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자 박근혜
대통령은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로서 나라의 전반에 걸친 행정을 통할하며 나라를 대표하는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그 어느 자리보다도 외롭고 고독한 자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무책임한 자리 또한 아니다. 이렇듯 외롭고 고독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무한책임’이 양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 속에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지도자를 선출하는 제 17대 ‘대통령선거’가 오는 12월 19일에 열린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제자리걸음인 경제의 발전을 간절히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을 등에 업고 대한민국을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을 진정한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선거’가 말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정권교체’가 조심스레 점쳐지기 때문에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 미국, 일본 등 주변 국가들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으며 모든 국민들은 나라를 구해줄 유능한 지도자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따라서 올바른 정치로, 눈부신 경제 발전으로, 확고한 외교철학으로 주변국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모든 국민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구축하여 일사천리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야말로 대한민국과 희로애락을 함께 할 ‘초인(超人)’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이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우리에겐 오로지 국민과 나라만 바라보는 애국자 ‘박근혜’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 그는 어린시절을 청와대에서 보내며 자연스레 아버지에게서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을 배우고 어머니에게서 힘들고 어려운 소외층까지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배웠으며,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부모님을 모두 피살로 떠나보내는 아픔 속에서도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역할, 동생들을 보살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언제까지 아파할 수만은 없었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하늘이 무너질듯한 아픔을 딛고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면서 많은 외교 경험을 쌓았고,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독일, 미국, 스웨덴,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뉴질랜드, 코스타리카, 튀니지, 태국, 과테말라, 케냐, 이스라엘, 핀란드 등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외국귀빈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우리나라를 돕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주한미군의 철수 계획을 가지고, 한국의 인권문제를 강력히 문제 삼으며 격렬하고 냉랭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마음을 단번에 돌리게 한 ‘근혜-카터 회담’은 박근혜의 놀라운 외교능력을 확실히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어머니의 피살 후에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장학사업을 하고 나환자, 버스안내양, 적십자 봉사자들을 만나 희망을 나눴으며, 아버지의 피살 이후엔 아버지에 대한 매도와 많은 오해, 싸늘하게 변해가는 주변 사람들로 가슴아파하며 아버지를 추모하는 책과 영화를 제작했다. 정치 1선에서 물러나고 가보지 못한 우리나라 낯선 땅을 여행하며 점차 마음의 평화로움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터진 IMF는 그를 국민들 곁에서 떼어놓지 못하게 했다. 그는 오직 국민과 나라만 바라보겠다는 마음으로 1998년 정치권에 뛰어든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달성대첩을 승리로 이끌었고, 지명직 부총재자리를 마다하고 당당히 선출직 부총재에 임명되었으며, 2004년 흔들리는 한나라당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만류(한나라당의 상황이 너무도 안 좋아서 4.15총선에서 질 것이 불 보듯 뻔한데 당 대표가 그 책임을 물게 되기 때문에)에도 불구하고 ‘당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생각으로 한나라당의 선장이 된다. 그리고 다가오는 4.15총선에서 50석도 건지지 못 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소중한 121석을 따내는 등 믿기지 않는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또 4번의 재보궐 선거에서 모두 승리하고 「대국민 약속 실천백서」를 만들어 ‘국민들과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신념과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소신으로 침체된 당의 구조조정, 체질 개선을 이루겠다는 뜻을 밝힌다. 천막당사의 그 초심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2004년 4대법안 협상을 위해 4당 대표가 모여 협의 할 때, “박근혜는 협상이 불가능한 ‘공포의 수첩’을 들고 다니며, 수첩에 적힌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며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는 ‘공포의 수첩’에 국민들과의 작은 약속까지도 꼼꼼하게 메모하며 개선여부를 매일 확인 한다. 그의 국민과 함께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다.
2006년 처음으로 장외투쟁을 한 53일간의 사립학교법 투쟁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근본인 교육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여당을 굴복시켰다. 그의 ‘교육’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만들어낸 값진 승리였다.
그는 또한 한나라당과 젊은 층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싸이’를 시작했고, 네티즌들에게 외면당하는 한나라당 홈페이지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네티즌들이 홈피에 와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맘껏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한나라당에서 인터넷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디지털 정당팀’을 20대에서 30대 초반사이 직원들로만 구성하고 홈페이지의 외관부터 내부구조까지 확 바꾸었다. 그는 정당팀과 자주 만나 의견을 나누었고 그들을 격려했다. 또 그는 국민들이 보내주는 소중한 선물, 편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직접 확인한다. ‘젊은층과의 꾸준한 대화’를 통해 당을 개혁하겠다는 노력은 한나라당의 홈페이지 검색순위가 크게 앞섰던 여당을 누르고 지금까지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빛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한나라당이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2006년 5월 20일, 그는 짧지 않은 첫 번째 인생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행운으로 두 번째 삶을 얻게 된다. 오직 국민과 나라만 바라보겠다는 초심의 두 번째 인생을. 2006년 6월 16일, 1997년 한나라당 창당이후 최초로 당대표 임기를 마친 영광의 주역으로 다시 한번 국민들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한나라당에 많은 변화와 개혁을 일으키고 2년 3개월 동안의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많은 여론조사의 결과는 그의 국민과 나라를 생각하는 진실된 마음을 외면하고 있다. 같은 당의 유력한 경선후보 이명박이 줄곧 약 15%포인트 차로 앞서있는 상황이다. 많은 국민이 대기업 CEO와 서울시장을 지닌 그만이 대한민국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그는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며 나라경제를 발전시키겠다고 하지만 환경문제와 예산문제 등이 계속 거론되고, 실현 가능성도 확실치 않아 대운하 건설이 쉽게 이뤄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운하 걸설에 대한 기대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면 박근혜 후보의 ‘열차페리’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의 ‘열차페리(열차를 실어 나르는 선박)’ 공약은 서해를 건너 지 않고 중국횡단철도나 시베리아 횡당철도를 통하여 모스크바와 유럽의 주요 도시들로 바로 연결되는 철도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시간 단축과 운송비40% 절감이 가능하고 무엇보다도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 된다. 실제로 중국은 실제로 작년 11월부터 옌타이~다롄간 160km 구간에서 시험운행중이며 기존 철도 운송거리를 6백~1천 킬로미터 단축했다고 한다. 이는 그가 오래전부터 구상해온 계획이다.
우리들이 5년 뒤 ‘후회없는 선택’이었다며 힘차게 박수 칠 수 있는 후보는 애국심과 ‘원칙과 약속은 꼭 지킨다’는 신념, 국민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박근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박근혜 후보의 진실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내겐 아쉽게도 경선 참여권과 대선 선거권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서툰 글 솜씨로 여러분들께 박근혜 후보를 밀어달라고 호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