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설화를 잘 모른다. 어린 시절 여러 책을 보았던 것만은 틀림이 없는데, 모든 설화는 다 뒤죽박죽 섞여있는 상태다. 그 유명한 그리스로마신화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설화도 그게 그거같은 수준. 그럼에도 '바리데기 설화'는 꽤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컴퓨터랑 처음 놀던 때에 바리데기 설화를 기반으로 한 학습 게임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 그런데 황석영 선생님과 바리데기라. 잘 와닿지는 않는다.
북에 살던 소녀가 김일성의 죽음과 '고난의 행군'을 겪다가 중국으로 나가고, 그곳에서 흘러흘러 결국 영국에 가게 되는데 거기서 만나는 친구와 남자와 어르신과 영매와의 수많은 사건들. 소설 는 이렇게 세계의 현대사를 북한의 어린 소녀의 성장과정과 함께 담아낸다.
황석영 선생의 전작 과 연장선 상에 놓인 듯한 인상을 주는 . 은 근대사의 격랑을 몸소 헤쳐나가던 여인의 이야기었고, 는 현대사와 함께 성장한 소녀의 이야기다. 다만 바리는 영적 능력 때문에 보다 내면의 이야기가 부각된다.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장면은 상당히 신비롭고, 생각의 여운을 남겨준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남은 것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설화에서는 수많은 고행 끝에 생명수를 얻어내는데, 소설의 주인공인 바리는 '왜 이런 고통을!'이라고 울부짖는 과정 속에서 '그래도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게된다. 그것은 샹과의 관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바리는 중국으로 넘어와 샹에게 마사지를 배웠다.
바리는 샹과 함께 새로운 곳에서 새출발을 하고자 했다.
바리는 샹의 슬픈 사연과 함께 영국으로 넘어갔다.
바리는 마사지사로, 샹은 성매매로 삶을 꾸린다.
바리는 샹과 연락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바리는 샹의 연락을 받고 얼마간의 돈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바리는 샹에게 자신의 아기를 맡기고 외출한다.
바리는 샹의 부주의로 아기를 잃는다.
바리는 샹의 자살 소식에 가슴이 미어진다.
이게 다 무언가,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싶다.
쉽지않은 이야기 . 삶은 그리도 잔인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