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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원더이야기

김영훈 |2007.07.24 23:50
조회 165 |추천 2


본명  Steveland Judkins Hardaway

 

출생 : 1950년 5월 13일
 
출생지 : 미국
 
직업 : 외국가수 
 
데뷔앨범  1963년 1집 앨범 [Fingertips] 
 
 
수상연도   수상내역
 
1989   로큰롤 명예의 전당 공연자 부문
 
2006   제48회 미국 그래미 어워드 팝부문 최우수 보컬상

 

 

 

 

-활동

12세 때인 1963년 모타운 레코즈(Motown Records)에서 '리틀 스티비 원더(Little Stevie Wonder)'라는 이름으로 첫 레코드를 냈다.

이 가운데 혼이 깃들인 높은 음의 노래와 격렬한 하모니카 연주가 실린 싱글 《핑거팁스(제2부) Fingertips (Part 2)》가 인기순위 1위에 오르며 히트했다. 1966년에는 자신이 작곡한 《업타이트 (에브리싱스 올라이트) Uptight (Everything's Alright)》라는 솔곡을 통해 실력 있는 가수로 인정받았다. 이어서 프로듀서 헨리 코스비(Henry Cosby)와 함께 작곡한《아이 워즈 메이드 투 러브 허 I Was Made to Love Her》(1967) , 《포 원스 인 마이 라이프 For Once in My Life》(1968) 등이 히트하였다.

1970년대에는《슈퍼스티션 Superstition》(1972), 《유 아 더 선샤인 오브 마이 라이프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1973), 《리빙 포 더 시티 Living for the City》(1974), 《아이 위시 I Wish》(1976), 《서 듀크 Sir Duke》(1977) 등의 히트곡들을 발표하였다. 1980년대에도 《아이 저스트 콜드 투 세이 아이 러브 유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1984), 《파트 타임 러브 Part-Time Lover》(1985) 등이 히트했다.

재즈 가수들을 연상시키는 독창적인 창법과 함께 피아노, 오르간, 하모니카, 드럼 등을 능숙하게 연주하였으며 새로운 새대의 전자 키보드 악기를 받아들여 연주한 선구자로도 꼽힌다. 많은 록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20세기 후반 가장 창조적인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198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올랐다.

 

-이야기

선천성 시각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천재적인 음악성으로 팝계에서 최고의 영향력과 인기를 자랑하고 있는 팝/소울 주자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본명 Steveland Judkins)는 장애를 뛰어넘어 최고의 레코딩 아티스트로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음악인이다.

7살 때 피아노를 배우고 9살 때 드럼과 하모니카를 마스터할 정도로 음악에 천부적인 감각을 보여온 스티비는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가스펠 음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61년 모타운 레코드사의 오디션 담당자 로니 화이트(Ronnie White)에게 발탁된 그는 리틀 스티비 원더라는 이름으로 63년 'Fingertips'를 발표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곧이어 [12-Year-Old Genius]라는 앨범 시리즈를 준비한다.
그러나 확실한 음악적 방향을 마련하지 못한 그는 65년 헨리 코스비(Henry Cosby), 실비아 모이(Sylvia Moy)와 함께 공동으로 작곡한 댄스 풍의 'Uptight (Everything's Alright')로 US 톱 40위에 들기까지 한동안 침체기를 겪는다.

65년과 70년 사이, 스티비의 앨범도 다른 주요 모타운 출신 스타들과 마찬가지로 음반사의 전문가에 의해 전통적인 소울 풍에 스탠다드 팝 양식이 결합된 곡들로 선곡되고 제작되어졌다.
그러나 자신의 대부분의 싱글에 공동 작곡가로 참여하는 열성과 재능을 보인 스티비는 모타운과의 계약이 만기된 71년 모타운의 양해를 얻어 자신의 프로덕션인 블랙 불 뮤직(Black Bull Music)을 설립하고, 자신의 모든 앨범의 예술적인 부분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파격적인 계약을 맺게 된다.
이어서 그는 앨범 전 수록곡의 연주를 혼자 담당하며 전통적인 흑인음악에 최초로 신디사이저를 사용하였고, 가사에 있어서도 인종 차별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로 넓혀간 실험적이면서도 야심에 찬 두 장의 앨범 [Talking Book](72), [Innervisions](73)를 발표한다.
이 두 앨범에서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I Believe', 'Living For the City', 'Higher Ground'로 히트를 기록한 스티비는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며 명실공히 흑인음악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

73년 불의의 자동차 사고 이후 더욱더 강해진 영적인 믿음은 이어 발표한 [Fulfillingness' First Finale](74)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났다.
76년 더블 앨범인 [Songs In The Key Of life]로 더욱 의욕적이고 만족스러운 작업을 해 온 그는 이 앨범에서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에게 헌정하는 'Sir Duke', 많은 흑인 영웅들을 노래하는 'Black Man'을 발표하며 탁월하고 풍부한 음악적 다양성을 구사해, 동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뮤지션이자 송라이터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후 한동안 식물의 생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The Secret Life Of Plants]의 사운드 트랙을 만드는데 집중한 스티비는, 80년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추모하는 'Happy Birthday', 레게풍의 에세이 'Masterblaster (Jamming)'이 수록된 [Hotter Than July]를 발표해 크게 성공시킨다.

82년 더블 회고 앨범 [Stevie Wonder's Original Musiquarium I]을 발표한 그는 영화 [The Woman In Red](84)의 사운드트랙 중 감상적인 발라드 곡인 'I Just Called To Say I Loved You'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그러나 오랜 작업기간을 거쳐 출반한 [In Square Circle](85)과 87년 [Characters]는 예전의 듣기 쉽고 선율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돌아가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다는 이유로 대중들과 평론가들에게 약간의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흑인음악의 대표자로 흑인 권리의 옹호자, 대변자로 인정받고 있던 스티비는 80년대 초 마틴 루터 킹의 생일을 미국 국경일로 정하자는 캠페인의 핵심 인물로 86년 1월 15일 그 첫 기념식에서 공연을 갖는 영광을 얻기도 한다.

자신의 음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앨범에도 작곡가, 프로듀서, 세션 등으로 참여한 그는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Ebony And Ivory'를 대 히트시키기도 하고, 게리 비어드(Gary Byrd),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유리스믹스(Eurythmics) 등과 함께 작업했으며,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자선앨범에도 참여했다.
95년 [Conversation Peace]를 비롯해 히트곡 편집앨범 등을 발표하며 여전히 그에게 있어 단 하나의 광명인 음악에 몰두하고 있는 스티비 원더는, 63년 팝계에 등장한 이후 어떤 다른 음악인들보다도 주목받는 아티스트로서 35년 이상의 세월을 구가하고 있다.

 

- 학생때의 간단한 에피소드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조산아로 태어나 출생 직후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으나
산소 과다 공급으로 실명하고 말았다.
주위 사람들은 가난하고, 흑인이며, 눈이 보이지 않는
약점 투성이 소년이 할 수 있는것은 기껏해야 주전자
손잡이를 만드는 일 정도라고 말했다,

소년은 그런말을 들을 때마다 용기가 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중에 교실에 쥐가 한 마리 나타났는데
순식간에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그때 선생님이 그 소년에게 쥐가 어디에 있는지
맞혀 보라고 했다,
선생님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청력이 유난히
예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쥐 소리는 교실 구석의 벽장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소년이 선생님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줘 쥐를 잡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소년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넌 우리 반의 어떤 아이도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바로 너의 특별한 귀란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소년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음악을 좋아하는 소년은 여러가지
악기의 소리를 들으며 그 음을 정확하게 연주해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약점이 있었지만, 탁월한 청력이라는
장점을 알아낸 뒤로 그는 한 번 들은 소리는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 소년이 바로 1963년 열두 살 때 첫 레코드를 낸
스티비 원더이다,
그는 피아노, 오르간, 하모니카, 드럼 등에 모두 뛰어난
연주자이며 독창적인 창법으로 노래하는
가수이자 작곡가이다,
많은 음악가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현재 활동 중인
음악가 가운데 가장 창조적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딸에 관한 에피소드

그는 시각장애인입니다..앞을 볼수가 없죠..
그런데 사랑하는 론디와 함께라면 두려울게 없었습니다..

론디는 자랑스러운 딸을 낳아주었고 스티비원더는

정말 기뻐하였습니다.. 딸 '아이샤'를 낳아서요..

스티비원더는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되는게 스티비원더는 시각장애인이기때문에 아이샤가

같은 시각장애인이 되는걸 무지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스티비원더의 소원대로 딸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딸이 성년이 될때.. 스티비원더는 딸의 모습을 보기 위해

15분밖에 볼수없고, 실패확률도 많고,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위험한 수술을 결심하였습니다. 의사들은 감동했구요.

"선생님.. 결정했습니다.. 수술하겠습니다"
"시신경이 너무 파괴되어 개안수술을 받더라도 15분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15분이라도 좋습니다.  수술을.. 꼭 받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미루고 안 하시던 어려운 수술을 왜 갑자기.. 무슨 큰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이가 보고 싶어요.. 사랑하는 딸을 15분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그는 강했습니다.. 마침내 수술을하고 붕대를 풀었던것이죠...

붕대를풀자 딸이 아빠! 아빠! 이랬는데 스티비원더는 막 보이는것처럼 행동 하였습니다.

딸 아이샤가 스티비원더에게 안겼습니다.. 아빠..사랑해요..

스티비원더는 그런 딸을 토닥 거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딸은 수술이 실패한거도 모르고 계속 울었습니다..

딸은 실패한 소식을 듣고 절망감에 빠지고 ..

스티비원더는 딸에게 위로를 해주고 감싸주었습니다..

12살 음악의 천재소년 스티비 원더가  이렇게 변한것입니다..

 

 

추천곡

1. Yester-Me, Yester-You, Yesterday

2. Lately

3.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론디와연애초작사한곡]

4. For Once In My Life

5. Never Had A Dream Come True

6. Sir Duke

7. Kiss Lonely Good Bye

8. Ribbon In The Sky

 

 "음악이란 삶에서 중요한 것들, 가치가 있다고 느낀 것들을

풀어내는 작업입니다." -스티비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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