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프레레의 급료와 KFA의 가랭이'라는 제목으로 한창 본프레레를 경질해야 하네 말아야 하네로 시끄러울 때 신동일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2년도 더 된 글이지만, 정말 지금 읽어 보아도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다를 게 없다고 느낍니다. 조금만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 퍼 옵니다.
스크롤 압박이 좀 있습니다. 앞부분은 본프레레 선임 과정과 그 전후 상황에 대한 얘기고, 글의 핵심 내용은 뒷부분에 굵은 글씨로 처리해 두었습니다 :)
요즘 보니, 기술위원회가 요하네스 본프레레를 발탁했으니 기술위가 책임져야 한다느니 허정무씨(현 전남 감독)가 본프레레 감독 선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느니 하고 사실관계도 모르면서 그저 마구 삿대질이나 하는 이들이 있는데....내 늘 하는 얘기지만 비판을 해도 사실관계는 정확히 알고 하자. 그래야 같은 실수를 두번 다시 하지 않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본프레레는 KFA 기술위에서 선임하지 않았다. KFA 국제부(대외협력국)에서 주도하여 영입한 외국인이다.
필자는 본프레레 팬이 아니다. 다만 감독을 선임했을 때 치명적인 실수로 대표팀이 탈락의 위기에 몰렸을 때를 제외하면 믿고 맡겨야 한다는 원칙론자이며, 이는 감독의 국적과 상관없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감독이건 선수건, 결국 성적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표팀이 치르는 이런저런 시합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매치는 단연 월드컵 예본선 경기이고 그 다음이 아시안컵을 비롯한 정식 타이틀 걸린 대회가 될 것이다.(7월에 열리게 될 '동아시안컵'도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대회니만큼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친선평가전은 말 그대로 평가를 위한 이벤트이니 승패에 연연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이 끝나면 2년 뒤 열리는 올림픽에 전력하고 올림픽이 끝나면 다음 월드컵에 또 전력하는 행정구조를 갖고 있다. 그들에게 '왜 아시안컵에 전력하지 않느냐, 대표A팀과 올림픽팀 중 무엇이 중한지는 당신들이 더 잘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 다른 사람들이 올림픽 출전팀을 아시안컵에 나가는 국가대표팀보다 더 비중있게 생각할지라도 적어도 당신들은 그런 자세를 가져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었다.
'우리도 축구문화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란 나라는 올림픽에 집착하는 국가주의 스포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대다수 국민들의 바램을 외면할 수 없다. 모든 축구팬들이 당신과 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면 우리도 일하기가 편할 것이다.
매스컴은 결국 일반 국민의 선호를 추종하게 되어있다. 2002 월드컵으로 이미 눈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우리 국민에게 자 보세요, 우리는 축구문화의 발전을 위해 아시안컵에 올인할 것이며 올림픽은 그저 젊은 선수들의 연습경기로 활용하고자 하였습니다. 한정된 예산과 인력의 문제도 있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면 국민의 바램에 민감한 언론에서 과연 어떻게 나올지 뻔한 것 아닌가? 축구에 있어 언론은 생존의 환경이다. 아시아는 이미 한국 축구의 무대가 아니라고 믿는 국민의 정서가, 우리도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2002년 월드컵이 대성공으로 끝나고 2004 올림픽이 당면과제로 등장했다. 정몽준 회장은 최소한 동메달 이상은 따야 한다면서 관계자들을 독려했고 올림픽 팀 감독 선임은 엄정한 잣대로 이런저런 후보들을 검증하여 김호곤으로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2002년 12월부터 올림픽팀의 해외전지훈련이 시작되었고 2004년 8월 아테네 올림픽 폐막까지 대한민국 축구의 관심사는 올림픽팀의 성적이 자리잡고 있었다.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움베르토 쿠엘류는 원래 2004년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영입된 지도자다. 그런데 그가 부임한 뒤 사정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아시안컵 결승전이 끝난 뒤 월드컵 지역예선이 시작되었지만, FIFA는 대륙별 예선을 2004년 초부터 시작하도록 스케줄을 짰다.
쿠엘류는 한국,오만,베트남,네팔로 구성된 2004 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 4승2패의 전적으로 오만에 이어 2위로 중국이 최초로 개최하게 된 2004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하지만,(오만에게 1-3,베트남에게 0-1로 패배한 오만 원정은 이 때 기록된 사건) 그가 KFA와 계약했을 때에는 예상치 못했던 월드컵 아시아지역 1차예선을 대표A팀 감독으로 당연히 수행해야 했다.
한국의 1차예선 상대는 레바논 베트남 몰디브였다. 2004년 3월30일 몰디브 원정에서 쿠엘류가 이끈 대한민국 대표팀은 몰디브와 0-0으로 비김으로써, 조 1위만이 나갈 수 있는 최종예선에서 탈락하게 될 수 있는 최악의 국면에 몰리고 말았다.(필자는 그 당시 쿠엘류는 포르투갈 대표선수를 지도하는 데에 있어선 능력이 있는지 모르지만, 포르투갈과는 전혀 다른 풍토에서 성장한 한국 대표선수를 지도하는 데는 문제가 있는 감독으로 보아 경질을 요구한 바 있다)
축구협회는 쿠엘류로서는 안되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새로운 지도자를 물색하게 되었다. 그 작업은 축구협회 기술위에게 맡겨졌고 기술위는 감독 후보로 지목된 지도자의 면담을 위해 해외출장까지 감행하면서 당시 UAE의 AL AIN 클럽을 맡고있던 프랑스 출신 브뤼노 메추를 영입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메추 영입에 드는 자금이었다. 협회는 자금 얘기가 나오면 얼굴이 굳어지지만 당시 신문보도를 보면 메추 영입을 위해서는 KFA에서 메추의 위약금까지 물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메추는 2006년까지 AL AIN에 매어있는 몸이었으며 KFA 말고도 카타르의 클럽에서도 손짓하고 있는 등 오라는 데는 많았지만 중도에 팀을 떠날 경우 AL AIN 측에서는 2배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며 별렀고, 메추는 KFA에서 자신을 영입할 경우 위약금 문제를 KFA가 해결해 주길 바랬던 것이다. 메추는 'KFA에서 나를 영입하기 위해 준비한 자금이 모자란 모양'이라고 말했다.
KFA는 메추와 AL AIN의 문제는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더 이상 메추에 연연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쿠엘류가 물러난 뒤 차기 한국대표팀 감독 자리는 세계축구계의 비상한 관심사였고, 논의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우선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쓸만한 지도자의 몸값 폭등이었다.
세계 축구의 중심 유럽에서 활동하는 지도자들의 거취는 5월말 시즌이 끝나면서 가시화되고 8월 초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자리를 잡는 것이 원칙이다. 메추 영입으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지명도 높은 지도자들의 몸값은 폭등한 상태였으며 그나마 영입에 관련된 조건의 협상을 위한 시간표는 마감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외국인 지도자도 한국 선수들을 제대로 알고있는 상태에서 부임하는 경우는 없다. 그가 쓸만한 국내파 한국 선수를 파악하려면 1년의 시간이 꼬박 걸린다.
그러니 외국인 감독들은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집착하게 된다. 주전이건 후보건 유럽에서 뛴다는 것은 일단 기준을 통과한 경우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의 영어구사력은 중요하다. 영어를 할 줄 몰랐던 쿠엘류나 영입대상의 하나였던 터키 출신 귀네스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통역에게는 이런 문제가 있었다.
포르투갈어를 구사하는 한국인 통역을 구하긴 했는데, 브라질에서 생활했다는 그 통역은 축구의 내적구조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는 곧 해임되었다. KFA에는 불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직원이 있었고 쿠엘류는 PSG에서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불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불어로 지도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쿠엘류의 약점은 코칭스탭들 간에 의사소통의 단절을 가져왔고 이는 당시 수석코치였던 박성화와 감독 간의 갈등으로 불거져나왔다. 축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협회 사정을 잘 아는 한국인 통역이라도 그 혼자만으로서는 시시콜콜한 문제의 해결에까지는 한계가 있다. 한국인 출신 코치들도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하는 데 지장 없는 것이 실정이라면 감독으로 영입되는 인물은 영어로 정확하게 의도를 설명하는 기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메추 영입이 무산되자 기술위는 뒤로 물러섰고 KFA 대외협력국이 나섰다. 주역은 가삼현 국장이었다. 가 국장이 여행용 가방을 소지하고 출장에 나선다는 것은 결정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정회장의 핵심측근이며 협회의 의사결정 구조와 과정에서 결재단계에 자리잡고 있는 인사이다.
그가 영입한 지도자가 네덜랜드 출신인 요하네스 본프레레였다. 본프레레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허정무 호가 조예선 통과에 실패한 후 협회가 새로이 영입할 외국인 지도자 후보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히딩크가 오지 못했을 경우 본프레레가 올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어떤 요소가 본프레레를 한국 대표팀 감독에 앉히게 했을까? 우선 본프레레가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때 나이지리아를 우승시켰다는 경력이 있을 것이고, 한국 축구가 월드컵 예선에서 만날 중동축구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상기한 바와 같이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지도자라는 점이라 하겠다. 그런데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그의 급료가 KFA의 예산에 적합한 수준이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외국인 지도자의 영입에 있어 연봉문제는 계약당사자만 알고 있을뿐 대외비에 붙인다. 이는 한국만이 아니고 세계 공통이다. 본프레레는 혼자 일하는 타입이고 그가 부임한 이래 외국인으로서 코칭스탭에 참가한 인사는 독일 출신의 피지컬 트레이너 하나뿐이다. 히딩크처럼 이런저런 외국인 코칭스탭의 인건비를 별도로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매력이 있다.
2005년 KFA의 예산은 270억원 정도인데, 이 중에서 각급 대표팀 코칭 스탭들의 인건비라 할 수 있는 훈련연구비를 보면 본프레레와 독일인 피지컬코치의 급료는 히딩크 핌베어벡 얀롤프스 레이먼드 베르헤이엔 아프신 고트비 등에게 지불해야 했던 2002년 당시와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가 있다.
히딩크나 쿠엘류는 K리그에 관심이 없었다. 월드컵 예선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히딩크는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쿠엘류는 K리그 경기를 별로 보려하지 않았고 해외파와 월드컵 파에게만 매달렸다. 지금 수비진 세대교체의 문제점은 쿠엘류가 그 때 제대로 신인들을 발굴하지 못했던 탓이다.
쿠엘류는 K리그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쓸만한 중견 수비수들을 모을 시간이 있었으나 그는 최진철과 김태영 유상철에 집착했고 매스컴에 상세히 보도되는 올림픽 팀 주전수비수들에게나 관심을 보임으로써 한정된 자원을 놓고 대표 A팀 감독과 올림픽팀 감독이 얼굴을 붉혀야 하는 국면이 발생하기도 했다.(유경렬 김한윤 등이 쿠엘류 때부터 대표팀에서 발을 맞추었다면 지금과 같은 불안함은 상당히 덜어졌을 것이다.)
요약하면 본프레레는 그 정도 비용으로 KFA가 영입할 수 있었던 외국인 지도자라는 것이다. 축구팬들이 원하는 기라성 같은 지도자들-파비오 카펠로,오트마 히츠펠트 거스 히딩크와 같은 인물을 데려오려면 우리돈으로 100억원은 준비해야 한다. 물론 그들에게 딸려오는 스탭들 인건비는 별도다.
현역 지도자로서 이미 클럽을 맡고있는 지도자들을 중도에서 영입하려면 그 위약금을 KFA에서 부담해야 한다. 위약금은 통상 계약금의 2배다. 우수한 외국인 감독을 불러왔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히딩크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듯이 감독이 팀을 조련할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하며, 그런 과정에서 대표선수들에게 급료를 지급하는 소속구단과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우리는 또 한번 사상 유례 없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감독에게 주느라고 국내 축구의 황폐화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왜 축구협회는 이렇게 유능한 외국인을 감독으로 데려오지 않느냐고 호통을 치기 이전에 세계 축구 돌아가는 형편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축구팬을 자처하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우리 속담도 있지 않는가? 아직도 축구협회가 국민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축구협회는 국민적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인터넷 사이트마다 고개를 드는 광경은, 사정을 좀 알고 비판해야 한다는 나같은 자로 하여금 고개를 흔들게 한다.