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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사랑한 삼란공신 사야가,김충선★

박대근 |2007.07.12 18:10
조회 68 |추천 1


 

 

김충선 (金忠善 1571 ~ 1642, 본관 사성김해)

임진왜란 때 왜군의 선봉장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그때 나이 22살로

 

3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부산에 상륙했다. 선조25년 4월 13일이었다.

 

[상륙한 지 일주일 만에]절대적으로 일본의 우세가 점쳐지던 때

 

에 경상좌우병사 김응서에게 은밀하게 글을 보냈다.

 

"내가 비겁하고 못난 것도 아니고 내 군대가 약하지도 않다.

 

조선의 문화가 일본보다 발달했고, 학문과 도덕을 숭상하는 군자의

 

나라를 짓밟을 수 없다. 그래서 귀순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

 

렇게하여 우리나라에 귀화해 장수가 된 그는 부산, 경주, 영천등에

 

포진하고 있던 왜군을 무찔렀다. 또 우리군대에 화포와 조총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왜군이 점령하고 있던 18개의 성을

 

되찾는 공을 세웠다. 그의 무공과 충절에 감복한 선조는 친히 불러

 

김해 김씨라는 성과 '충선'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왜란이 끝난

 

후,30세가 된 김충선 장군은 5남1녀를 두게된다,대구 우록동(지금

 

의 달성군.가창면)에 글방을 세우고,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다,.

 

선조 36년 여진족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내방소를 설치하고 그에게

 

북방 경비를 맡겼다. 그 뒤 병자호란이 일어나 자신이 10년 간 지켰

 

던 북쪽 땅이 짓밟혔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창의했다. 그때

 

나이 66세, 의병을 남한산성으로 달려가던 중 조정에서 항복을 결정

 

했다는 소식을 듣자 "예의의 나라 군신으로서 어찌 오랑캐 앞에 무

 

릎을 꿇을 수 있겠는가, 춘추의 대의도 끝났구나."하고 땅을 치며

 

통곡했다고 한다.

 

1642년 72세에 세상을 떠난다.

 

조정에서도 슬퍼하고,이웃에서도 부모상을 당한듯애통했다. 김충선

 

은 문인답게(어렸을때 聖人(성인)의 글을읽혔음.예공자,맹자)모하

 

당집3권을 남겼다.(1640년으로추정)국문학상 보기드문 작품으로 정

 

조22년(1798)간행되었다. 김씨란성은 바다건너에서 넘어온 금이라

 

하여 지은 성이다.

 

호는 모하당, 상호군 경원, 부호군 계인의 아버지, 선전관 진명의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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