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칸 피랍 사태, 배형규 목사의 죽음으로 인해 기독교가 비난받고 있다. 기독교 내부에서도 위험 지역에 대한 선교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퍼側?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선교가 어디 선교겠는가?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무지했던 이 땅 조선이 기독교를 법으로 금하고 있었을 때, 토마스와 같은 젊은 선교사가 목숨걸고 평양으로 향하지 않았다면 이 땅의 복음의 역사는 그렇게 고결하지도 장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땅의 기독교는 대동강물에 흩뿌려진 그의 피로 싹트기 시작했다.
무지했던 이 땅 조선은 초대되지도 환영받지도 않았던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 계몽되지 않았는가? 그들은 의사, 간호사, 교사의 이름으로 이 땅을 밟았고, 본국으로부터 어렵게 모금한 후원금으로 병원, 학교, 교회를 지어주었다.
이 땅의 기독교는 당시 위험국가였던 조선에 목숨을 걸고 들어온 선교사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진 것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땅에 기독교는 없었을 것이고, 하늘의 축복 또한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아프칸, 그러므로 우리는 가야한다.
아래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중 일부이다. 그가 무지했던 조선을 위해 기도했듯이, 우리 또한 저 아프칸과 이슬람 국가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의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