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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통일의 메시지, 사진에 담다

우리민족서... |2007.07.06 13:54
조회 50 |추천 0
    광화문 네거리는 서울의 중심답게 언제나 사람과 차들로 북적인다. 월드컵응원과 촛불시위, 거리는 축제의 장이자 세상을 향한 외침의 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장에는 언제나 카메라의 앵글에 현장의 모습을 담아 세상과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이재원 로이터통신 사진기자이다.  지난해 5월, 평택 대추리에서 취재중이던 사진기자들이 부상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재원 기자 또한 현장에서 취재 중 부상당해 며칠간 병원신세를 저야 했다. 그리고 치료비로 받은 보상금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후원금으로 보내온 것이다.  지난 3월 15일, 이재원 기자를 광화문 거리에서 만났다.  기자를 인터뷰하다

 

  약속장소에 도착 즈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재원 기자다. "죄송한데 10분정도 늦을 것 같아요. 방금 마친 취재사진을 올려야 하거든요."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기자는 마감에 죽고 마감에 산다' 던가.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상황이 바뀌어 취재원이 된 이재원 기자를 만나 인터뷰에 대한 첫 느낌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참 어색하네.... 취재만 하다가(웃음)" 그럴 것도 같았다. 인터뷰는 로이터 통신사가 있는 광화문역 근처 작은 찻집에서 진행되었다.

   사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이재원  기자와의 인연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12월 18일, 평양 '조선적십자병원 신경,호흡기병동부 준공식' 직항방북과 2007년 2월 6일, '정성의학종합센터, 산과들 농수산 개성 건강식품분공장 조업식' 기자단으로 함께 방북했었다. 지난 평양 직항방북 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후원한 소식을 알게되었다.

  " 작년 평택을 떠올리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요. 평택주민들과 경찰과의 격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당시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이재원 기자는 말을 맺지 못했다. " 보상을 바란 것도 아니고 회사규정상 받을 수도 없는데 경찰에서 어떻게 계좌번호를 알았는지 보상금을 입금했더라구요. 그래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후원하게 된 것입니다." 후원하게 된 계기는 예상 외로 짧고 간결했다.

 

 카메라, 민족과 동포를 향하다

 

  이재원 기자는 최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함께 방북한 것을 포함하여 6차례 북한을 방문하면서 들었던 느낌이 궁금했다. " 처음보는 북한의 모습은 충격이었죠. 개인적으로는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기자로서는 잘 알려지지 않는 나라,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작품의 대상이었죠. 그러나 한 두 차례 더 북한을 방문하면서 스스로 자제를 하게 되더군요. 민감한 부분들에 대한 제약, 북쪽 안내원들과의 마찰 등을 염두 해 두어야 했습니다. 북에서 사진을 찍을 때면 스스로와 싸움이죠(웃음)" 그러면서 그는 사진을 찍을 때면 사람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 항상 고민하게된다고 덧붙였다. 더구나 대립과 갈등의 현실에서 평화와 통일에 대한 공통의 과제를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으로 다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자유로운 평양취재를 꿈꾸다

 

  " 한국에서 자유롭게 취재하듯 북한에서 자유롭게 북한주민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고싶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재원기자의 희망사항이다.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 아직까지 제약과 통제가 많다. 더욱이 기자들에게는 남한에서 보도되는 뉴스를 염두 해 때론 사진과 녹화테잎을 확인하고 삭제 요청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약에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것은 누구나 드는 마음일 게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말하다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처음 방북했을 때가 4번째 방북이었는데, 느낌이 상대적으로 편했어요. 예전에 함께 방북했던 단체들은 나름의 정치적인 성향이 있었죠. 그러나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에서는 정치적 색깔보다 순수 지원단체로서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북측관계자들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대하는 태도에서 친밀감과 신뢰감을 볼 수 있었어요."

특별한 후원과 2차례의 방북으로 함께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대한 이재원기자의 소감이다. 이와함께 "10년 동안 북한이라는 나라를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변합없는 신념이라고 할까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변함없는 노력이 계속되고 더욱 빛나길바래요." 라며 노력과 바람도 빼놓지 않았다.

 

 

  1시간여의 대화는 유쾌했다. 인터뷰라기 보단 잘 알고 지낸 사람과의 이야기처럼 자연스러운 시간이었다. 이재원 기자의 핸드폰 바탕화면에는 어린아들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다. 핸드폰  속 사진을 보여주며 '붕어빵 부자(父子)' 라는 암묵의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 아이는 남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요. 건강하구요." 한 아이의 아버지로 말하는 바람은 우리네 모든 아버지들이 갖는 보편적인 바람이다.

  이렇듯 '평양' , 'DMZ' , '독도' 등 이재원 기자가 카메라 앵글을 통해 세상에 말하고자 하는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도 언젠가 우리의 보편적인 바람이 될 것임을 소망해 본다.

 

 

인터뷰 정리  편집부 오형윤 간사

 

 

 이재원 기자는 현재 로이터 통신사 사진부 부장으로 근무중이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두차례 방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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