 아무 의심 없이 믿을 수도 있는 일이라기에는 인간이 가지는 이성의 원리가 이를 보완해주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창조론 과정의 이해불가한 시간상의 문제나 과거에 존재했으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은 종,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현재는 존재하는 종의 존재의 이유를 진화론이 적절하게 답변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이란 특성상 과학에 근거하기 때문에 진화론의 이해도는 창조론보다 속도감이 있다. 그러나 태초부터 인간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도 그에 못지않게 우리의 삶에 영향력을 미친다. 창조론이 고전적으로 사용해온 공격법은 인간의 진화였다. 다시 말해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냐고 질의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질문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경우 학문적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한 종류의 웅변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장하는 것은 옳은 주장으로 일컬어질 수 없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첫 발걸음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것은 현재의 인간과는 다르지만 원초적으로 초기 인류로 분화되면 원숭이와는 다른 뇌용량과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원숭이의 경우 원원아목에 속하는 종으로 원숭이와 인간은 모두 영장목에 속하는 동물이다. 영장목은 진원아목과 원원아목으로 분류된다. 대부분의 원숭이를 포함하는 군인 원원아목은 인간이 속한 진원아목과는 달리 매우 원시적인 원숭이의 형태의 가진 동물들의 무리를 가리킨다. 이보다 비교적 크고 발달된 군으로 진원아목이 있다. 진원아목은 또다시 광비원류와 협비원류로 나뉜다. 이 기준은 콧구멍의 열린 방향에 따라 구분된 것이며 인간이 포함된 협비원류는 진화된 구세대의 원숭이와 유인원 그리고 인간으로 구분되며 진화상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 무리들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이다. 다만 발달된 상태에서 유사한 특성을 갖은 종들끼리의 모임으로 그 조상을 과거의 특정 종에 두고 있을 뿐이다. 즉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어폐가 있다. 오히려 창조론은 유인원과 인간의 유전학적인 유사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위의 모든 예시와 전반적 내용을 통틀어 결론을 지어 할 수 있는 주장은 서두에서 말한 진화 방법론적 창조설인데, 진화를 세상진행의 원리로 보고 세상근원의 원리는 창조에 의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살펴보자. 성경의 하나님 즉 신은 I am who I am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로써 전능의 존재이기 때문에 신의 존재는 공공연히 인정될 수 있는 사실이다. 자연세계에서 설명되지 못하는 비과학적 논리들이 그것이다. 신이 존재하는 가운데 우주를 열게 된 것도 신의 창조력이다. 우주의 창조력은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함과 같이 확대되었고 우주의 입자들은 위에서 말한 기존의 설을 토대로 융합과 파괴의 과정을 거치며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우주로 발전한다. 물론 이 가운데 일어나는 우주의 섭리는 신에 의해 정해진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개정하기 힘든 힘을 갖는다. 지구생성 후에 지구는 기존 진화론의 틀을 토대로 진행한다. 그 사이의 탄생의 개입은 역시 신의 논리와 힘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이다. 이로써 현시점까지의 자연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의 경우를 살펴보면 신이 창조해낸 인간의 모습이란 현생인류보다는 아직 덜 발달된 형태로 지능이나 기술은 다소 떨어지지만 현 인류와 같은 기본적이고 사회적인 습성을 가진 종이다. 그들이 진화의 연속으로 현생인류에 다다른 것으로 이러한 적응과정 또한 점진적인 신의 개입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창조이론의 단계는 약속이나 한 듯 진화이론의 단계와 너무나도 흡사하고 같은 종류의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다만 창조이론은 신의 전능함이 부각되는 요소인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서로 같은 진행방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 근본의 시작점이 달라서 양 갈래를 선택했던 두 이론이 이렇게 하나의 재정립된 이론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 정립과정에서 깨달은 바는 창조이론이 바탕이 되고 그 위에 진화의 방식이 얹혀진다는 것이다. 창조이론은 그 특성과 이야기 구성상 그리고 탁월한 신앙적 내용상 기본 틀을 형성하고 우주를 이루는 근본의 자리에 위치한다. 반면 진화론은 세계운행의 과정을 정립한 것으로 그 토대가 인간에게 있으므로 방법론적이고 과정적이다. 따라서 이 신 이론을 진화 방법론적 창조이론이라고 명명한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으로의 학자들의 눈총이 어떠한 이론에 집중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신앙과 법칙이 공존하는 이 시대에 양면을 모두 포용하는 이론에 관한 고찰이 요구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