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트리크 쥐스킨트
뭐랄까, 이 작가분의 특징 중 하나는, 정말 꼼꼼해 보이는 묘사.
상상하기 수월하게 세밀히 행동을 묘사 해줘서 나도 모르게 그 상황이 시각적으로 전개가 된다.
그리고 다른 특징은, 주인공들이 폐쇄적이라는것,
좀머씨 이야기에서의 '좀머씨' 도 그랬고, 향수에서의 '그루누이'도 그러한 (다른작품에서도물론) 이런 폐쇄성과, 비사회성.
이런 인물들에게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이질적이면서도 이게 우리 자신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내용은 간단하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온 남자의 방 앞 복도에
비둘기 한마리가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비둘기란 존재조차에도 조나단(주인공)은 심한 동요를 느낀다. 내적인 균형과 외적인 질서를 마구 흔들어 놓았다.
심지어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어느날 문득 날아온 비둘기 한마리 덕에, 주인공의 삶 자체가 흔들리고 무너지는 과정을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가 되어 있다.
인상깊은 장면들은 조나단이 비둘기를 발견하여 공포를 느끼는, 그 비둘기의 형상 묘사 부분과 거지와의 비교 부분.
특히 거지의 대한 자신이 관점을 바꾼 부분은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그래, 그러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거겠지 하는 ?
여러 경험으로 사람들을 믿을수 없게 되어, 접촉을 왠만하면 피하고 그저 일상적인 사람 구실을 할만한 직장과 집을 찾게 된다.
그저 외부와의 관계를 거부했다는 것이 세상의 인식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우리와 차리를 만들뿐. 그는 결국 경제의 기본이자 사회의 틀을 만든 인간이 가지는 소유욕에서 자유로울수 없었다.
도리어 이것이 역설적으로 소유의 허망함을 알려주지 않는가.
이런 소유에서 얻게 되는 안정감이 비둘기라는 작은 어떤 부분에서 위협을 느끼고 흔들린다는것이.
그 흔들림으로 인해 조나단은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으로 확대 해석까지 하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 폐쇄적이고 소심한 그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충분히 볼수 있다. 우리고 우리의 소유에서 위협을 느낀다면, 소설속의 조나단 처럼 정신분열의 정도까지 갈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미숙하고 연약한 존재니까..
여튼, 나도 비둘기는 참 싫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