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듀스의 음악적 성취도와 관계없이, 이 기사는 일종의 ‘타임머신’이다. 듀스 활동 당시에 당시의 ‘진지한’ 음악팬들은 이 기사를 쓴 이와 똑같은 소리를 했다. 듀스 같은 애들이 하는 음악은 상업적이야. 뮤지션이라기보다는 연예인이지. 진지한 실력파 음악은 그 전에 나왔던, 그러니까 조용필 같은 사람들의 음악이지, 운운. 그러나 이 기사 덕에 나는 듀스를 다시 떠올리고 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 기사는 충분히 제몫을 다 한 것이긴 하다. 그러니, 이 글의 나머지는 듀스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늘어놓아 보도록 하자.
듀스는 1995년에 해체‘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6년에 해체‘했’다. 활동 기간 내내 싫건 좋건 비교대상이었던 이 두 그룹은, 해체의 상황에서마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만약 우리가 듀스의 ‘실질적인’ 해체를 김성재의 죽음으로 간주한다면 분명 그렇다(이는 김성재의 죽음 이후 마치 마법이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이현도의 음악적 성과가 불만족스러운 방향으로 변했다는 개인적인 판단 때문이다). 한쪽은 기자회견과 베스트 음반 발매라는, 급작스럽기는 했지만 ‘정상적인’ 상황에서 활동을 중단‘했다.’ 다른 한 쪽은 그룹의 핵심 멤버가 솔로 데뷔 무대를 가진 그 날 사망하는 유례
없이 ‘충격적인’ 상황에서 활동이 중단‘되었다.’ 서로 달랐지만 탁월했던 두 그룹의 마지막 상황에서 받은 인상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을 ‘양’으로, 듀스를 ‘음’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듀스의 음악 색깔이 서태지와 아이들에 비 해 조금 더 ‘어둡고 격렬’했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중적’이었다면 듀스는 ‘매니아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당연하게도 이는 상대적인 비교다.
그렇다면 우리 기억 속에 남은 듀스의 음악은 어떤 것일까. 싱커페이션을 적극 활용하며 맺고 끊음이 확실한 뉴 잭 스윙 풍 비트, 밀고 당기는 구성의 묘에 중점을 둔 샘플 운용, 낙차가 큰 음계 속에서 진행 중에도 내내 위아래로 꿈틀거리며 깊은 인상을 남기는 멜로디, ‘난사’에 가깝게 진행되는 래핑 등이 아닐까 싶다. 듣는 순간 싫건 좋건 사람들의 귀와 몸을 자극하는 음악. 그들의 대표적 히트곡인 “나를 돌아봐”, “굴레를 벗어나”, “약한 남자”, “우리는” 등에서 예리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분명 이 곡들은 1990년대의 한국 대중음악이 올라간 가장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일 것이다.물론 이것이 듀스의 음악을 온전히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룹의 음악적 브레인인 이현도 는 재즈, 훵크, 힙합, 뉴 잭 스윙 등 흑인 음악의 각종 스타일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으며, 발라드와 헤비 메틀, 클럽 댄스, 라틴 음악의 형식과 내용을 자신이 좋아하는 흑인 음악의 스타일과 뒤섞는 데도 능했다. 그것이 “여름 안에서”, “영원의 노래”, “Go!Go!Go!”, “떠나버려” 같은 곡들이 매력적인 까닭이다. 또한 짧은 섹소폰 인트로에 뒤이어 둔탁한 비트가 물결치는 “無題” 같은 곡은 DJ 프리미어(DJ Premier)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정통 힙합’의 모습을 노리고 있되 그게 제법 자연스러운 형태로 ‘지역화’되었다는 점에서 지금 들어도 (‘힙합의 토착화’에 대한) 흥미로운 순간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